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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반 호수에서 만난 어부들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입력 : 2018.01.2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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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동부도시 반 인근에 있는 반 호수에 대해서는 전에 잠깐 소개한 적이 있다. 해발 1646m의 고원에 자리한 터키 최대의 호수다. 시속 100km로 달리는 차가 다섯 시간은 걸려야 한 바퀴를 돌 수 있다는 사실이 호수가 얼마나 큰지 설명해준다.

물고기를 잡아서 돌아오는 반 호수의 어선/사진=이호준 여행작가
물고기를 잡아서 돌아오는 반 호수의 어선/사진=이호준 여행작가

그곳으로 가는 비포장도로는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는 바람에 엉망이 되어 있었다. 차가 덜컹거리는 바람에 엉덩이가 아플 지경이었다. 하지만 호수 곁으로 바짝 다가서는 순간 아픔도 잊고, “바다다!”라는 함성이 절로 나왔다. 누가 이 넓은 곳을 호수라고 부를 수 있을까. 말 그대로 끝이 보이지 않았다. 물은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맑고 잔잔했다. 반 호수의 물이 얼마나 신비한지 일곱 색깔을 띤다고 한다.

이 호수는 세계 최대의 염호(鹽湖)로 소금 농도가 무척 높다. 물이 들어오는 하천은 있는데 나가는 하천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즉, 대부분의 물이 증발된다는 뜻이다. 호수 밑바닥에서도 물이 계속 솟아오르기 때문에 미네랄 성분이 풍부하다. 또 지역에 따라 염도가 달라서 상류 쪽 강 부근에서는 물고기가 많이 잡힌다.

호숫가에는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언뜻 봐도 나룻배 수준이 아니라 어선이었다. 게다가 통통배가 아닌 중급 어선이 포진하고 있는 바람에 바닷가에 찾아간 것 같았다. 마침 고기잡이를 마치고 온 어부들로 늦은 오후의 호숫가가 시끌벅적했다. 그날 잡은 물고기들을 배에서 내리는데 어황은 그리 좋은 것 같지 않았다. 반 호수에서 잡히는 어종은 ‘임지케파르’라고 부르는 청어처럼 생긴 물고기 한 가지다. 보통은 그냥 물고기라는 뜻의 ‘발륵’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잡은 물고기는 주로 바비큐용으로 중간상인들에게 넘긴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어부들은 이곳에서 2011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16명이 죽었다는 이야기부터 전해줬다. 진앙지가 반 호수였다는 것이다. 아픈 기억은 뼈에 각인 되는 법. 시간이 흘러도 그들에게는 여전히 가장 큰 화제인 모양이었다. 물고기가 잘 잡히지 않는다는 하소연도 했다. 들어보니 물고기 값이 너무 쌌다. 1kg에 1.5리라를 받는다는데, 우리 돈으로 치면 1,000원도 안 되는 액수였다. 그걸로 살 수 있는 게 빵 두 개에 불과하다고 늙은 어부는 주름을 더욱 좁혔다.

반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 ‘임지케파르’/사진=이호준 여행작가
반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 ‘임지케파르’/사진=이호준 여행작가

그 얼굴엔 삶의 기대나 희열 대신 피곤이 그득했다. 게다가 기름 값이 갈수록 오른다고 또 한숨이었다. 터키의 기름 값은 우리보다 비싼 편이다. 배에 쓰는 디젤연료가 1리터에 4리라인데 한번 나가면 30~40리터씩 쓴다. 아무리 계산해 봐도 밑지는 장사인데 이들은 끊임없이 호수로 나가고 있었다. 어로행위는 겨울에만 하는데 4월15이면 끝난다. 이후에는 산란기이기 때문에 스스로 금어기간으로 정했고 한다. 어로를 안 할 때는 목축을 한다.

어부들의 하소연은 이어졌다. 이방인에게 얘기해봐야 조금도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르진 않겠지만, 그래도 뭔가 자꾸 털어놓고 싶은 눈치였다. 이들은 정부에서 아무 지원도 안 해 주는 이유가 바로 자신들이 쿠르드족이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 흑해 쪽 어부들은 편의를 봐주는데 자신들에게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외부에서 오는 후원조차 중간에 빼서 폭탄 만드는데 쓴다고 이구동성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정말 그렇다면 그들의 낡은 배만큼 서글픈 현실이었다. 어쩌면 이들의 눈물로 호수가 자꾸 짜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는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이번에 들어온 배에서 나온 상자는 여섯 개. 아까 다른 배에서 나온 세 상자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늦게 들어오는 배는 임지케파르를 찾아 좀 더 멀리 나갔다 오는 것이라고 했다. 곧 이어 마지막 배가 들어왔다. 저 배는 만선의 꿈을 이뤘을까? 굳이 부두에서 서성거리다가 상자수를 헤아려 본다. 하나, 둘, 셋. 기껏 세 상자라니…. 9척의 배가 모두 돌아온 게 오후 3시50분. 벌써 파장 분위기였다. 중간상에게 넘길 건 넘기고 오늘 저녁 먹을 물고기를 비닐봉지에 담아서 하나둘 떠나는 어부들의 뒷모습이 쓸쓸했다. 꼭 석양 탓만은 아니었다. 그나마 그들이 떠난 호숫가는 적요만 맴돌았다. 배 위를 떠돌던 갈매기들도 더 이상 나올 게 없다고 생각했는지 하나 둘 떠나버렸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서서 한참동안 호수를 바라보았다. 어디를 가나 사람 사는 모습, 특히 서민들이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 숨 가쁘게 살아가는 내 나라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반 호수에서 만난 어부들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8년 1월 26일 (15:01)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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