[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몽마르트 언덕과 춘천 아트마켓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 언덕의 데르트르 광장. 화가들이 관광객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다.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파리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거의 빠지지 않고 들르는 곳 중 하나가 몽마르트 언덕이다. 유서 깊은 사크레 쾨르 대성당이 있는데다, 파리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랜드마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몽마르트 언덕에 오르는 사람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은 역시 테르트르 광장이다.

사크레 쾨르 대성당의 왼편, 카페와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선 골목을 지나면 테르트르 광장이 나타난다. 일명 ‘화가들의 광장’으로 불리는 이곳이야말로 몽마르트를 몽마르트답게 한다. 광장의 주인은 관광객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리는 무명화가들이다. 이곳에 화가들이 자리를 잡은 지는 200여 년이나 됐다. 19세기 후반에는 피카소나 마티스 등도 즐겨 찾았다고 한다.


나 역시 몽마르트 언덕에 갔을 때 테르트르 광장부터 찾았다. 여러 명의 화가가 하나의 공간에 자리 잡고 각자 다른 그림을 그리는 풍경은 구경거리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부러움도 컸다. 우리에게는 왜 이런 광장이 없을까. 전에 청계천에서 젊은 화가 몇몇이 초상화 그리는 것을 본 기억이 있는데, 얼마 전에 갔을 땐 만나지 못했다. 홍대거리는 최근 가본 적이 없어서 알 수가 없지만, 인사동에서 초상화를 그리던 화가도 요즘은 보이지 않는다.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을 아쉬워하던 차에, 춘천의 예술인들이 모여 ‘춘천 아트마켓’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찾아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데르트르 광장과 성격은 다르겠지만 그곳 나름의 향기가 있을 것 같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매월 첫째 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 춘천시 삼천동의 중도 배터에서 열리는 예술인 장터는 기대 이상의 찾아간 보람이 있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그만큼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었다. 화가는 그림을 들고 오고 시인은 시화(詩畵)를 들고 나왔다. 직접 몰고 온 캠핑카에 그림을 걸어놓은 화가, 돌을 깎아 만든 목걸이를 전시해놓은 전각(篆刻) 장인도 있었다. 소설가 이외수 선생이 쓴 캘리그라피 작품도 매물로 나와 있었다.

춘천시 삼천동 중도 배터에서 열리는 아트마켓. 화가가 캠핑카에 작품을 전시해놓고 팔고 있다.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예술인들만 물건을 팔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나 와서 전을 펴면 그날의 장꾼이 되었다. 파는 물건 역시 예술작품만 있는 게 아니었다. 누구는 벼룩시장에서나 만날 것 같은 골동품을 전시해 놓았고, 누구는 중국에서 구입했다는 서적 몇 권을 깔아놓았다. 옷가지 몇 개를 걸어놓은 사람, 손수 만든 가방을 진열해놓은 사람, 손으로 뜬 수세미를 파는 사람들도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대개는 돈을 벌겠다기보다는 어울리는 재미로 나온 것 같았다.

산책을 나온 시민들, 소문을 듣고 일부러 찾아온 사람들, 예술인들을 만나러 온 지인들이 너나없이 섞여 있었다. 모처럼 만난 사람끼리 안부를 묻느라 떠들썩한 게 시골장터에 간 것 같았다. 물건 값도 천차만별이었다. 수십 만 원짜리 작품에서부터 ‘부르는 게 값’이거나 ‘말만 잘하면 공짜’인 물건도 있었다. 장터에 빠질 수 없는 게 주막. 한쪽에 천막을 쳐놓고 술과 함께 파전 등 간단한 음식을 팔았다. 장사고 뭐고 술이 더 급한 장꾼과 찾아온 사람들이 어울려 한잔씩 주고받는 풍경은 얼마나 흥겨운지. 그늘에 의자 서너 개 갖다 놓은 간이무대에는 춘천에서 활동하는 가수들의 릴레이 공연이 펼쳐졌다.


이 아트마켓은 지난해 7월부터 열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 제안하고 앞장선 사람은 양구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 정현우 씨. 그가 주로 활동하는 무대가 춘천이다. 그의 아트마켓에 대한 철학이 깊이 와 닿았다.

“예술가와 소비자가 직접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장터야 말로 망하지 않고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문화운동이잖아요. 모여서 놀 수 있으니 재미도 있고, 물건을 사고 팔 수 있으니 생산적이기도 하고….”

모처럼 낭만과 동행했던 장 구경이었다. 몽마르트 언덕의 데르트르 광장과 춘천 중도의 아트마켓. 풍경과 성격이 다르고, 역사나 규모로 볼 때도 같은 반열에 놓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예술 소비자들이 예술인들과 직접 만나 소통하는 장이라는 의미는 다르지 않다.

이름난 명승지를 찾아다니는 것만 여행이 아니다. 예술의 향기를 찾아가는 발걸음이야말로 자신이 자신에게 주는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