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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적산가옥을 찾아가는 여행

<56> '살아있는 교과서'와 같은 유산들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입력 : 2017.03.05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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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여행은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이다.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는 수단이다. 여행자들이 전하는 세상 곳곳의 이야기는 흥미와 대리만족을 함께 안겨준다. 이호준 작가가 전하는 여행의 뒷얘기와 깨달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충남 강경에 남아있는 적산가옥/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충남 강경에 남아있는 적산가옥/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해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정부에 귀속되었다가 일반에 불하된 일본인 소유의 주택.’ 사전에서 적산가옥을 찾아보면 이렇게 풀이해 놓았다. 즉,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살다 두고 간 집을 말한다. 해방된 지 7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적산가옥은 곳곳에 남아있다. 서울, 부산, 대구 등에서도 볼 수 있지만 특히 많은 곳은 전북 군산, 충남 강경, 경북 구룡포 등이다.

적산가옥을 보면 멈춰버린 시간이 박제돼 걸려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동네에 가면 100년 전 쯤으로 돌아간 듯 낯설기까지 하다. 군산은 적산가옥이 유난히 많은 곳이다. 군산항은 일제 때 중부지역의 관문이었다.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의 반출 기지 역할을 하면서 한때 일본인이 1만 명 가까이 살 정도로 번성했다고 한다. 군산시 내항 주변에는 일본인 포목상 히로쓰(廣津)가 살았다는 ‘히로쓰 가옥’을 비롯해 적산가옥이 꽤 많다. 이 집은 영화에도 자주 등장했다. 또 1909년에 지어진 일본식 사찰 동국사도 있다. 이밖에도 신흥동·장미동·영화동 일대에 적산가옥이 많이 분포돼 있다.

적산가옥이 군산 못지않게 많이 남아 있는 곳이 강경이다. 지금은 논산시에 속한 조그만 읍에 불과하지만 한 때는 큰 항구였다. 1600년경에는 평양‧대구와 함께 조선 3대 시장 중 하나로 이름을 날렸다. 서해에서 나는 조기‧갈치‧홍어 따위의 온갖 수산물이 모여들면서 전국 장사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주막‧여각(旅閣) 따위로 흥청거렸다고 한다. 장날이면 읍에서 10리 밖까지 좌판이 이어질 정도로 대규모 장이 섰다.


지금도 강경에 가면 그 시절 누렸던 영화의 흔적들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해마다 김장철이 시작되기 전이면 젓갈을 사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다. 해산물을 보관하기 위해 발달했던 염장(鹽藏)기술의 끝물이 젓갈로 남은 것이다. 그래서 강경은 곳곳에 젓갈 파는 집들이 늘어서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곳에도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강경은 현대화의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남긴 잔재들이 비교적 원형대로 보존돼 있다. 읍내를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 시대 어느 거리를 걷고 있는지 헷갈릴 때도 있다.


충남 강경에 남아있는 적산가옥/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충남 강경에 남아있는 적산가옥/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특히 지난날 상권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리 골목길에는 옛날 간판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모두 일본식 집들의 처마 위에 붙어 있는 것들이다. 상권이 옮겨가는 바람에 장사를 접은 지 오래라 간판 위에 페인트칠을 해놓은 곳도 있고, 너무 낡아서 바람이 불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되는 집도 있다. 따지고 보면 그래서 더욱 눈길이 간다. 적산가옥이 아니더라도 이곳은 골목마다 낡은 이발소, 오래된 창고 등이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활동영화처럼 이어진다.

그 풍경 한참 속을 걷다보면 약간 노곤해지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전신을 감싸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개발을 염원하는 주민들에게는 돌 맞을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누구나 본능적으로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한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시절 거세게 불었던 새마을운동도 이 읍의 느리게 가는 시계를 바꿔 놓지 못했다. 적산 가옥이 비교적 튼튼하게 지어진 것도 오늘날까지 남게 된 원인 중의 하나다. 쉽사리 무너지지 않으니 조금씩 손을 보면서 살아온 것이다.

이 적산가옥이야말로 보는 관점에 따라서 정 반대의 의미를 갖는다. 부끄러운 역사의 잔재이기 때문에 지우개로 지우듯 없애 버리는 게 옳다는 주장도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잘 보존해서 후손들에게 교훈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틀렸다고 할 수 없다.


개인의 의견을 말하라면 당연히 보존 쪽이다. 일본인들에 의해 지어진 집이라고 해도 엄연히 우리 땅의 건축물이다. 우리의 흙이나 나무로 만든 것은 물론 벽돌 한 장에도 선조들의 땀이 배어 있을 것이다. 건물 한 둘 사라진다고 모든 얼룩이 깨끗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부끄러운 것일수록 가슴에 새기고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교훈으로 삼아야한다.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면 군산이나 강경에 들러보라고 권하고 싶다. 때로는 볼품없는 유산이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교과서가 되기도 한다.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적산가옥을 찾아가는 여행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7년 3월 4일 (10:09)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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