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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시간이 새겨놓은 지문 채석강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입력 : 2018.01.13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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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어느 곳을 가장 많이 가봤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전라북도 부안”이라고 대답한다. 그만한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특별하다고 할 만큼 자주 찾은 곳이 부안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부안은 어디를 가도 볼거리고 먹을거리다. 조물주가 이 땅을 만들 때 가장 오래 주무르고 신경을 쓴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채석강. 퇴적한 해식단애가 책을 쌓아놓은 것처럼 층을 이루고 있다./사진=이호준 여행작가
채석강. 퇴적한 해식단애가 책을 쌓아놓은 것처럼 층을 이루고 있다./사진=이호준 여행작가

무엇보다 변산반도 자체가 국립공원이라는 사실이, 부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설명해준다. 격포해수욕장, 채석강, 적벽강, 직소폭포, 내소사, 월명암, 개암사, 곰소염전, 그리고 바다에 점점이 박힌 섬들…. 가볼 만한 곳을 일일이 헤아리기도 벅차다. 그중에서도 꼭 가봐야 할 곳을 꼽으라면 채석강과 적벽강을 빼놓을 수 없다. 그 두 곳을 보지 않고 부안을 다녀왔다고 하면, 파리에 가서 에펠탑을 보지 않고 온 사람 꼴이 되기 십상이다.

얼마 전 부안에 갔을 땐 국내에서 낙조가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라는 솔섬에 들렀다가 채석강이 있는 격포에 들러 오기로 했다. 해안을 따라가는 변산반도는 어느 곳이든 매력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특히 겨울 바다는 조금 쓸쓸한 것 자체가 매력이다. 그곳에 가면 목적지를 향해 무조건 달려갈 게 아니라 아무 곳이든 차를 세우고 바다를 바라보는 여유 정도는 가져야 한다.

채석강은 솔섬에서 그리 멀지 않다. 행정지명으로는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격포항과 맞닿을 듯 길게 펼쳐져 있는 해안으로 썰물 때 드러나는 층암절벽과 바다를 총칭하는 이름이다. 하루 두 차례 물이 빠지면 걸어 들어갈 수 있다. 안내문에 따르면 화강암, 편마암을 기층으로 하고 중생대의 백악기(약 7000만 년 전)에 퇴적한 해식단애가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은 것 같은 층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다른 퇴적암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가 많고, 퇴적된 과정들이 절벽에 입체적으로 잘 드러나 있어 학술적으로도 보존 가치가 높다고 한다.

그런데 왜 바다와 절벽에 강(江)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그 유래는 중국 지명과 맞닿아 있다. 당나라의 시인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 물에 비친 달에 반하여 뛰어든 곳이 바로 중국의 채석강(彩石江)이다. 격포 채석강의 지형이 중국 채석강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중국의 채석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지만, 부안 채석강이야말로 그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것 같다. 볼수록 신기한 모습이다. 뭐라고 표현해야 적절할까. 시루떡 같은 바위 층들이 쌓아올려져 높고 긴 절벽을 이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층층 마다 시간의 흔적이 배어있다. 어쩌면 시간이 마음먹고 새겨놓은 지문일지도 모른다. 어찌 거기에 옛사람들의 사연인들 새겨져 있지 않을까.

채석강 앞 바다. 멀리 오른쪽으로 적벽강이, 그 끝에 수성당이 있다./사진=이호준 여행작가
채석강 앞 바다. 멀리 오른쪽으로 적벽강이, 그 끝에 수성당이 있다./사진=이호준 여행작가

마음을 당기는 건 절벽뿐이 아니다. 눈을 돌리면 바로 앞에 백사장과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다. 답답했던 가슴이 시원해진다. 조금 먼 바다에는 배들이 고단을 부려놓고 정박해 있다. 바닷가에는 한겨울인데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대개는 채석강만 보고 돌아오기 마련이지만, 이왕 격포까지 갔다면 가까이 있는 적벽강과 수성당도 들러봐야 한다. 적벽강은 후박나무 군락이 있는 해안에서 시작해서 절벽과 암반이 펼쳐지는 약 2km 구간을 말한다. 해수욕장을 가운데 두고 채석강과 적벽강이 이어져 있다고 보면 된다. 소동파가 노닐던 중국의 적벽강(赤壁江)과 풍경이 흡사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특히 석양빛을 받아 바위가 붉게 물들 때 적벽이라는 이름을 실감할 수 있다. 맨 끝 지점 해안 절벽 위에는 수성할머니를 바다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제사 지내는 수성당(水城堂)이 있다. 지금도 해마다 음력 정월 열나흘이면 풍어를 비는 수성당제를 지낸다.

여러 번 간 곳이지만 채석강과 적벽강, 그리고 수성당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여전히 마음을 한없이 끌어당긴다. 그곳에 갈 때마다 바위 한구석에 몸을 부려놓고 앉아 가만히 세상의 소리를 듣는다. 귓전에서 속삭이는 바람의 이야기와 갈매기들의 군무, 멀리서 들려오는 뱃고동…. 가시처럼 날카롭던 마음이 저절로 둥글어진다. 여행이 주는 선물이다. 그렇게 얻은 선물은 도시로 돌아가서도 내 뼈와 살, 윤활유가 되어 흔들리는 삶을 지탱해 준다.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시간이 새겨놓은 지문 채석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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