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은 용' 윤이상의 음악 통영에 울려퍼졌다

31일 경상남도 통영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2017 통영국제음악제'가 개막했다. /사진=통영국제음악재단

작곡가 윤이상 탄생 100주기를 맞은 통영국제음악제의 막이 올랐다. 개막을 알리는 첫 곡은 윤이상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첼로 협주곡'(1976). 독일 첼리스트 니콜라스 알트슈태트의 활 위를 따라 고(故) 윤이상의 삶을 담은 연주가 펼쳐졌다. 무게감과 치열함이 느껴지는 무대에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지난 31일 경상남도 통영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2017 통영국제음악제' 개막을 알리는 공연이 개최됐다. 슈테펀 숄테스가 지휘하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 연주에 첼리스트 니콜라스 알트슈태트, 소프라노 이명주, 알토 우르술라 헤세 폰 덴 슈타이덴 등 쟁쟁한 음악가들이 협연을 펼쳤다.

'첼로 협주곡'의 협주 아닌 협주가 우울하고 비장하게 시작됐다. 음악학자 김용환에 따르면 "독주악기와 오케스트라가 상호간에 어우러지는 것을 포기한 유일한 협주곡"이다. 협주라기보다는 첼로의 외로운 싸움에 가깝다. 단악장이지만 첼로의 '독백'을 닮은 연주 패턴에 따라 크게 세 단락으로 구성됐다고 볼 수 있다.

31일 경상남도 통영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린 '2017 통영국제음악제' 개막공연에서 니콜라스 알트슈태트와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윤이상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사진=통영국제음악재단

독일 연주가 니콜라스 알트슈태트의 첼로 연주는 때로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뚫고 나오거나 엇박을 달리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첫 번째 '독백'에서는 거문고처럼 퉁기는 소리를 내며 저항하지만 오케스트라에 포위당해 충격적인 패배를 경험한다. 두 번째 '독백'에 이를 때쯤에는 첼로 활의 올이 풀어질 정도로 격렬한 연주가 이어졌다.

대망의 세 번째 '독백'이 이어졌다. 첼로는 '라(A)'음을 향해 조금씩 음계를 높인다. 마침내 '솔(G)', 조금 더 힘을 내 반음 높은 '솔 샵(#)'까지 닿지만 끝끝내 '라'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협주는 오보에와 트럼펫이 첼로를 대신해 음을 이어받으며 끝난다. 거친 질주 끝에 '솔 샵' 음으로 화해버린 첼로의 결말에 관객들은 네 번의 커튼콜을 이끌어내며 환호했다.


윤이상은 자신의 작품에서 인간을 상징하는 악기는 '라'에 이를 수 없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작곡가였지만 분단된 조국의 현실에서 '빨갱이 간첩'으로 내몰리며 고국 땅에서 추방당한 윤이상의 절뚝거리는 삶과도 닮았다. 그는 '첼로 협주곡' 이후 음악 외적인 메시지를 작품에 담기 시작했고 이를 기점으로 그의 음악 양식도 크게 변화했다.

"나 자신이 어린 시절에 첼로를 연주했기 때문에 나는 이 악기에 나의 자서전적 과정을 부여했다. 나의 생각, 나의 경험, 그리고 나의 느낌들이 이 작품의 솔로 파트에서 같이 울리고 있다. 이 솔로 파트는 오케스트라에 의해 대변되는 세계와의 협연을 통해 나의 전 생애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윤이상, 김용환 옮김)

개막 공연은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담은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윤이상의 곡과 동·서양을 아우르는 작품으로 구성된 통영국제음악제는 오는 9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