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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의 길위의 편지]속초 ‘아바이마을’에 가다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입력 : 2017.10.2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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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에서 바라본 아바이마을 전경/사진=이호준 여행작가
높은 곳에서 바라본 아바이마을 전경/사진=이호준 여행작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오면서 잠시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다. 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 분명 아바이마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 낯설기 때문에 잠깐 든 생각이었다. 내가 처음 아바이마을을 찾았던 게 2009년 5월이었으니 8년만이었다. 짧지 않은 시간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변해 있었다. 좀 더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육교 위로 올라가서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폈다. 역시 기억 속의 아바이마을과는 많이 달랐다. 지붕들은 단정해졌고 주변은 경지정리를 마친 논처럼 질서정연했다.

2009년에 아바이마을을 찾은 것은 신문 기사 한 줄 때문이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6.25 흔적’이라는 제목이었는데, 2011년 신수로가 개통되면 아바이마을 주민들의 집단이주가 불가피하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기사를 비웃기라도 하듯, 시간이 흘러도 아바이마을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방송을 탄 뒤로 더욱 유명해져서 관광객이 숱하게 찾아드는 명소가 되었다.

외곽을 두리번거리다 골목길로 들어서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입구 쪽부터 전에 없던 커피숍이나 아스크림 가게들 들이 들어서 있었다. 소매 끝이라도 잡을 것 같은 호객을 뿌리치고 한참 들어가서야 냉면과 오징어순대를 먹던 집을 발견하고 안도감이 들었다. 참 많이도 변했구나. 다른 곳도 아닌, 아바이마을인데.


커피숍과 음식점들이 밀집해 있는 골목 안 풍경
커피숍과 음식점들이 밀집해 있는 골목 안 풍경

아바이마을.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 바닷가에 있는 마을이다. 1·4후퇴 때 국군을 따라 남하한 함경도 일대의 피란민들이 바닷가에 움막형태의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촌락이다. 함경도 출신 가운데서도 노인들이 많아, 그 곳 사투리인 '아바이'를 따서 아바이마을로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동향 사람끼리 옹기종기 모이면서 신포마을‧홍원마을‧단천마을 등 9개 마을로 구분해서 살았지만, 하나 둘 사라지고 이젠 신포마을만 남아있다.

피란 중에도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고 고향에서 가까운 바닷가에 정착했던 아바이들. 하지만 전쟁은, 내 집으로 돌아가서 살겠다는 소박한 꿈까지 짓밟아버리고 말았다. 반도의 북쪽 끝에서 안온하게 늙어갔어야 할 이들은, 서걱거리는 일상을 운명처럼 등에 지고 타향에 정을 붙여야 했다. 꿈속에서나 고향땅을 밟아보던 1세대 노인들은 거의 사망하고 그 자손들이 고향인 듯 타향인 듯 살아가고 있다.


음식점들이 밀집한 골목을 벗어나 원래 피란민들이 살던 구역으로 들어섰다. 조금 걷고서야 8년 전의 기억과 눈앞의 현실이 조금씩 맞물리기 시작했다. 마을은 고즈넉했다. 골목마다 시간이 남겨놓은 흔적들이 더께처럼 눌어붙어 있었다. 눈에 띄는 사람은 대부분 노인이었다. 몇 걸음 걷는 사이에 세상이 이렇게 바뀌다니.

전에 만났던 노인이 생각났다. 당시 74세의 어른이었는데, 몇 분 남지 않은 피란 1세대였다. 이것저것 이야기 끝에 노인이 처음 정착하던 당시의 정황을 들려줬다.

“피란 올 때만 해도 금방 돌아갈 줄 알았지. 한데, 전쟁이 끝났는데도 길이 막혀 있더란 말이오. 그래서 거처는 마련해야 되겠고… 예가 전부 모래밭이었소. 바람도 세서 까딱하면 날아갈 판이었지. 게다가 전쟁 끝이니 무슨 자재가 있나? 그래서 땅을 파고 이것저것 가져다가 고깔처럼 생긴 집을 지었어.”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팍팍한 날들을 견딜 수 있게 했을 것이다. 혹시 그 어른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해서 여기저기 둘러봤지만 끝내 볼 수 없었다.

골목을 다 돈 다음에야 선착장으로 향했다. 방송에 나오면서 유명해진 갯배가 있는 곳이다. 아바이마을인 청호동에서 건너편 중앙동까지 채 50m가 안 되는 짧은 거리를 건너는 배지만 청호동 주민에게는 한때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다리가 놓인 뒤에도 갯배는 변함없이 다니고 있다. 다만 전에는 주민들이 탔다면 지금은 관광객들이 탄다는 점이 다르다.

아바이마을에서 건너편 중앙동을 오가는 갯배
아바이마을에서 건너편 중앙동을 오가는 갯배


냉면과 오징어순대를 먹고 갯배를 타는 관광객들에게 ‘아바이’는 없듯이, 고향을 잃은 이들이 겪었던 눈물의 시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시간은 그렇게 사람과 기억과 골목을 하나씩 지우며 앞으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바다에는 아침 햇살이 빚어낸 금빛 윤슬이 보석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속초 ‘아바이마을’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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