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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러진’ 언어의 깊은 각인…“세상에 다른 출구는 없을까”

[따끈따끈 새책] ‘황혼은 어디서 그렇게 아름다운 상처를 얻어 오는가’

따끈따끈 이번주 새책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입력 : 2017.11.11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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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러진’ 언어의 깊은 각인…“세상에 다른 출구는 없을까”
그는 자신의 언어를 ‘구부러졌다’고 표현한다. ‘삐딱하다’보다 더 둔하고 약해보인다. 세상의 질서에 대항하지만, 삐딱함으로 보이는 흥분이나 냉소보다 더 순응적이고 온화하다. 그렇지 않음을 알고 안다고 바꿀 수 없다면 언어는 개혁의 외침이 아니라, 자각의 은유이어야 한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이자 남독가(濫讀家)이며 글과 그림에 독특한 재주를 보이는 저자 김보일의 언어는 그렇다. 그의 언어는 지(知)의 끝에서 터득한 감성이고, 매일 만나는 비합리적 세계에 대한 지의 각성이며 정의된 본질로부터의 해방된 탈출구다.

적은 것은 많은 것보다 더 많을 수 있고, 앞선 것은 뒤에 선 것보다 나중일 수 있다. 왜 여기이어야만 하고 저기이면 안 되는가. 이 지구 상의 어딘가에 다른 세상의 출구가 있을 수 있다는 믿음, 지금 여기의 무대와 조명과는 다른 세팅이 가능하다는 믿음 쪽으로 그는 늘 ‘구부러져’ 있다.

구부러진 언어들로 채색된 120여 편의 글과 60여 점의 그림은 그의 표현대로 ‘글썽이며 빛나는’ 순간들이다.

“저무는 법도 가르쳐야 하려나/저물어야 할 것들이 저물지 않는다/황혼, 물과 불이 만나 술이 되거나 어둠이 되는 시간, 황혼은 몰락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시간이 깊어지고 아득해질 뿐./”(‘글썽이며 빛나는’ 중에서)

밤하늘의 별, 모래알 같은 생의 한순간, 또는 어머니. 모두 아름다워 영원불변의 존재처럼 느껴지는 것들도 결국 자취를 감춘다. 별은 죽음의 흔적이고 빛나는 시절은 쏜살같고, 어머니와는 이별해야 한다. 궁극의 없음을 위해 한발 다가설 뿐, 무상(無常)은 모든 존재의 이름이고 운명이다.

저자는 니체의 말을 인용해 “성숙은 혼돈을 견디는 힘의 증가”라고 위로하지만, 이런 깨달음은 결국 책 제목처럼 뒤늦게 각성된 ‘황혼이 가져오는 아름다운 상처’일 뿐이다.

“동행은 형을 배웅한다며 논산훈련소 입구까지 따라왔다. 동생은 말없이 그냥 내 옆에 있어 주기만 했다. 연인이라면 손이라도 잡았겠지만, 형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침묵을 깨지 않는 일이었다. 누군가가 가는 길에 같이 따라가 주는 것, 말없이 옆에 있어 주는 것, 그의 그림자 곁에 나의 그림자 하나를 더 보태주는 것. 생각해보면 바로 이런 일이 어떤 융숭한 환대만큼 느껍고 고마운 일이다.”(‘침묵의 동행’ 중에서)

지난해부터 1년간 머니투데이 ‘보일샘의 포스트카드’ 연재를 통해 짧은 산문의 깊고 강한 힘을 보여준 저자는 어떤 글에서도 ‘글썽이며 빛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우리 삶에 동행했다.

상처는 어쩌면 황혼이 얻는 특권일지 모르고, 그것으로 우리는 슬프지만 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간직할 수 있게 된 것일지도. ‘보일샘’의 ‘구부러진’ 언어가 욕망되는 이유다.

◇황혼은 어디서 그렇게 아름다운 상처를 얻어 오는가=김보일 지음. 빨간소금 펴냄. 264쪽/1만3000원.

김고금평
김고금평 danny@mt.co.kr twitter facebook

사는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대로 사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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