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 늙는 것을 억울해 하지 말자

이미 국민이 애송하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풀꽃’)로 잘 알려진 ‘풀꽃의 시인’ 나태주가 시집 ‘틀렸다’를 냈다. 표제시 ‘틀렸다’는 세상에 돈이 많고 명예나 미모를 가진 사람이 많으니까 이제는 “돈 가지고 잘 살기는 틀렸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이며, 누구나 공평하게 허락된 시간을 어떻게 선택하여 쓰는가가 잘 사는 것이라는 노시인의 서정적 가르침이다.


시인은 시를 통해 내가 좋은 일, 기쁜 일, 하고 싶은 일을 고르고 골라서 순간순간을 살아보면 어느새 빛나는 사람이 되고 기쁜 사람이 되고 스스로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런 나 시인은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대숲 아래서’로 등단하였다. 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뒤 공주문화원장을 역임했다. 수십 권의 시집을 내고 많은 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공주에 정착하며 풀꽃문학관과 전국 강의를 통해 자신의 시 세계를 널리 알리고 있다.

나태주의 시는 쉽고 잘 읽히면서도 의미가 깊다. 대중이 그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다. 시의 주제는 인생에 대한 잔잔한 깨달음과 지혜다. 그의 시집을 읽어가다 보면 달관한 인생의 맛과 묘미가 느껴진다. 인생을 여행길로 비유한 시 ‘여행길’에서 삶의 길에서 만난 사랑이 낯설고 부질없이 화사하지만 구름 같다고 한다. 그러나 꽃이었고 새소리였고 바람이었다고 한다. 사랑의 무상성과 동시에 아름다움을 자연물에 비유하고 있다.

낙타도 없이 나는
낡고 병든 조랑말 한 마리
몰고 다닌다

두 손으로 고삐를 잡고
발로 비벼주어야만
간신히 걸어가는 조랑말이다

오늘은 조랑말도 나도
많이 지친 날
조금만 가자 조금만 더 가보자
우리 집이 멀지 않다

- ‘자전거’ 전문

자전거를 타고 풀꽃문학관으로 가는 노시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오래 타서 친숙한 자전거를 낡고 병든 조랑말로 비유하고 있다. 자전거와 화자나 같이 늙었다. 동병상련이다. 대상인 사물과 시인이 일체가 된다. 좋은 시의 요체이다. 이런 비유를 시집 곳곳에 만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이를테면 백자를 여인에 비유한 “하루 종일/ 바라만 보고 싶은/ 알몸// 일생동안도/ 지겹지 않을 것 같은/ 여인”(‘백자’ 전문)이나 “방바닥 위에/ 동동 떠가는/ 두 개의 꽃잎/ 어려서/ 어려서 딸아이/ 맨발”(‘돛단배‘ 전문) 같은 빛나는 시들이다.


시 ‘그러함에 사랑이여’에서 “우리도 조금씩 나이를 먹고/ 늙는 것을 억울해 하지말자”고 하는 시인의 마음속에는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 “눈이 맑고 귀가 밝은 아이이며”, “작은 바람 하나에도 흔들리고 구름 한쪽에도 울먹이고 붉은 꽃 한 점에도 화들짝/ 웃는 아이”가 살고 있다. 시인은 유언과 같은 ‘수목장’에서 “시를 세상보다 사랑하고/ 사람보다 좋아한 사람/ 잘 살다 갔음/ 이제 편안히 누웠음"이라는 묘비를 적어달라고 한다. 무더운 여름 휴가를 노시인의 시집과 같이 보낼 것을 권한다.

◇틀렸다=나태주 지음. 지혜 펴냄. 178쪽/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