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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 ‘에셔의 손’ 작가 김백상씨…“주체와 객체의 모호성 그리고 싶었다”

저자 인터뷰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입력 : 2017.09.30 06:29|조회 : 8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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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백상씨. /사진=김고금평 기자<br />
작가 김백상씨. /사진=김고금평 기자
심사위원 김보영 작가는 머니투데이 주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 수상작 ‘에셔의 손’에 대해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주며 “다른 작품과 비교했을 때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수준이 월등하다”고 평가했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띠지만 ‘전뇌’(전자두뇌)를 활용하는 방식이 훌륭하게 SF적이고, 그 활용방식은 후반으로 갈수록 더욱 흥미롭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이 작품의 주인공 김백상(40)씨는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 “아…”하는 작은 탄식만 내뱉고는 “내가 받아도 되는 상인지 모르겠다”고 겸손해 했다.

‘에셔의 손’은 네덜란드 판화가 에셔의 유명한 작품 ‘그리는 손’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그리는 손’은 어느 손에서 그림이 시작됐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출발점이 모호한 양손을 통해 주체와 객체의 혼돈, 또는 모호성을 그린다.

‘에셔의 손’ 역시 전자두뇌를 통해 엮인 ‘인간 회로’ 관계들의 주·객체 판단의 모호성을 밀도 있게 담는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명제이니까 당연히 받아들이지만, 삶의 과정이 죽음이 아니라는 가정 역시 모호한 정의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죽음 같은 삶에서 인간은 어쩌면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 다시 ‘부팅’함으로써 새로운 삶을 살려는 욕망이 있지 않을까요? 그런 설정에 주목했어요.”

그 욕망은 전뇌 회로를 만드는 사람의 이식 작업으로 시작해 에셔의 손처럼 숫자가 늘어나 결국 전뇌 설계도가 완성되는 단계로 진입한다. 완성된 작업 끝에 이 작품이 묻는 SF적 질문은 ‘기억’과 ‘죽음’에 관한 인간 본질의 문화적 테마다. 과학과 문학의 접점, 또는 연결성이 논리적으로 부합하는 지점은 이 작품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결정적 요소이기도 하다.

심사위원 전원이 “공들여 쓴 작품 같다”는 평가처럼, 작가는 이 작품에 10여 년의 시간을 들였다.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에서 '에셔의 손'으로 대상을 수상한 김백상씨. 그는 전자두뇌라는 소재로 기억을 지우고 새 삶을 사는 사람들의 관계를 SF적으로 풀어냈다. 심사위원들은 "숨 막히는 긴장감과 탄탄한 문학적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사진=김고금평 기자<br />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에서 '에셔의 손'으로 대상을 수상한 김백상씨. 그는 전자두뇌라는 소재로 기억을 지우고 새 삶을 사는 사람들의 관계를 SF적으로 풀어냈다. 심사위원들은 "숨 막히는 긴장감과 탄탄한 문학적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사진=김고금평 기자

“구상의 시작은 예비군 훈련을 받을 때였어요. 함께 참가한 사람이랑 보초를 서는데, 불현듯 ‘에셔의 그림’이 떠오르더라고요. 그 사람은 핸드폰 문자를 보고 있는데, 저는 도로 맞은 편 지나 가는 사람을 구경하고 있었거든요. 그 사람과 저의 반응을 생각하니, 제 행동이 그 사람의 행동에 의해 유발된 것이라는, 그렇게 영향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독립적이거나 자유의지가 있다고 생각하지 쉽지만, 행동 대부분은 누군가의 영향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자각에 눈 뜬 셈이다. 작가는 에셔의 그림처럼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주는 걸 모르는 것 자체가 ‘인생’이 아닐까 조심스레 살폈다.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누군가로부터 영향받았는지 알기 힘든 모호성, 어쩌면 기억에 의지한 잘못된 주체의식이 빚는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 전뇌를 통한 ‘리부팅’은 진실을 찾아가는 시작점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1년 내 초고를 써놓고 8년간 퇴고를 거듭했다. 수정이 거듭될수록 문학적 완성도는 높아졌지만, 과학적 배경은 낡은 유물로 전락하고 있었다. 당시엔 신선했던 드론의 등장이 시간이 지나 수정된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

작가는 대학 시절 녹내장 판정을 받았다. 친구들이 취업 전선에 뛰어들 때, 그는 늘 두통에 시달리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서야 했다. 독서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 와중에 환갑을 갓 넘긴 아버지가 간경화로 입원하면서 3년간 병수발까지 들었다.

슈퍼마켓 점원으로 7년째 일하고 있는 김백상씨는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공모전 대상 수상으로 불혹의 나이에 등단했다. 아버지 죽음을 계기로 글쓰기에 도전한 그는 이번 대상작 '에셔의 손'을 10년째 손질하며 세상에 내놓았다. /사진=김고금평 기자<br />
슈퍼마켓 점원으로 7년째 일하고 있는 김백상씨는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공모전 대상 수상으로 불혹의 나이에 등단했다. 아버지 죽음을 계기로 글쓰기에 도전한 그는 이번 대상작 '에셔의 손'을 10년째 손질하며 세상에 내놓았다. /사진=김고금평 기자

“30세쯤 녹내장이 자연스럽게 회복되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병원에서 주변의 여러 죽음을 보며 피부로 직접 느끼니까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자는 생각이 떠나질 않더라고요.”

아버지 병실에서 어느 날 글 쓰고 싶다는 간절한 욕망에 이끌려 10일 만에 생애 첫 소설을 쓰고 출판사 최종 예심까지 오르기도 했다. 이후 전업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위해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중소기업에서 포장 작업, 우체국 우편물 분류작업 등 하루 12시간 아르바이트도 마다 하지 않고, 남는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좀 더 안정적인 시간 확보를 위해 현재 동네 슈퍼마켓에서 점원으로 7년째 일하는 그는 아침에 글을 쓰고, 저녁에 상품을 진열한다.

“지금까지 글쓰기가 재미있어요. 구상이 떠오르면 잠이 안 와요. 뭐라고 할까요. 이야기 뼈대를 만들 땐 제가 만드는 것 같지 않고, 제 안의 누군가가 지시하는 것 같아요. ‘에셔의 손’처럼요.”

김고금평
김고금평 danny@mt.co.kr twitter facebook

사는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대로 사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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