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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민초들의 발자취를 찾아간다

<57> 경북 예천의 '삼강주막'에서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입력 : 2017.03.1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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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여행은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이다.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는 수단이다. 여행자들이 전하는 세상 곳곳의 이야기는 흥미와 대리만족을 함께 안겨준다. 이호준 작가가 전하는 여행의 뒷얘기와 깨달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삼강주막 전경/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삼강주막 전경/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내가 예천에 자주 가는 이유는 그곳에 삼강주막이 있기 때문이다.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에 있는 이 오래된 주막은 근현대 민초들의 삶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흔치않은 유물이다. 한때는 쓸쓸하게 잊혀갔지만, 이 땅의 ‘마지막 주막’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삼강은 낙동강‧내성천‧금천 등 세 개의 강이 합쳐지는 곳이라 해서 생긴 이름이다. 1900년 전후에 세워진 이 주막은 삼강나루를 거쳐 가는 길손과 낙동강을 타고 오르내리던 소금배의 사공들, 먼 길을 오가는 보부상들이 먹고 자는 곳이었다. 삼강은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새재를 넘기 위해선 반드시 이곳을 지나야 했다.

삼강주막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을 따라 새로운 길이 생기고 교통수단이 다양화되면서 점차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시나브로 줄던 참에, 2004년 바로 곁에 다리가 놓이면서 나룻배도 사라지고 삼강주막도 기능을 잃게 됐다.

삼강주막의 마지막 주모였던 유옥연 할머니는 반세기 넘게 주막을 지키다가 다리가 놓인 다음 해인 2005년에 타계했다. 주막은 유 할머니가 떠난 뒤 방치돼 폐가처럼 퇴락했었다. 그러다 2005년 12월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34호로 지정된 데 이어 2007년부터 예천군이 복원을 시작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주막의 규모는 처음 복원할 때보다 많이 커졌다. 초기에는 볼 수 없었던 보부상 숙소와 사공 숙소도 들어섰다. 갑술년(1934년) 대홍수 때 떠내려간 것들을 하나씩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최근에 찾아갔을 때도 문화단지를 조성한다며 인근에 대대적인 공사를 벌이고 있었다. 전체 규모가 커지는 만큼 원래 주막은 자꾸 작아져 가고 있다. 새로 지은 집들 사이에 묻혀 존재감이 자꾸 희미해지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삼강주막의 마지막 주모 유옥연 할머니가 부엌에 남긴 외상장부/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삼강주막의 마지막 주모 유옥연 할머니가 부엌에 남긴 외상장부/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주막은 애당초 그리 큰 규모는 아니었다. 조금 큰 방 하나에 작은 방 하나, 부엌과 서넛 앉으면 꽉 차 보이는 뒷마루가 전부. 삼강주막이 처음 복원됐을 때는 방안에 들어가서 술과 간단한 안주를 먹을 수 있었다. 갈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이 작은 곳에 얼마나 많은 사연이 배어있을지.

길어야 100년 전에 살다간 사람들의 숨결을 들어보려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과거를 보러 가던 유생, 가족의 생계를 위해 팔도를 누비던 보부상, 먼 길을 거슬러 올라온 뱃사공들의 목소리가 들릴 것 같다. 전쟁 끝에 집도 가족도 잃고 떠돌던 유민은 왜 없었으랴. 누구는 생존의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먼 길을 걷다 들렀을 것이다. 돌부리에 차이는 짚신, 찬바람이 숭숭 드나드는 옷에 의지해 길을 걷는 사람들….

삼강주막에 가면 꼭 들러볼 곳이 있다. 유옥연 할머니가 쓰던 부엌이다. 무척 좁은 이 부엌은 여느 시골살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솥이 걸려 있고, 바닥에 묻어놓은 술독과 나무로 만든 찬장 하나씩.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부엌의 벽에 그어져 있는 숱한 눈금들이다. 전에는 자연 상태로 놓아뒀는데 훼손이 심해지는 바람에 아크릴 판을 씌워놓아서 금방 찾을 수 있다. 이 금들이 바로 유 할머니가 남긴 외상장부다.

글을 몰랐던 주모는 누가 막걸리를 먹고 외상을 하면 벽에 ‘누구, 얼마’라고 금을 그어놓았다고 한다. 보통 사람이 보기에는 그저 아래위로 그은 금에 불과하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금들끼리의 차별성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유 할머니는 그것만으로 사람과 액수를 구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건너 마을 사는 순돌이 아버지 얼마, 소금 싣고 온 뱃사공 박 씨 얼마… 그렇게 모두 달랐다고 하니 신기할 뿐이다.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서, 수십 년 전 세상을 떠난 주모가 남긴 흔적을 음미하는 맛은 색다르다. 어찌 보면 그 외상장부를 보려고 삼강주막에 가는 셈이다. 막걸리 한 잔씩 걸치고 왁자지껄 길을 나서는 사내들, 그들이 외상값을 갚는 날을 기약하며 부지깽이로 벽에 금을 긋는 주모.

한 시대 민초들의 삶이 활동사진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박물관에 있는 것만 문화고 유산은 아니다. ‘보잘 것 없는’ 흔적이 말해주는 이야기가 화려한 건물 속의 문화재보다 훨씬 웅숭깊어 보일 때가 있다.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민초들의 발자취를 찾아간다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7년 3월 10일 (18:58)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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