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선율’…영화관에서 탄성의 박수 쏟아지는 ‘진풍경’

숨이 멎을 뻔한 장면이 많아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멋진 보석 가게에서 훔치고 싶은 마음을 쉽게 거두지 못하는 것처럼 인상 깊은 장면 하나하나를 모두 훔치고 싶었다. 영화 ‘레쿠오나를 기억하며’ 얘기다.


제목만 보고는 무심코 지나칠 뻔했다. 하지만 내용을 읽어보니 지나치기 어려웠다. 레쿠오나를 몰랐지만, 영화 속 뮤지션들은 간과할 수 없는 거장들이었다. 추초 발데스, 미셀 카밀로, 곤잘로 루발카바.

이들 세 명의 거장 뮤지션이 쿠바의 국민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에르네스트 레쿠오나의 음악과 삶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얼개다.

레쿠오나의 고향 아바나에서 추초 발데스는 재즈와 아프로 쿠반 리듬이 결합한 현장을 구석구석 ‘발견’한 뒤 이에 얽힌 스토리를 풀어낸다. 추초의 아버지 베보 발데스는 레쿠오나와 '절친'이다. 어릴 때 어린 추초가 레쿠오나 앞에서 연주한 기억을 통해 얻은 존경심은 현재까지 유효하다.

추초는 “레쿠오나의 연주는 100% 쿠바 리듬이지만, 방향이 다른 21세기 현대음악”이라며 “재즈와 결합한 그의 음악은 후대 뮤지션에게 엄청난 영향을 줬다”고 평가했다.


레쿠오나처럼 뉴욕에서 활동 중인 미셀 카밀로는 “레쿠오나는 아프로쿠반 리듬을 클래식 피아노에 심어 넣어 대중문화를 아주 고급스럽게 만들었다”고 했다.

스페인 세비아에서 레쿠오나의 연주를 새롭게 짜고 있는 곤잘로 루발카바는 “레쿠오나를 기술적으로 표현하기 어렵다”며 난감해한다. 그는 각종 출판사에 발행한 레쿠오나 악보집을 펼치며 곡 작업을 새롭게 구상하고 있다.

세 거장은 레쿠오나의 연주를 하기 위해 모두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사용한다. 추초가 기억하는 스타인웨이는 아바나 인근 가게에서다. 아버지가 스타인웨이로 연주하라고 한 부탁으로 구입한 그 피아노는 알고 보니, 아버지의 친필 사인이 들어있는 우연의 산물이었다.

추초는 “스페인이나 있을 법한 이 피아노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아버지가 내 연주를 지켜보기 위해 이런 우연을 선물로 주신 것 같다”고 놀라워했다. 미셀은 “악기에 영혼이 깃든 스타인웨이는 내게 말을 거는 친구이자 체온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추초가 녹음실에서 소수의 리듬 뮤지션과 연주할 때, 클래식의 아름다운 선율 속에 정열적인 리듬을 솎아내는 장면에선 탄성이 무의식적으로 쏟아졌다. 살아있는 인간의 냄새가 가득 배인 따뜻함에서도 21세기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강력한 리듬을 잃지 않았다고 할까.

카밀로의 재즈 피아노 트리오 연주는 정갈하고 우아했다. 그의 말대로 열대 우림 미풍 같은 연주를 펼치는가 하면 때론 한치의 오차 없이 완벽한 시나리오로 구성된 감동 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다.


관객이 이 두 개의 장면에서 더 이상 참지 못했는지 열렬한 박수를 쏟아냈다. 지금 감상하는 곳이 라이브 무대가 아닌 영화관이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할 만큼 이들의 연주는 관객을 숨죽이며 따라오라고 재촉하는 듯했다.

곤잘로의 연주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무례로 비칠 법했다. 탄력과 강도를 겸비한 그의 연주는 기본 구성의 밴드와 함께할 때나 플라멩코 기타와 함께할 때 어김없이 감탄을 자아내는 그만의 리듬을 선보이며 소유욕을 불러일으켰다.

세상에 음악 하는 이는 많지만, 듣는 이의 몸과 마음을 제어하는 뮤지션은 얼마나 될까. 곤잘로는 이렇게 말했다.

“레쿠오나는 같은 곡을 똑같이 연주한 적이 없어요. 연주에선 가히 혁명적이었던 셈이에요. 그래서 쿠바 정부에선 (혁명으로 비치는) 그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죠. 그가 쿠바에서 부활한 건 63년 그가 죽고나서예요. 학교나 TV에서 쓸 음악이 부족하면서 국민 음악가의 음악을 다시 끌어들인 거죠.”

누구나 하는 음악에 어떤 누가 흥분하고 열광할까. 레쿠오나가 세 명의 라틴 피아니스트를 열광시킨 건 누구도 하지 않았던 시도와 도전을 했기 때문이다. 그 세 명의 연주자가 ‘혁명의 선율’로 우리를 다시 흥분시키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