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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 모두가 한바탕 바람이고 꿈인 것을

<105> 이사가 시인 ‘사랑, 그 한없는 집착으로부터’

시인의 집 머니투데이 공광규 시인 |입력 : 2017.06.17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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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 모두가 한바탕 바람이고 꿈인 것을
대학 정년 퇴임을 앞두고 대장암 진단을 받은 시인은 항암 치료 중이다. 시에서 화자는 마당에 나갔다가 가을바람이 불자 모자를 벗는다. 지난 여름이 힘들었다고 한다. 성대가 아파 말이나 노래도 힘들어 잎을 다 내려놓은 겨울나무처럼 쉬고 싶다고 한다. 화자에게는 모든 것이 힘들 뿐이다. 잡초를 뽑는 일도, 꽃을 가꾸는 일도, 사람을 기다리거나 다투는 일이 힘에 부친다.

발병 이전 무엇을 해보거나 되어보겠다는 욕심이나 누구를 사랑하는 일, 정의를 위해서 싸워야 한다는 생각들도 병이나 죽음 앞에서는 “풀잎처럼 가”벼운 문제일 뿐이다. 화자는 이런 부질없는 생각들을 담아두지 않고 강물이나 구름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싶다. 그간 자신의 삶이라는 것이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것이었음을 깨닫고 정리한 시인의 인생관이다.

고전 시가를 전공하고 대학에서 35년여 동안 학생들을 가르쳐온 이사가(본명 이임수) 시인은 2002년 첫 시집 ‘수유꽃 지더니 차마 산꿩이 울고’와 2012년 ‘구름이나 쳐다보는 하느님’을 내었다. 이번 시집 ‘사랑, 그 한없는 집착으로부터’는 세 번째다. 시인은 시집에서 그간 학문과 생활경험 속에서 사유하고 체득한 달관의 세계를 떠남과 자유와 죽음의 어휘들을 동원해 빈번하게 저물어가는 인생의 날들을 변주하고 있다. 시 ‘휘파람새’도 그중에 하나다.

사월이면 꼭 휘파람새가 운다
마을처녀들 가슴에 봄바람 불라고
새벽부터 일어나 몸단장하고
나물도 캐고 그리운 임도 만나보라고

괴나리봇짐을 챙겨 어디로든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고
가출이든 출가든 집시가 되든
바람이 부는 대로 자유롭게 살아보라고

늙은 영감 할미들아
당신들 살아온 게 삶이냐고
얄팍한 체면이나 도덕이 그리 값지냐고
한번이라도 마음대로 살아봤느냐
나만큼 휘파람이라도 실컷 불어봤느냐?
목이 쉬도록 사랑한다고 울어나보고
에이 더럽다 욕이라도 해보았느냐?
- ‘휘파람새’ 전문


화자는 휘파람새 울음소리를 자유롭게 살아보라는 자연의 명령으로 듣는다. 짐을 싸서 가출이나 출가나 집시가 되어 자유롭게 떠다니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3연에는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는 체면이나 도덕에 얽매여 마음대로 살아보지 못한 것은 진짜 삶이 아니라고 격렬하게 부정한다.

대개의 사람은 평생 체면과 관습과 제도에 얽매어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발산해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시인은 시 ‘바람의 노래 1’에서는 집이라는 소유를 벗어나 보헤미안처럼 어디서든 자유롭게 살라고 선동한다. 어느 삶이 좋고 나쁘다고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누구에게나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다 바람처럼 떠”나자는 것이다. 시 ‘바람의 노래 2’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한바탕 바람이요 꿈인 것을!”이라고 일갈한다.

시 ‘여가 거고 거가 여네’는 불교에 해박한 시인의 선취가 듬뿍 묻어나는 시다. “울지 말게/ 살아있거나 죽었거나/ 그저 잠시 만날 뿐이네// 노래하고 춤추고/ 울고불고 자다 깨다/ 그러다 조용해지지// 바람처럼 흔적도 없는/ 시작은 어디고 끝은 어디인가?// 두려워말게/ 대문 밖이 저승길이라네/ 이별이 만남의 시작이요/ 만남이 헤어짐의 시작이지/ 여기 죽음이 저기 탄생이요/ 그곳 생일이 이곳 제삿날/ 여가 거고 거가 여니라.” 삶과 죽음의 이분법에 사로잡힌 중생에게 던지는 생사일여의 도저한 법어와 같다.

◇사랑, 그 한없는 집착으로부터=이사가 지음. 나무기획 펴냄. 152쪽/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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