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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김 여사, 박 여사, 최 여사

<148> 배선옥 시인 '오렌지 모텔'

시인의 집 머니투데이 김정수 시인 |입력 : 2018.06.02 06:26|조회 : 5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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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김 여사, 박 여사, 최 여사
1997년 '시문학'으로 등단한 배선옥(1964~ )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오렌지 모텔'에는 "낮에는 품위유지비 벌러 다니는 사무원, 밤엔 야시시한 글쟁이로 산다"는 특이한 약력이 수록돼 있다. 사전적 의미의 품위유지비는 '고위 공직자나 회사 간부가 일정한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국가나 회사에서 지급하는 돈’이지만, 여기에서는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나 거기에 약간의 여유자금을 말한다. "야시시"도 '야하다'는 뜻과 '밤에 쓰는 시(詩)'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품위유지’와 ‘야시시’라는 조금 상반된 용어를 사용한 것은 시인의 삶과 내면에 두 세계가 상존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우리끼리 최저임금에 딱 맞춰진 일당에 대해 얘기하던 참이었다 허리가 아파 몇 날을 쉬었더니 월급이 형편없어져서 이번 달은 사는 게 팍팍하다는 볼멘소리를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듣던 참이었다. 그나마 나이도 많아 이 짓거리도 언제까지나 하려는지 그 다음엔 또 어떻게 살려는지 모르겠다는 한숨을 겨울날 온 김 쐬듯 어깨를 수그려 듣던 참이었다. 우리들의 낮은 테이블 위로 매우 화사한 웃음이 잠깐 지나갔고 땡감을 씹은 듯 아린 침묵이 한참을 함께 앉았다가 갔다 오장육부에 확 불이 붙으라고 생 소주라도 한 잔씩 마시면 좋으련만 일용할 양식과 소주 한 잔을 바꾸어가기엔 내일이 너무 비싸다며 입맛만 다시던.

김 여사
박 여사
최 여사

우리 그냥 맹숭맹숭한 일상만 주억거리는 건 싱겁다고 그러니 다음엔 속 다스려지게 소주 한 잔씩은 꼭 하자고 손을 흔들며 돌아섰다
― '친목계' 전문


참 쓸쓸한 정경(情景)이다. '여사'라 했지만 동네 아줌마 셋이 친목계를 하려 모였지만 커피 한 잔이나 "소주 한 잔" 사 마실 형편도 못 된다. "허리가 아파 몇 날을 쉬었더니"만 "최저임금에 딱 맞춰진 일당"이 형편없었기 때문. "나이도 많아" 언제 잘릴지 모르는 처지다. 대화 중에 잠깐 "매우 화사한 웃음"을 짓지만 그것도 잠깐, 한참 동안 침묵에 휩싸인다. 침묵은 눈치이면서 한탄이다. 모두 곤궁한 처지인지라 누구 한 사람 선뜻 소주 한 병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마음 같아서는 "오장육부에 확 불이 붙으라고" 소주를 사서 목구멍에 들이붓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내일의 양식"이 걱정된다. 소주 한 병조차 마음대로 사서 마실 수 없는 형편에 속이 더 홧홧하다. 다음에는 "소주 한 잔씩은 꼭 하자고 손을 흔들며 돌아섰"지만 기약이 없다. 말 그대로 공약속이다. 다들 품위유지는커녕 생계조차 막막할 지경이다. 우리 시대의 "김 여사/ 박 여사/ 최 여사"가 "유난히 길고 지루한 한철"('변방 사람들')을 견디고 있다.

여기저기서 모여든 냄새들 저마다 이름표를 달아달라고 옷자락을 잡고 늘어진다. 주방에서 쏟아져 흐른 참기름 한 숟가락 냄새 미처 잘 삭기도 전 쫓겨난 시골 외갓집 메주 띄우던 아랫목 냄새도 어느새 발을 들이민다. 저녁 식사 후 무심히 쏟아버린 굳은 소기름은 바다 건너 먼 고향의 방향을 찾는지 알아듣지 못하는 이국의 냄새로 말을 건네고 바닥을 뒤적이니 푸릇한 대학 1학년 앞집 딸내미 샴푸 내도 거품 몽글거리며 올라온다.

큰 길가 하수도 뚜껑이 열리고 책장 넘어가듯 냄새도 하나씩 펼쳐 햇살에 내널린다. 결마다 한 가지씩 대궁을 밀어올리는 저 새삼스러움. 그들도 어느 한 시절은 살아 있는 향기였음을.
- '비린내' 전문


"침대 모서리를 가로막고 서는 다시마 냄새"('로뎀 요양병원'), "분홍색 젖꼭지 납작하게 주저앉은 뒤통수에선 비릿한 밤꽃 냄새"('암캐'), "옷소매에서 파랗게 얼어붙은 백제의 기왓장 냄새"('그해 겨울에서 봄까지'), "변두리 후미진 습지에선 상한 고등어 비린내가 풍겼다"('우기雨氣이거나 우기雨期이거나') 등과 같이 이번 시집에 유독 냄새(비린내)가 많이 등장한 데는 "비겁하게도 매일매일 대청소라도 해버려야지 맘먹었던 그 허접쓰레기"('귀로') 같은 도시의 삶이 작용했을 것이다. 시인의 거주지가 항구도시 인천이고, '남동공단 블루스'라는 시를 감안하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다른 시에 등장하는 냄새가 음습하다면 시 '비린내'에서의 냄새는 정겨운 편이다. 집 안팎에서 풍긴 냄새가 옷에 스민다. 참기름 냄새나 메주 띄운 냄새, 소기름 냄새는 집안에서 스민 것이지만 바닥에서 나는 샴푸 내는 집 밖에서 온 것이다. 큰길가 하수구 냄새는 음습한 도시 냄새의 총체라 할 수 있다. "결마다 한 가지씩 대궁을 밀어올리"듯, 햇볕에 말린다는 것은 허접하고 잡다한 도시의 삶을 뽀송뽀송한 식물성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도시의 음습하거나 우울한 삶이 "살아 있는 향기"의 원형을 회복한다. 시인은 인간성 혹은 생명성의 회복을 도시 밖에서 시도하지 않고 도시 안에서 해결하려 한다.

너무 오래도록 두꺼운 껍질 속에 갇혀 있었다 싱싱한 과육이 가득 차 있을 때 무엇이든 되었어야 하는 거였어. 내가 바닥만 남은 소주병을 흔들며 흘러간 유행가를 흥얼거릴 때 너는 뒤돌아서며 눈을 흘겼었니 매사에 흐리멍덩하고 나약해서 아무것도 결단 낼 수 없었을 거라고 비웃었었니 하지만,

마음을 정한다는 게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더란다. 언제나 용기보다는 손익계산서가 먼저 마음을 붙잡았지. 망설이다가 나이 먹으니 겁도 많아져 늘 이도 저도 못하고 망설이고만 있었더니 이렇게 세월이 두꺼워져 있더구나.

더께가 앉아 제 색깔을 잃어버린 시간들을 이제라도 다시 끄집어내서 닦아야 하는 거니 지푸라기에 이쁜이 비누를 문대 빡빡 닦아놓던 내 어머니의 양은냄비처럼 인생이 말끔해지도록 바둥거린다면 환하게 웃으며 다가 와 크게 불러줄 수 있겠니.
- '중년' 전문


표제시 '절'에서 보듯, "가장 낮아진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교만한 위장이라고/ 늘 흘겨보기만 하던" 시선이나 인식이 변한 것은 "더께가 앉아 제 색깔을 잃어버린 시간들" 때문이다. "너무 오래도록 두꺼운 껍질 속에 갇혀 있었"던 마음을 "어머니의 양은냄비처럼 인생이 말끔해지도록" 오래 정성들여 닦았기 때문이다. 중년에 이르러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주위를 살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더 심야영업 노래방 삐끼, 샤넬 노래방 미쓰 킴, 분신한 택시기사와 같이 소외되고 억울한 사람들에게 마음이 갔을 것이다. "더러워진 도시"('포르노 비디오')에서의 일회성 욕망과 욕심에 대하여 날카롭게 비판했을 것이다.

시를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싶은 시인에게 시는, 금 간 항아리에 담긴 물이 새어나와 길가의 꽃들을 키우는 것과 다름없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아니했든 내 행위가 타인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시인은 묻는다, "산다는 건 얼마나 장렬한 것이냐"('20분').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시인은 오늘 밤에도 "야시시"한 시 한 편을 쓸 것이다.

◇오렌지 모텔=배선옥 지음. 북인 펴냄. 104쪽/8000원.


[시인의 집]김 여사, 박 여사, 최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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