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 온몸 똥끝까지 나오는 소리

고은의 시를 읽으면 이렇게 온몸에서 떨며 나오는 소리를 듣는다. 이게 고은 시가 갖는 매력이다. 시집의 약력에 시인생활 58년, 시집 여럿이라고만 쓴 것이 전부인 고은 시인은 1933년 군산에서 태어나 ‘현대시’ 창간호에 시가 실리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노벨상 후보에 매년 올라서 세계가 주목하는 시인인 고은은 최근에 시집 ‘초혼’을 냈다. 102편의 신작 시와 표제시인 1073행의 장편 굿시 ‘초혼’을 수록한 것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이육사 ‘광야’를 만나 감동 받아 시에 뜻을 두었고, 중학교 2학년 때 길에서 주운 한하운 시집 ‘한하운 시초’를 읽고 울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시인은 젊어서는 출가한 스님이었으며, 다사다난한 우리나라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통과해 왔다. 시 ‘자화상에 대하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는 8.5였다
나는 6.25였다
나는 4.19 가야산 중이었다
나는 곧 5.16이었다
그 뒤
나는 5.18이었다

나는 6.15였다
그 뒤
나는 무엇이었다 무엇이었다 무엇이 아니었다

이제 나는 도로 0이다 피투성이 0의 앞과 0의 뒤 사이 여기
- ‘자화상에 대하여‘ 전문


시집 표지 띠글에서 밝혔듯이 “선사에서 역사로, 다시 그 너머로 당도한 말의 횃불”이다. 감옥에서 발상한 시인의 대기획인 25년간 5600여 명의 인물을 시로 쓴 ‘만인보’가 국제적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그의 시에는 깊은 불교와 광대한 비약이 숨어 있다. 이것이 고은 시의 수명과 생명력을 추동하는 주요한 요인들이다.

그리고 우리가 잘 모르는 것이 어린이를 제재로 한 시들이다. ‘아기에 대하여’, ‘아기에게’, ‘털실뭉치 앞에서’ 등의 시들이다. 시인은 “아기가/ 섬마섬마// 아기가/ 섬마섬마/ 일어서다가 넘어진다/ 넘어졌다가/ 일어선다/ 다시 넘어진다// 오늘은 이토록 진지한 날// 아기가/ 섬마섬마// 오늘 아침 열한시 지나 아기가 선다”(‘아기에 대하여’ 전문)고 한다.

한 생명이, 한 인간이 스스로 세상에 선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라는 시인의 메시지다. 섬마섬마는 우리 대대로 내려오는 아기에 대한 육아 방식 가운데 하나다. 이 방법으로 아기가 세상에 설 수 있도록 다리에 힘을 길러 준다. 또 아기가 일어서고 넘어지는 과정에서 평생 일어서고 넘어져야 하는 인생의 원리를 원초적으로 가르쳐 준다.

아울러 고은의 동시 그림책 ‘씨튼 동물기’와 ‘5대가족’, 근간 예정인 ‘장날’도 눈여겨 불 것을 독자들에게 제안한다. 고은 문학의 넓이를 확인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초혼=고은 지음 창비 펴냄. 304쪽/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