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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 시집 한 권이 그대로 축문(祝文)

<161> 정우영 시인 '활에 기대다'

시인의 집 머니투데이 김정수 시인 |입력 : 2018.12.01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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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 시집 한 권이 그대로 축문(祝文)

1989년 '민중시'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정우영(1960~ ) 시인의 네 번째 시집 '활에 기대다'는 축문(祝文)과도 같다. 여는 시 '밥값'은 축문의 시작을 알리는 유세차(維歲次)에 해당하고, 닫는 시 '상향'(尙饗)은 축문을 마무리하는 상향(尙饗)이다. 한 편 한 편의 시는 축문의 순서에 따라 교묘하게 배치돼 있으며, 시인은 스스로 상주(喪主)가 되어 축문을 읽어나간다. 제례나 상례 때 신에게 축원을 드리는 글이 축문이지만 시인은 신이 아닌 굶어 죽은 이들, 먼저 떠난 시인들과 가족 친지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세월호 참사나 제주 4·3사건 등으로 안타깝게 죽어간 사람들로 대상을 확장하고 있다. 시인은 단순히 축문을 쓰고 읽는 것이 아닌 '나'라는 숲('시인의 말')을 통해 죽음을 넘어 활(活)을 노래하고 있다.

밥에게 면목이 없다.
헛된 궁리만 머릴 달군다.
방에 처박혀 얼굴 지우고
웅크린 채 굶는 중이다.
누가 내게로 와서 내 몸에 숨쉬는
한 톨의 농사 꺼내줄 수 없을까.
이러다간 밥과 나 사이에
거미줄이 쳐질지도 모를 일이다.
한때는 나도 꽤는 바지런했으나,
밀쳐지고 내몰리자 손이 밭아졌다.
메마른 숨결 힘껏 짜내어
모처럼 시 한 줄을 말았다.
밥에게는 정녕코 미안한 노릇이나
이걸 밥값이라고 내어놓는다.
가난한 영혼은, 허기라도 끄시라.
― '밥값' 전문


여는 시 '밥값'은 현재 '나'의 상태를 고하고 있다. "한때는 나도 꽤는 바지런했으나" 지금은 "방에 처박혀 얼굴 지우고/ 웅크린 채 굶는 중"이다. "밥에게 면목이 없다" 했지만, 여기서 밥은 한 끼 밥일 수도 있겠지만 시(詩)에 더 가깝다. 시만 써서 먹고 살 수 없는 현실을 말하고 있는 것. 시에 대한 갈증은 극에 달했는데 써지지 않는 내적 갈등과 쓸 수 없는 외적 환경이 발목을 잡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을 것 같은 절박함으로 "내 몸에 숨쉬는/ 한 톨의 농사 꺼내" 달라 손을 내민다. 당연히 손을 잡아주는 이 없다. 시는 누가 대신 써주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을 스스로 받아 적는 것이기 때문이다.

"밥과 나 사이에/ 거미줄이 쳐질지도 모"르는 아주 절박한 순간에 이르러서야 "메마른 숨결 힘껏 짜내어" "공손히 받아 적는다".('늦은 오후에 고구마가 말했다') 모처럼 시 한 편, 어쩌면 한 권을 써서 밥값을 번다. 그나마 이것도 날 위해 쓰기보다 "가난한 영혼"에게 기꺼이 내놓는다. 이번 시집에 실린 시들은 "가난한 영혼"을 위해 마련한 사자밥과도 같다.

용민이 형이 삼층 높이에서 일하다가
그만, 쿵 떨어졌다.
형은 세상일을 몹시 자책하는 사람.
그날 얼마나 세게 자책했던지
땅거죽을 뚫고 들어간 진동이
땅심을 제대로 흔들어놓았다.
자책으로 뒤척이는 땅덩이 땜에
한반도의 애먼 생명들 바짝 졸아들고
나도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나왔는데
용민이 형은 다행히 별일 없다고 한다.
그때 형 이마에 특별히 솟은 자책은
여전히 끌끌, 세상을 자책 중이지만.
- '지진 유발자' 전문


'용민'이라는 실명이 등장하는 이 시는 그가 "삼층 높이에서 일하다가" 떨어지는 상황으로부터 시작된다. 시적 정황상 노동현장의 막노동꾼인 용민이 형은 "세상일을 몹시 자책하는 사람"이다. '원망'이라 하지 않고 '자책'이라 한 것은 그가 가난의 원인을 사회적 모순이나 선대(先代)에서 찾기보다는 '내 탓'으로 돌리는, 책임감도 강하고 심성도 고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오랫동안 사회·문화적으로 민감한 노동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싸워왔고, 현실참여 시를 써온 시인은 "삼층 높이에서 일하다가" 떨어진 용민이 형이 "다행히 별일 없다"는 말에 안도한다. 하지만 시인은 그의 안위를 걱정하면서도 그가 일으킨 반향, 즉 진동에 주목한다.

그가 척박한 노동현장까지 내몰린 이유를 설명하기보다는 나를 비롯한 "한반도의 애먼 생명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이로 인한 사회적 변화의 동인(動因)을 찾으려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끌끌,"이라는 문장에 세상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가난을 넘어온 저 솔깃함"('가난의 저 솔깃함')이 묻어난다.

화분에 웬 흙덩어리가 달려있어. 죽은 달팽이야. 달팽이는 무슨, 흙덩어린데. 달팽이라니깐. 어, 정말 바싹 마른 달팽이네? 억지로 똑 뗐더니 집이 조금 부스러졌어. 혹시 모르니 물이나 조금 뿌려줘. 살아날까. 안 쓰는 꽃병 줘봐. 열무 이파리도 좀 가져오고.

오 분쯤 지났을까요, 기적처럼 더듬이가 움질거립니다. 간절한 입놀림으로 그가 이파리를 뜯고 있습니다. 흙덩어리가 홀연 멀쩡한 달팽이로 탄생하셨어요. 이로부터 그는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 이름도 얻었지요. 불굴의 달팽이, 불팽이라고. 아내는 나보다 먼저 그에게 아침밥 챙겨드립니다. 저도 인정합니다. 그는 그럴 자격 있지요. 온 목숨 걸고 저를 절벽에 내다 걸지 않았나요. 세상에 이보다 더한 구조 신호는 달리 없어 보입니다. 당연히 그가 상석이지요. 먼저 밥 드실 자격 충분합니다. 맛나게 아침 잡숫는 그에게 경의 바칩니다. 상석의 달팽이님, 쾌변장수하시라.
- '상석의 달팽이' 전문


아내와의 대화체로 쓰인 이 시의 생명사상은 사람을 넘어 '생명이 있는 모든 것'으로 확장됨을 보여준다. 나-가족-주변 사람의 안위를 고하던 상주(시인)의 시선이 주변 사물(생명)로 옮겨감을 확인할 수 있는 것. 화분의 "흙덩어리"는 "죽은 달팽이"에서 "바싹 마른 달팽이"로, "멀쩡한 달팽이"에서 다시 "불굴의 달팽이"로 기사회생한다. 죽음의 경계를 건너갔다 온 달팽이는 "한 식구가 되"고, "먼저 밥 드실 자격 충분"하므로 상석을 차지한다. "온 목숨 걸고 저를 절벽에 내다"건 것은 달팽이지만 결국 큰 병을 앓은 후의 시인이기도 하다.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암 같은 큰 병을 앓고 난 후 더 많은 시간 동안 죽음을 생각한다. 죽음의 사색 이후에는 더 단순하고 경건하고 겸허한 삶을 지향한다. '설날 아침'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시 '눈길'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달팽이처럼 발자국을 통해서 삶과 죽음의 존재론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큰 병을 견딘 시인은 "얼마나 새롭냐는 듯이/ 마치 처음 뵙는다는 듯이" 살아갈 것이라 결심한다.

당신 정말 이상해.
이런 그늘은 도대체 어디서 묻혀 오는 거야.
딴 생각에 잠겨 있다 깨어나기만 하면
아내는 그늘 탐색을 입에 달았다.
그때마다 몸 탈탈 털어보는 것이지만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늘 한 톨 찾지 못했다.
어느 날인가는 습습한 이끼까지 끌고 왔다고 타박이었다.
그런데 참 아내만 이상타 할 수도 없이,
눅눅한 지하실 냄새난다며 딸도 얼굴 찡그렸던 것이다.
심지어 낯모르는 사람도 그늘을 읽고 가곤 했다.
지난해에는 길을 걷다가 혀 차는 할머니로부터
그늘 닦으라고, 물티슐 건네받은 적도 있다.
잠깐 졸다 눈뜨니 그늘이 한가득 슬어 있다.
그는 해마다 무슨 마실을 다녀오는 것일까.
- '상향(尙饗)' 전문


닫는 시 '상향(尙饗)' 바로 앞에 놓인 시 '팽목항'은 세월호 참사를 다루고 있다. 흐릿한 글씨로 "고창석 님 조은화 님 이영숙 님 허다윤 님"을 호명하면서 응답하고 돌아온 황지현 님 자리를 비워뒀다.

시인은 "세월호가 뭍에 올라온 뒤 네 분이 돌아왔으나 다섯 분은 여전히 미귀가 상태"라면서 "이 분들 마저 다 돌아와 이 시가 소멸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주석을 달았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시집은 하나의 축문이다. 다 읽은 축문은 망자(亡子)의 넋을 달래기 위해 태운다. 따라서 시 '팽목항'은 소지(燒紙), 즉 축문은 태우는 망료(望燎)에 해당한다.

시 '상향(尙饗)'에서 언급하고 있는 그늘은 죽음일 수도 있겠지만 "활(活)의 숲"('시인의 말')에 더 가깝다. 시인은 한 권의 시집을 다 태워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망자들을 위로하면서 새로운 삶을 기원하고 있다.

◇활에 기대다=정우영 지음. 반걸음 펴냄. 171쪽/9000원.


[시인의 집] 시집 한 권이 그대로 축문(祝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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