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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노래한 문인 윤선도…'녹우당' 600년 역사를 만나다

사계절 푸른 선비 지조 담은 '녹우당'…4600여점 종가 보물 등 보존

어디로? 여기로! 머니투데이 해남(전남)=이경은 기자 |입력 : 2017.10.16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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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우당. /사진제공=문화재청
녹우당. /사진제공=문화재청
우리나라 서남해의 끝자락 해남의 연동마을에는 600년 역사를 간직한 해남윤씨 어초은파의 종갓집이 있다. 듬직한 덕음산이 고택의 뒤를 지키고 비자나무와 대나무 숲 등 사계절 내내 푸른 빛을 자랑하는 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자연에 둘러싸여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이곳에서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을 노래했던 조선시대 문인, 고산 윤선도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듯하다.

이 고택은 윤선도의 4대 조부인 윤효정이 16세기 초 연동마을에 터를 정하면서 지어졌다. 이 집의 이름 '녹우당'은 조선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의 형인 옥동 이서가 윤씨 가문의 학문과 사상, 문화적 취향 등을 담아 지었다고 한다.

'녹우'는 늦봄에서 여름 사이에 풀과 나무가 푸를 때 내리는 비를 말한다. 이때는 대지의 모든 생물들이 녹색으로 물드는 시기다. 푸르다는 것은 사대부의 지조나 절개를 의미한다. 윤선도가 그의 시조에서 노래한 소나무와 대나무의 상징이 그러하듯, '녹우당'은 사계절 푸른 이 고택의 모습과 사대부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내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녹우당'의 입구에는 종가의 역사를 함께해 온 늙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당당히 서 있다. 가을 무렵이면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융단처럼 쌓아놓는 이 나무는 윤효정이 아들의 과거 합격을 기념하며 심었다고 한다. 관료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과거합격은 사대부 집안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이후 아들들의 과거 합격으로 집안이 융성하면서 해남윤씨가 '해남'이라는 본(本)을 얻고 일약 명문사대부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보면 이 나무는 녹우당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녹우당 사랑채 전경. /사진제공=문화재청
녹우당 사랑채 전경. /사진제공=문화재청

은행나무를 지나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사랑채는 녹우당에서 가장 상징적인 공간이다. 윤선도가 42세 때 봉림대군(후에 효종)과 인평대군의 사부가 됐는데 효종은 즉위 후 윤선도를 위해 수원에 집을 지어주었다. 효종이 죽은 뒤 1668년, 윤선도는 82세 되던 해에 수원에 있던 이 집의 일부를 뱃길로 옮겨와 다시 지었는데 이것이 녹우당의 사랑채다.

사랑채 뒤를 돌아가면 만나는 안채에는 현재 윤선도의 종손 14대손 윤형식씨가 살고 있다. 윤형식씨는 때때로 녹우당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손수 만든 비자나무 열매 강정 등 다과를 내놓고 종가에 대한 이야기도 전한다고 한다. 유물전시관에서는 긴 세월 동안 보존돼온 종가의 보물 등 460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선 윤선도의 글과 그의 증손인 공재 윤두서의 그림을 비롯해 해남윤씨 가전고화첩, 고산자녀 분재기와 같은 고문서 등 귀중한 역사적 자료들이 방문객들을 위해 공개되고 있다.
녹우당을 둘러싼 대나무숲. /사진=이경은 기자
녹우당을 둘러싼 대나무숲. /사진=이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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