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 자연과 인사의 교감과 소통

이경철 시인의 첫 시집이다. 시인은 1955년 전남 담양 출생인데,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생활을 하면서 1989년부터 ‘현대문학’ 등 잡지에 월평 등 다수의 현장 비평 글들을 써왔다. 그러다가 2010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인은 시집의 머리글에서 “우리네 삶의 궁극인 그리움을 두드려보려고 했”고 “그리움의 교감을 나누려고 애썼”다고 한다. 활판공판 시월에서 한지에 활판인쇄를 한 보기 드문 시집이다. 4부로 나눠 총 49편의 시를 싣고 있다.

위 시에서 시인은 해가 뜨고 지는 것, 꽃이 피고 지는 것이 별거 아니라고 한다. 한 해가 가거나 바람이 불거나 구름이 흘러가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런 자연현상과 마찬가지로 네가 떠나가거나 마음 그림자 지는 것, 마음 그림자 켜 켜에 울컥하는 것, 눈물짓는 것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자연 현상에 인사를 개입시켜 자연과 인간의 자연스러운 교감과 소통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시에는 화초와 초목이 많이 등장한다. 제목에서만 찾아봐도 버드나무, 억새꽃, 꽃창포, 붓꽃, 민들레, 모과꽃, 나리꽃, 돌배, 자작나무, 층층이, 구절초, 칡꽃 등이다. 시인의 됨됨이가 이렇게 사나운 동물성이 아니라 온순한 식물성이라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식물성의 자연에서 인사를 비유하는 시들이 어딘지 모르게 공감이 잘된다는 느낌이다. 아래 같은 시들이다.

꽃잔디꽃 위에 철쭉꽃/철쭉꽃 위에 모란꽃/부처님 색시 같은 모란꽃이 피었습니다/모란꽃 위에 소나무꽃 노랗게 피었습니다/사월이라 초파일 우리집 앞마당은/눈길 머문 층층이 다 맞춤한 꽃세상인데/천지간 부칠 데 없는 이 내 마음만/송홧가루 되어 아리게 날리고 있습니다.(‘층층이꽃 세상인데’ 전문)

음력 4월 초파일이면 봄꽃이 한창이다. 꽃들은 천지간에 층위를 달리하며 피고, 층위를 달리한 꽃들을 시인이 열거하고 있다. 열거 방식의 진술을 통해 부처님오신날이자 꽃 천지인 이날의 화사한 풍경을 형상하고 있다. 봄날이어서 마음이 부칠 데 없이 싱숭생숭해진 화자는 송홧가루가 되어 아리게 날리고 있다고 한다.


시 ‘민들레 비명’에서 화자는 민들레를 “조선 산하 모퉁이 구석구석 쫙 깔려” 땅의 마음을 지피는 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언뜻 부는 바람에 햇살 낙하산 타고 흩날리는 홀씨에 “어딜 그리 바삐 가시나요”라고 한다. 이유는 아직도 민들레가 “도심의 보도블록 틈새”에서 발길에 채면서 땅의 마음을 시퍼렇게 부여잡고 있기 때문이다. 시퍼렇다는 민들레 푸른 잎이기도 하지만 땅의 마음이자 이리저리 채이며 천대받는 민중들의 형상이다.

◇그리움 베리에이션=이경철 지음. 시월 펴냄. 119쪽/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