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쿠바에 가면 까사가 있다

내가 묵었던 트리니다드 까사의 집안 풍경.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스페인 말 ‘까사(casa)’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보통은 집을 말하지만 가족이나 회사‧상점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하지만 쿠바에서는 까사라고 하면 무조건 민박을 지칭한다고 보면 된다. 원래는 ‘까사 빠르띠끌라’지만 현지인이든 여행객이든 그냥 까사라고 부른다.

쿠바에 까사가 발달한 데는 나름의 배경이 있다. 미국의 경제봉쇄로 고통을 겪던 카스트로 정권에서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정책이 관광산업 활성화였다. 별 밑천 안 들이고 돈을 벌 수 있는 게 관광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쯤에서 시간이 멈춘 나라, 쿠바야말로 여행자들에게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그때 마주친 문제가 바로 여행자들이 묵을 숙소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바나 같은 대도시나 바라데로 같은 휴양도시에는 미국인들이 두고 간 호텔이 있었지만, 다른 지방에는 변변한 숙소가 없었다. 그렇다고 호텔을 새로 지을만한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까사, 즉 민박업이었다. 까사는 정부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다. 집을 규정에 맞게 수리해야 하고 별도의 샤워실과 화장실을 갖추어야 허가를 내준다. 그렇다고 편의시설을 잘 갖춘 서구식 숙소까지 기대하면 안 된다. 민박은 그저 민박일 뿐이니까.

집마다 시설이나 손님 접대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까사는 복불복’이라는 말까지 있다. 좋은 주인을 만나면 가족처럼 편히 지내기도 하지만, 장삿속에 먼저 눈을 뜬 주인을 만나면 별로 친절하지 않아서 데면데면 묵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 시설도 천양지차다. 어느 집은 우리나라 1960년대의 여인숙처럼 옹색하지만, 고풍스러운 집을 개조한 까사를 만날 경우 호텔보다 훨씬 뜻있는 여행을 할 수도 있다.

내가 트리니다드에서 묵었던 까사는 특별히 호화롭지도 않고 옹색하지도 않은 중급 정도의 민박이었다. 좁은 입구와 소파가 놓인 응접실, 주방과 식당을 지나 나타나는 작은 마당과 여러 개의 방…. 전형적인 그 지역 주택 구조를 가진 집이었다. 배정된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최근에 수리한 듯 페인트 냄새가 심했지만, 꽤 지친 상태였던 터라 그냥 묵기로 했다.

내가 묵었던 까사의 방. 별다른 시설은 없고 싱글침대가 두 개 놓여있다.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까사는 보통 식사까지 제공한다. 메뉴는 표준화되다시피 해서 빵과 오믈렛에 커피‧우유‧차 등이 나오는데 가격과 주인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내가 머문 까사의 안주인 이름은 아레이나였는데 호기심이 많고 활동적인 여자였다. 억척스럽기도 해서, 집안 살림을 혼자 다 하는 것 같았다. 바깥주인은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게 일이었고, 덩치가 산만한 아들은 노래방 기기 앞에서 꽥꽥 소리나 지르기 일쑤였다. 즉, 사내들은 놀고 안주인이 가계를 책임지는 구조였다.

아레이나는 나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보였다. 처음 찾아온 동양인 손님이라서 특별히 호기심을 갖는 것 같았다. 안마당을 지날 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나서 “꼬레아”하고 불렀다. 내 국적이 코리아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순전히 여권 때문이었다. 쿠바에서는 호텔이든 까사든 처음 들어갈 때 여권을 맡겨야 한다. 주인은 여권에 기재된 내용을 꼼꼼하게 장부에 적는다. 옛날 우리나라의 숙박부 제도를 닮았다. 나중에 정부 기관에 보고하는 것 같았다.

나를 부르기는 하지만, 그녀에게 별다른 용건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은 그냥 불러 세우고 보는 것 같았다. 문제는 나는 스페인어를 거의 모르고, 그녀는 한국어는커녕 영어도 한마디 못한다는 데 있었다. 그러니 서로 마주보다 돌아서거나 손짓 발짓이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손짓으로 “내일 아침 식사는 몇 시에 할 거야?” 물으면 손가락을 하나둘 헤아려 대답하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그곳 사람들의 삶을 가감 없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은 타인의 삶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나를 들여다보는 과정이다. 여행할 때 호텔이 아니면 불편해서 견딜 수 없다는 사람들도 간혹 만난다. 개인의 취향에 대해 뭐라고 할 건 아니지만, 나는 가능하면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고 권한다. 불편을 조금만 감수하면 진솔한 삶의 현장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의 가치 중 하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