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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 온 세상을 삼킨 불덩이를 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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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수 시인
  • 2019.06.2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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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전동균 시인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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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소설문학’ 신인상 시부문으로 등단한 전동균(1962~ )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를 읽다 보면 눈 쌓인 겨울산에 홀로 서 있는 고사목 같은 중년 사내를 만날 수 있다. 절대고독의 자리에 선 그는 “존재하지 않는, 사라지지도 않는”(‘자정의 태양이라 불리었던’)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나를 망자처럼 바라”(‘예(禮)’)보기도 한다.

“아픈 세상을 데리고”(이하 ‘필터까지 탄’) 설산 산정에 올라 통회(痛悔)하는 사내는 “언젠가는 한자리에 다시 모여/ 밥을 먹고 잔을 나눌 것”을 기대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한자리에 모여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것은 지극히 소소한 일상이면서 행복이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가장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부서지면서 문득 환해지는 사람들”과의 관계 소원은 “말을 구하고 또 의지”(‘시인의 말’)하게 된다.

아프니까 내가 남 같다
도로를 무단 횡단하는 취객 같다

숨소리에 휘발유 냄새가 나는 이 봄날
프록시마b 행성의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이들도 혼밥을 하고
휴일엔 개그콘서트나 보며 마음 달래고 있을까

돌에겐 돌만의 무늬가 있고
숨어서 우는 새가 아름답다고 배웠으나
그건 모두 거짓말

두어차례 비가 오면 여름이 오겠지
자전거들은 휘파람을 불며 강변을 달리고
밤하늘 구름들의 눈빛도 반짝이겠지
그러나 삶은 환해지지 않을 거야
여전히 나는 꿈속에서 비누를 빨아 먹을 거야

나무는 그냥 서 있는 게 아니고
물고기도 그냥 헤엄치는 게 아니라지만
내가 지구에 사람으로 온 건 아주 하찮은 우연, 불의의 사고였어 그걸 나는 몰랐어

으으 으으으
입 벌린 벙어리 햇볕들이 지나가고
취생몽사의 꽃들이 마당을 습격한다

미안하다 나여, 너는 나의 짝퉁이다

- ‘벙어리 햇볕들이 지나가고’ 전문


‘벙어리 햇볕들이 지나가고’는 쓸쓸하고도 외로운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아플 때 가장 서럽다는 말도 있듯, “아프니까 내가 남 같다”는 진술은 많이 아프다. 몸이 아플 땐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고, 내 몸의 소중함을 더 절실히 느낀다. 하지만 시인은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은’ 상태보다 더 나를 이격시킨다. 이런 행위는 나를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으면서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기에 적합하다.

몸이 아픈, 아니 어쩌면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픈 봄날. 집에서 “혼밥을 하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문득 “프록시마b 행성의 친구들”을 생각한다. 프록시마b는 지구의 환경과 비슷해 생명체가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행성이다. 지구와 “프록시마b 행성”의 거리만큼 고독이 들어앉는다. “돌에겐 돌만의 무늬가” 있듯 사람에겐 사람들만의 무늬가 있어 삶은 더욱 외롭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면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달리고, 밤하늘 구름 사이로 별들 반짝이겠지만 “삶은 환해지지 않”는다. 꿈속을 사는 것 같은 삶은 어느새 나를 갉아먹고 있다.

사람마다 사물마다 존재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태어난 것이 “아주 하찮은 우연, 불의의 사고”였다는 것은 탄생과 생존에 대한 상실이면서 부정이다. 기대와 달리 삶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 입을 닫게 된다. 말없이 눈을 감은 채 나를 의심하고,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이에 “취생몽사의 꽃들이 마당을 습격”한다. 술로 몸을 채우는 것은 반성 이전에 부끄러움으로 영혼을 채우는 일이다. 그 꽃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린다. “미안하다 나여, 너는 나의 짝퉁이다”. 홀로 불빛도 없는 캄캄한 방에서의 부끄러움이라 더 아리고 아프다.

두달 만에 면회를 갔지요
연분홍 꽃무늬 새 옷 입혀드리자
좋아라, 콧노래 흥얼대는 어머니

갑자기 집에 가자 그러시네요
식구들 기다린다고
아버지 좋아하는 가자미조림 해야 한다고

어쩌나, 아버지는 벌써 돌아가셨는데
집은 십년 전에 도망갔는데

공원 나무 그늘에서
도무지 나이를 먹지 않는 친척들이며
달이 솟는 우물들이며
모여서 활짝 피는 수국꽃 얘기로
서너시간

무언가 내 옆을 자꾸 지나갔어요
이름을 부르면 어머니도 나도 금방 사라질 것 같은
짐승 그림자가
들끓는 물결들이

어둑해지는 저녁에 병원으로 돌아왔지요
이번엔 뒷문으로 왔지요
세상에 제일 좋은 집이 여기예요, 어머니
아시는 듯 모르시는 듯
내 손만 꼬옥 잡고 아장아장
잘도 따라오시고

- ‘이번엔 뒷문으로’ 전문


‘이번엔 뒷문으로’는 요양병원에 입원한 노모를 시적 대상으로 하고 있다. 미리 “부고 보낼 명단”을 만들어 자식에게 건네는 시 ‘한옥(韓屋)’과 함께 가족사의 한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노부모와 자식들을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것은 베이비붐 세대가 흔히 겪는 일이다. 그로 인한 가족 간의 갈등과 불화도 베이비붐 세대가 감내해야 할 몫이다.

서울(집)과 부산(직장)을 오가며 주말부부로 사는 시인에게 노모를 찾아뵙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겨우 “두달 만에 면회”를 가서 외출복으로 갈아입자 어머니는 “집에 가자”고 하신다. 겪어본 사람들은 안다. 집에 모실 형편이 아닌데 “집에 가자”는 말이 얼마나 부담스럽고 가슴 찢어지는지. 요양병원 근처 “공원 나무 그늘에서/ 도무지 나이를 먹지 않는 친척들”과 고향집 이야기를 듣는 동안 “무언가 내 옆을 자꾸 지나”간다. 그것의 “이름을 부르면 어머니도 나도 금방 사라질 것” 같아 차마 발설을 못하는, 울컥하는 감정을 꾹꾹 눌러담는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숲 그늘을 흔들며 휙 지나가는

청설모의 모습으로
바람 소리로

무언가 내 몸을 번개처럼 뚫고 가는

땅의 문이 열리고
돌들이 날개를 펼치는 순간

이 세상 너머
빛도 어둠도 없는 시간이 찾아온 것인지

사람으로 빚어지기 전
소용돌이치는 울음 속에 잠긴 느낌
온 세상을 삼킨 불덩이를 안은 느낌

어디로 가야 하지?
어떻게 가야 하지?

나뭇잎들 찢어질 듯 떨고

공기들은 발톱을 번쩍이고

- ‘정오’ 정문


“온 세상을 삼킨 불덩이를 안은 느낌”으로 계속 살 수는 없는 법이다. 표제시 ‘눈은 없고 눈썹만 까만’처럼 “뭐 이런 일이 한 두 번이냐”며 툭툭 털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건 몸도 마음도 병들어 “약에 취”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통곡도 뉘우침도 없이/ 작년 그 자리”에 “백치 같은 꽃들” 피어난다면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얼음 속으로 들어가/ 눈과 입을 파묻고”(‘멧돼지는 무엇일까’) 살 수도 있겠지만 그럴 수도 없는 것이 삶의 현실이다.

“이 세상 너머/ 빛도 어둠도 없는 시간” 속에서 “뱀과 모래와 사람이 무엇이 다른지”(‘당신 노래에 저희 목소리를’)에 대한 사색과 “우리는 모두 깨진 그릇 같은 존재들”(‘1205호’), “눈 한번 감았다 뜨면/ 사라지는 환영들”(‘휜, 휜, 휜’)이라는 뼈아픈 깨달음은 절망이나 비극에 머물지 않고 절대고독의 자아를 만나도록 이끈다. 이제는 “정면에 속지”(이하 ‘당신 노래에 저희 목소리를’) 않고 “그 너머를 보겠”다는 선언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가야” 할지를 제시해주는 방향타 역할을 할 것이다.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전동균. 창비. 132쪽/9000원.


[시인의 집] 온 세상을 삼킨 불덩이를 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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