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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의 길에서 읽는 편지] 쿠바 클럽에서 만난 부에나비스타

<82> 아바나의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입력 : 2017.10.14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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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여행은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이다.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는 수단이다. 여행자들이 전하는 세상 곳곳의 이야기는 흥미와 대리만족을 함께 안겨준다. 이호준 작가가 전하는 여행의 뒷얘기와 깨달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연주를 시작하기 전 대기하고 있는 뮤지션들.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연주를 시작하기 전 대기하고 있는 뮤지션들.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지금은 쿠바의 우기가 거의 끝나갈 시기다. 6월부터 9월까지는 낮 최고기온이 37도에 달할 정도로 덥고 비가 자주 내린다. 10월로 접어들면 비가 적어지고 11월부터는 건기가 시작돼 낮에는 덥고 밤과 아침저녁은 서늘하다. 쿠바를 생각하면 온몸을 달구는 뜨거운 열기와 아바나에서 만났던 열정적인 뮤지션들이 먼저 생각난다.

처음 쿠바에 갈 때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에 대한 관심이 컸다. 하지만 직접 찾아볼 생각까지는 없었다. 영화에서 본 멤버들이 세상을 떴거나 무대에 설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볼 수 없다면 굳이 찾아갈 필요가 있을까? 쿠바에서 뮤지션들을 만나는 건 비포장도로에서 돌멩이를 보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그런데도 마음을 바꾼 것은 그래도 무언가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렇게 찾아간 저녁, 나는 그야말로 ‘황홀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내가 간 곳은 ‘카페 타베르나’(CAFE TABERNA)라는 카페&클럽이었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물론 여기저기 물어서 최고의 팀이 나온다는 곳을 찾아간 것이긴 하지만…. 알고 보니 그날 나는 오리지널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에 가장 가까운 연주와 춤을 듣고 본 것이었다.

‘카페 타베르나’ 역시 다른 클럽처럼 앞에 무대가 있고 좌석이 빽빽하게 배치돼 있었다. 대개 그렇듯 이 카페에서도 공연을 보면서 식사를 할 수도 있고 술만 마실 수도 있다. 이 클럽은 인기가 좋아서 하루 전에 예약해야 한다. 입장한 뒤 한참 기다린 뒤에야 연주자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총 6명인데 노인이 둘이고 중년과 젊은이 합쳐 4명이었다. 한 마디로 노소(老少)의 조합이었다.

무대가 채워지고 악기 튜닝을 하는 동안 화장실에 가는데, 대기실에 빨간 셔츠를 입고 하얀 모자를 쓴 노인 한 분이 앉아있었다. 언뜻 봐도 80세가 넘어 보이는 흑인이었는데, 범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 “저분이 바로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원년 멤버”라고 귀띔했다. 그럴 땐 사실 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다. 다가가서 손부터 덥석 잡았다. 마치 영화나 전설 속으로 걸어 들어가 주인공의 손을 잡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한껏 고조된 목소리로 인사를 했지만 노인은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고목에서 핀 꽃처럼 환한 미소가 노인의 답례였다.

무대에 나가 춤을 추다 서로의 어깨를 짚고 클럽을 도는 관객들.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무대에 나가 춤을 추다 서로의 어깨를 짚고 클럽을 도는 관객들.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무대가 정리되면서 공연이 시작됐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구부정하던 노인들의 허리가 꼿꼿해지고 손에 힘줄이 돋았다. 마치 연로한 해녀가 물옷을 입고 바다에 들어간 듯 힘찬 몸짓이었다. 무대를 휘감고 달려온 음악이 온 객석을 맴돌았다. 시간이 갈수록 객석과 무대 사이가 한 뼘씩 줄어들었다. 객석에 앉은 사람들이 함께 박수를 치고 몸을 흔들었다. 무대와 관객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이었다. 가수들은 노래하는 중간중간 손짓으로 관객들을 불러냈다. 함께 노래하고 함께 춤추고… 미리 대본이라도 나눠준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한순간 무대가 조용해지더니 사람들의 시선이 무대 반대쪽으로 쏠렸다. 꽤 비중 있는 가수가 등장하는 모양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 사람이 앞쪽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아! 대기실에서 만났던 노인이었다. 뒤에 알아보니 마사고데라는 이름의 무척 유명한 가수였다. 그의 노래가 시작되면서 열정 앞에서 나이가 얼마나 무색해지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신명이 영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속의 아브라임 페레르를 연상시켰다.

세포 하나하나를 헤집고 들어온 음악이 머리를 지나고 심장을 울리고 핏줄을 타고 손끝까지 돌았다. 너 나 할 것 없이 음악이 펼쳐놓은 블랙홀 속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열기가 고조되면서 관객들이 앞으로 나가 춤을 추거나 앞 사람의 어깨를 짚고 클럽을 몇 바퀴 돌았다. 동양도 서양도 없고, 남자도 여자도 없고, 노소도 없고, 흑백도 없고 모두가 음악 속에서 하나였다.

아! 이게 아바나구나. 이게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이구나. 영화나 전설보다 현실은 훨씬 감미롭고 흥겨웠다. 아득한 옛날 흑인 노예들이 뿌린 씨앗이 싹을 틔우고 몸통과 가지를 키우고 열매를 맺어서 면면히 이어온 음악과 춤. 그 안에서 한껏 자유로운 밤이었다.

[이호준의 길에서 읽는 편지] 쿠바 클럽에서 만난 부에나비스타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7년 10월 13일 (09:07)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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