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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 가난한 가족사, 사이의 것들이 그립다

<112> 임후남 시인 ‘내 몸에 길 하나 생긴 후’

시인의 집 머니투데이 김정수 시인 |입력 : 2017.08.05 09:43|조회 : 5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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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 가난한 가족사, 사이의 것들이 그립다

2011년 ‘시현실’로 등단한 임후남(1963~ )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내 몸에 길 하나 생긴 후’는 “마음 진 자리에 기억만 눈부시게 남”(‘꽃들 3’)아 “다시 새로운 몸으로 살아가”(‘꽃들 1’)야 하는, 좌절조차 할 수 없는 시인의 참회록이다. “마음 진 자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가난’이라는 고약한 슬픔이 도사리고 있다.

기술이 없던 아버지는 막일을 했다
벽돌을 나르거나 삽질을 하거나
그러다 더 늙어졌을 땐 공사장 쓰레기를 치웠다
때때로 십장은 아버지에게 돈을 주지 않고 사라졌고
아버지는 치욕과 분노를 발끝으로 채면서
서울 남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걷거나
혹은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오래 걸었다
차비 몇 푼밖에 아낄 수 없었던 아버지가
막걸리에 취해 빈손으로 돌아오면
엄마는 대거리를 했다
참 못난 아버지였다 그 시절에는
- ‘산밤’ 부분


어느 날 그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어쩌다 보니 아이들이 줄줄이 크고 있을 때,
고향 떠나 서울 변두리에 간신히 방 한 칸 세 들었을 때
서울사람보다 더 낯선 시장통에 나앉았을 때,
한솥밥을 나눠 먹은 아이들이
공장과 학교와 골목으로
저마다 각자의 세상으로 내몰려졌을 때
그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루의 먹거리도 해결하지 못할 때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육체가 병들어갈 때

술에 취하지 않은 그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자기도 몰래 어른이 되었다는 게
- ‘어른’ 전문


가난의 시원(始原)에는 아버지의 무능이 자리하고 있다. 가진 것 없고, 물려받은 것 없고, 기술조차 없는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것은 ‘막일’뿐이다. “벽돌을 나르거나 삽질을 하거나/ 그러다 더 늙어졌을 땐 공사장 쓰레기를 치”우는 일로 식구를 먹여 살렸지만 많은 식구를 먹여 살리기엔 역부족이다. 그나마 품삯을 떼이는 날이면 서울 끝에서 끝까지 몇 시간을 걸어서 귀가한다. 고단한 노동 끝에 걸어서 귀가하는 일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집 근처에 이르러 막걸리라도 한잔 하면 “엄마는 대거리”를 했고, 이를 바라보는 어린 시인에게 아버지는 “참 못난” 존재였을 것이다.

불혹을 넘겨 지천명, 어른이 되어서야 시인은 아버지를 이해한다. “자기도 몰래 어른이” 된 아버지가 ‘아버지라는 자리’를 얼마나 부담스러워하고 무서워했는지를…. 어쩌다 보니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고향 떠나 서울 변두리 간신히 방 한 칸 세 들”고, “시장통에 나앉”고, “한솥밥을 나눠먹은 아이들이/ 공장과 학교와 골목으로/ 저마다 각자의 세상으로 내몰려”질 때, 특히 하루의 끼니조차 구해오지 못하고, 몸이 늙고 병들어갈 때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자리가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무능한 아버지’의 자리에 “참 순한 아버지”(‘산밤’)를 앉힌다. “아이고 소리 한 번 안 내고/ 죽음을 맞이”(‘시. 브. 럴.’)한 아버지를 마음 깊이 받아들인다.

지적장애가 없는 나는
어린 시절에는 가난한 엄마가 부끄러웠고
지적장애가 없는 나는
내 삶이 흔들릴 때마다
더 가난해진 엄마를 원망했다
엄마가 늙고 병들었을 때
지적장애가 없는 나는
엄마의 총기 없음에 화를 내고
엄마의 어눌함에 화를 내고
엄마의 약함에 화를 내다
어느새 중년이 된 지적장애가 없는 나는
엄마의 옛 삶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 ‘지적장애가 없는 나는’ 부분


엄마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가난하고 무능하다. 무능한 아버지를 타박하는 엄마를 어린 시인은 부끄러워하고 원망한다. “엄마가 늙고 병들었을 때” 화를 낸다. 심지어 “엄마의 옛 삶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가난한 삶에 찌든 엄마는 늘 “악다구니를”(‘목욕탕에서’) 썼기 때문이다. 엄마가 팔순이 되어도 좁힐 수 없는 사이가 존재함을 숨기지 않는다. 시 ‘지금은 잠시 발바닥으로 가리고 선 저곳’에서는 침대에서 떨어진 엄마가 침대에도 올라갈 수 없고, 침대 위 이불도 끌어 덮을 수 없어 딸들에게 전화하지만 딸들은 출근 중이거나 스포츠센터에 있거나 인터넷 검색하느라 엄마의 구원을 외면한다. 결국, 엄마는 “이불 한 장 없이 맨몸으로 떠”나고 만다.

이십 킬로그램짜리 쌀부대가 택배로 왔습니다
옛 동료가 보낸 쌀이었습니다
요즘 세상에도 밥을 못 먹고 살까 생각했는데
실직을 하고 보니 밥을 먹는 게 두려웠습니다
세끼 밥을 식구들과 매일 같이 먹으면서
밥그릇이 비워질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당신 밥그릇에서 한 수저 듬뿍 퍼내
제 밥그릇에 담아주던 어머니가 생각나고
수제비며 칼국수 같은 밀가루 음식에 물려
밥상머리에서 투정하던 동생들도 생각나고
김치와 콩나물을 듬뿍 넣고 끓인
붉디붉은 매콤한 맛이 눈물 돌게 하고

쌀이 밥이 되는 것을
그 밥이 내 아이 살이 된다는 것을
쌀부대를 받아들고서야 알았습니다
자꾸자꾸 작아져
아이보다 더 작아진 내가
이십 킬로그램짜리 쌀부대에 쓰러지고 맙니다
- ‘쌀이 밥이구나’ 전문


“너도 너 같은 자식 낳아봐라. 그러면 내 맘 알 거다”는 말이 있다. 시인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도 ‘엄마의 악다구니’를 이해할 수가 없다. ‘나와 엄마’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간극은 실직이라는 극한 상황에 이르러 좁혀진다. 실직으로 집에 쌀이 떨어지자 옛 동료가 쌀 20㎏을 택배로 보내준다. 쌀부대를 마주한 시인은 “쌀이 밥이 되는 것을/ 그 밥이 내 아이 살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제야 비로소 엄마가 “당신 밥그릇에서 한 수저 듬뿍 퍼내” 내게 준 이유를 깨닫고는 “아이보다 더 작아진 내가/ 이십 킬로그램짜리 쌀부대에 쓰러지고” 만다. 쓰러져 하염없이 운다. 뒤늦게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는 순간이다.

물론 이런 순간이 한순간에 찾아오는 건 아니다. 표제시 ‘어두워지고 난 후’에서 보듯, 오랜 성찰 후에 찾아오는 깨달음이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내 삶을 들여다보다가 불을 켜고 유리창에 비친 나를 마주 보며 다시 반성하고, “더 깊이/ 나는 혼자가 됐”을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밖의 것들이 사라진 후” 진정 나를 들여다볼 때 가능한 삶의 성찰이다. “얼마 남지 않은 오후의 몸”(이하 ‘사이,’)인 시인은 “사이의 것들”이 그립다. “절벽 앞에 선 내 마음이 비로소 환”(‘선운사’)해지는 나이가 된 것이다.

◇ 내 몸에 길 하나 생긴 후=임후남 지음. 북인 펴냄. 112쪽/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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