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K다방 커피향보다 진한 살내음

시인이 시골 체험을 적실하게 형상한 시다. 저녁이 되자 시골집 부엌에서는 꽁치를 굽고 있다. 꽁치는 밥이나 국을 끓인 아궁이에 남아있는 불에 굽는다. 장작불이나 불꽃이 살아있는 센 불에 구우면 속살이 익기 전에 타서 좋지 않다. 꽁치를 굽기에는 잔 나뭇가지나 콩깍지나 집을 태운 불로 굽는 것이 좋다. 이렇게 구워지고 있는 노릇노릇한 꽁치 냄새가 부엌문을 빠져나가 마당에서 곡식을 털거나 말린 후 고무래질을 하고 있는 아버지의 코에 다다른다.

고무래는 곡식을 그러모으거나 넓게 펼 때 사용하는 농기구다. 또 밭의 흙을 고르거나 씨를 뿌린 뒤에 흙을 덮을 때도 사용한다. 외형이 T자로 생겼다. 지방에 따라서 고물개, 곰배, 당그레, 밀개 등으로 불린다고 한다. 필자의 고향 충남 청양에서는 고무래라고 하였다. 시인의 고향인 경북 의성에서도 고무래라고 하는지, 시인이 일부러 표준어를 찾아 썼는지는 모르겠다. 화자의 아버지는 하루 노동을 거의 마무리하는 고무래질을 하고 있다.


아버지의 노동 속도에 맞춰 저녁을 짓는 마지막 요리로 엄마는 꽁치를 굽고 있다. 옷이 땀에 젖도록 종일 농사일을 한 아버지 몸에는 땀이 말라 소금꽃이 피었다. 평생 농사일을 하느라 굽은 아버지의 몸. 허리가 굽은 모습으로 고무래질 하던 것을 끝내고 허리를 편다. 그리고 샘터로 가서 조용히 손을 씻는다. 한 폭의 서정적 농촌 풍경화다.

1966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시인은 본명이 김경미다. 2012년 '월간문학'에 시조와 2014년 계간 '시와소금'에 시로 당선하였다. 시조집 ‘주말 오후 세 시’를 내었고, 이번 시집 ‘모호한 엔딩’은 첫 시집이다. 그의 시는 대부분 현재와 과거 생활경험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하기도 한다. 시 ‘과속방지턱’에서는 과거와 달라진 성도덕과 역사의식, 어려운 신춘문예 시와 그걸 뽑는 심사위원들을 풍자하기도 한다.

K다방에서는 늘 커피보다 미스 김이 우아하게 등장한다

커피 한잔을 주문하면
그 향기가 코에 다가서기도 전에 미스 김의 살내음이 코와 혀를 마비시킨다

K다방에서는
물이 탁해 물고기도 모로 누운 수족관조차
직육면체의 엇갈린 눈으로
미스 김의 엉덩이를 흔든다

K다방에서는
커피 한 잔에
여섯 명의 미스 김이 나를 조여온다
- ‘K다방’ 전문

수족관 물이 탁한 시골이나 소읍의 다방 풍경이 전달된다. 대한민국 다방 여자 종업원은 모두 미스 김이다. 자신의 신상이 드러날까 봐 박 씨든 송 씨든 가장 흔한 성씨인 김 씨로 가명을 쓰는 것이다. 시골에서는 젊은 여성을 보기 어렵다. 이런 시골에서 남성 손님을 유혹하기 위해 종업원들은 최대한 몸을 노출시킨다. 다방 매상을 올려야 하니까 커피 한잔 마시러가서도 아가씨 숫자대로 시켜야 한다. “커피 한 잔에/ 여섯 명의 미스 김이 조여”오는 시골 다방의 풍속화다.

시 ‘네잎클로버’는 연애시인 듯 아닌 듯 읽힌다. 아마 연애시일 것이다. 화자는 “내가 망설임을 간신히 누르고/ 그에게 한 손을 내밀었을 때/ 그는 긴 속눈썹으로 수줍음을 밀어내면서/ 나에게 싱그러운 오월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계절의 오월 같은 열정적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끝났다. 끝난 사랑은 “기억의 텃논에/ 실미나리 같은 무지개를” 드문드문 띄운다. 사랑의 기억은 네잎클로버에 한 장에 압축되어 기억으로 내장되고, 내장된 재료는 볼웃음과 큰 눈망울과 호젓한 시로 살아난다.

◇모호한 엔딩=반경 지음. 만인사 펴냄. 101쪽/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