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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빈에서 만난 앙투아네트

<70> 쇤브룬 궁전의 마리 앙투아네트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입력 : 2017.07.01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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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여행은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이다.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는 수단이다. 여행자들이 전하는 세상 곳곳의 이야기는 흥미와 대리만족을 함께 안겨준다. 이호준 작가가 전하는 여행의 뒷얘기와 깨달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쇤브른 궁전 전경.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쇤브른 궁전 전경.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유럽에는 아름다운 도시가 많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중세쯤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풍경 속을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행복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빈)도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다. 그중에서도 여행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은 어디일까. 슈테판 대성당 등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단연 쇤브룬 궁전을 꼽는다.

쇤브룬 궁전에 가면 먼저 웅장한 규모에 놀라게 된다. 건물 길이만 해도 200m에 가깝고 방만 해도 무려 1441개나 된다. 신성로마제국을 지배했던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광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곳이다. 쇤브룬 궁전은 흔히 파리 베르사유 궁전과 비교되고는 한다. 베르사유 궁전을 본떠서 지었기 때문이다. 1696년 합스부르크가의 레오폴트 황제는 베르사유 궁전보다 더 화려하고 웅장한 궁전을 지을 것을 명한다. 이에 따라 17년간의 공사 끝에 완성된 것이 쇤브룬 궁전이다.

나는 어느 곳에 가도 습관처럼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인다. 쇤부룬 궁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합스부르크가 유일한 여제이자 강력하게 왕조를 이끌었던 마리아 테레지아 이야기는 특히 마음을 당길 수밖에 없었다. 그녀야말로 쇤브룬 궁전을 완성시켰고 진정으로 사랑한 주인이었다. 18세기 유럽 최대의 왕조였던 합스부르크가. 그곳의 유일한 여성 상속자이자 통치자가 마리아 테레지아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여성이 승계할 수 없기 때문에, 마리아 테레지아는 남편 프란츠 슈테판을 명목상의 황제로 즉위시키고 자신이 오스트리아 및 신성로마제국의 실질적 통치자가 된다. 그녀는 오스트리아의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유럽 열강의 각축 속에서 나라를 지켜낸 뛰어난 정치가였다. 그런 의미에서 쇤부룬 궁전을 찾아가는 것은 마리아 테레지아를 보러 가는 길이기도 하다.

궁전의 방들을 하나씩 돌아보다 보면 화려함의 극치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방마다 배어있는 이야기는 발걸음을 쉽사리 옮기기 어렵게 만든다. 거울의 방은 여섯 살짜리 모차르트가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던 곳이다. 합스부르크가의 마리 루이즈와 결혼했던 나폴레옹의 방도 있는데, 당시 빈을 정복했던 나폴레옹은 이 방을 사령부로 사용했다고 한다.

궁전 뒤쪽 언덕에 있는 글로리에테. 18세기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개선문이다.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궁전 뒤쪽 언덕에 있는 글로리에테. 18세기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개선문이다.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조금 뜻밖인 것은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이름과 만나는 순간이다. 궁전에는 그녀가 사용하던 방과 그녀의 초상화가 있다.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은 “어? 파리에 있어야 할 마리 앙투아네트가 왜 오스트리아에 있지?”하며 놀랄 수도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왕비였지만, 결혼 전에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이었다. 여기서 두 사람 간의 연결고리를 확인할 수 있다. 쇤브룬 궁전에 마리 앙투아네트의 방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릴 적 자유분방하게 자랐다는 그녀 역시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되었다.

14세 때인 1770년 결혼을 하고 1774년 왕비가 된 마리 앙투아네트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살았으며,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사교계에서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후세에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더 많이 남겼다. 사치스럽고 난잡한 파티를 여는 왕비,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고 국민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 언행으로 프랑스 혁명을 유발한 왕비, 국외로 탈출하려다 잡혀 단두대에서 처단된 왕비라는 서술이 그녀의 뒤를 따라다닌다. 물론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당하게 폄하되고 죽임을 당한 비운의 여인이라는 평가도 있다.

쇤브룬 궁전에서는, 각각 기억하고 있던 마리아 테레지아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간과 공간이 겹치다 보니 그들에 대해 많은 생각이 오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이 여행의 묘미이기도 하다. 여행기를 쓸 때마다 가장 중시하는 대상이 바로 ‘사람’이다. 오래전 살다 간 사람이든, 지금 살아있는 사람이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거울삼아 자신을 비춰보는 과정은 여행을 윤택하게 해준다.

쇤브룬 궁전에 있는 동안, 빛나는 삶을 살았던 오스트리아의 집권자 마리아 테레지아와, 한때는 화려했지만 끝내 불행하게 생을 마감했던 그녀의 딸 마리 앙투아네트와 함께했다. 무엇이 그녀들의 희비극을 갈랐을까…. 생각의 깊이를 더해주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빈에서 만난 앙투아네트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7년 6월 30일 (09:31)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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