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 오! 아름답다 자바의 밤

우리 시단에서 만나기 어려운 색다른 제재와 서정인 인도네시아 이민자의 시집이다. 시인이 맞는 적도의 한가위는 온통 마음이 고국의 고향과 어머니 쪽으로 향한다. 야자수에 걸린 양푼이보다 큰 달은 고향에서 한가위 경험을 환기한다. 보름달을 양푼이로 야자수를 어머니의 젖가슴으로 비유하고 있다. 유사성의 원리다. 고향이 아닌 곳에서 어머니 없이 보내는 한가위에 마음이 시린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태복의 시집에는 인도네시아 지명과 꽃, 수목이 제재로 많이 등장한다. 이민자의 심사와 서정적 충동을 이런 식물과 지명에 투영한다. ‘전설-자바풍경 5’에서 시인은 “작열하는 태양이 지고/ 가빴던 숨을 고르고서야 고즈넉한 밤/ 이방인은/ 자바의 숨결을 느낀다// 오! 아름답다/ 자바의 밤 검푸른 하늘/ 달무리의 물보라는 은총처럼 내리고”라며 자바의 아름다움을 상찬한다.


1993년 인도네시아로 이주한 시인은 2015년 등단했다. 첫 시집이다. 자카르타 한인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기도 하고, 인도네시아를 소재로 그린 그림을 전시했다고 한다. 시인은 ‘믈라띠 향기’에서 “그대 떠난/ 적도의 별장에/ 믈라디 흠뻑 피었”는데 “백세 소녀가 되면 잊혀지겠”다고 한다. 믈라띠는 자스민꽃이다. 시 ‘야자수’에서는 오로지 하늘만 보며 한줄기로 자라서 버리고 주기만 하는 나무의 생태적 특성을 비움과 베풂의 정신으로 전화시킨다. 아래 시 ‘므르바브의 여인’은 시집 속의 걸작이다.

므르바브,
당신이 내 마음을 놓지 않아
당신 품에 살고 있습니다
당신에게서 꿈을 잉태했고 낳았습니다
당신의 꿈을 키우는 행복한 여인입니다

당신의 품에는 참바람 한설이 없고 포근함만 있습니다.
당신의 여인으로 살면서 시간을 잊고 나이도 잊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호미질을 하고
당신의 마음에 씨를 뿌립니다
당신의 마음은 뿌린 만큼 돌아옵니다

당신의 여인으로 내 이름은 잊었지만
당신의 품에서 날마다 꿈꾸는 게 행복합니다
당신의 나음을 일구고 넓히다가
당신의 품에 영원히 잠들겠습니다
- ‘므르바브의 여인’ 전문

므르바브는 중부 자바에 있는 해발 3150미터의 산이다. 수려한 경관과 기름진 땅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산을 남성으로 자신을 여성 화자로 하여 자신이 므르바브 산의 품 안에 있음을 진술하고 있다. 화자는 찬바람과 한설이 없고 포근한 곳에서 시간과 나이를 잊고 호미질과 씨를 뿌리며 생을 마치겠다는 절대적 신뢰를 보낸다.

시 ‘바탐, 경계에 서다’는 싱가포르와 마주한 인도네시아령의 섬을 제재로 한 시다. 관광휴양지인 이곳을 “바다새우와 조개들/ 빠알간 조약돌 사이에 집을 짓고/ 원시의 이야기가 아직 살아있는 곳”이라며, 더도 덜도 말고 “지금 이대로/ 문명은 차라리 먼 나라 이야기가 되고/ 어쩌다 왔다가는/ 손님이면 좋겠다”고 한다. 시 ‘밀림의 연못’에서는 “아침에 사슴이/ 얼굴 맞대고 화장하고 갔”다며 소금쟁이와 개구리밥과 열대 치어들이 있는 밀림의 아름다운 연못을 형상하고 있다.

◇민들레 적도=이태복 지음. 북랜드 펴냄. 125쪽/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