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 예비비 사용…나쁜 선례 남기나

머니투데이

이코노미스트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예비비 내역 공개에 대해 전례가 없으며 예산의 원칙 중 하나가 무너지는 것이다”

국정교과서와 관련한 예비비 44억 원 지출과 명세서 공개여부에 대해 여야간 대립이 쳠예한 가운데, 지난 10월 29일 황교안 국무총리는 국회 예산결산특위 전체회의에서 예비비 내역 공개를 거부해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올해 6월 16일 메르스 대책을 위한 장비구입과 의료진 지원비용 등 505억 원 예비비 의결을 공개했고, 2012년 9월 25일에는 태풍 피해복구를 위한 예비비 4802억 원 지원을 공개하는 등 그동안 대부분의 예비비 내역을 자발적으로 공개해왔다.

또한 예비비는 전통적인 예산의 원칙 중 사전의결 원칙과 사용금액 한정성 원칙의 예외에 해당될 뿐이지 공개성 원칙은 적용되는 것이다. 국가재정법 16조4항의 규정에도 “정부는 예산과정의 투명성과 예산과정에의 국민참여를 제고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하여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예비비란 국정의 탄력적 운용을 위해 예측할 수 없는 예산외의 지출 또는 예산초과지출에 충당하기 위하여 계상한 예산으로 헌법 55조2항에 총액으로 국회의 의결을 얻고 그 지출은 차기국회의 승인을 얻도록 하여 근거규정을 마련해두고 있다.

그러나 차기 국회의 승인을 받는다는 규정이 곧 사전 공개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국회 요구에 의한 공개여부를 명문화하지 않은 것은 다툼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추후 입법불비 문제는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이번 국정교과서 비용집행 문제는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 국정교과서 예산을 미리 제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이런 경우 아직 예산심의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수정예산을 제출해 의결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예비비라는 우회적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예비비는 ‘국회 심의를 회피하기 위한 쌈짓돈’ 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됐다.

예비비는 보충적으로 사용돼야 하며 긴급하고 예측불가능해야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만일 차기 국회의 승인을 받지 못한다면 정치적 책임을 지게 될 뿐이고 이미 써버린 국민의 세금은 원상복구할 수 없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국회 내에서 충분한 대화와 협의를 거치지 않고 비공개로 예비비를 사용한다면 앞으로도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책에 대해 예비비로 지출하는 좋지 못한 선례를 남길 수 있다.

현재 세계적인 추세는 투명성 확보를 위해 예비비의 사용목적을 한정하고 국회의 통제를 강화하여 자의적 지출을 방지하고 있다. 2010년 2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일본은 재해구조비 등 34개 항목과 긴급한 경비 외에는 국회개회 중에는 예비비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미국은 소규모 재해대책비만 있고 사용목적이 명확히 적시되지 않은 재원의 예산편성은 없다. 또한 캐나다나 영국도 예측불가능한 경제상황 등으로 한정해 지출하도록 하고 일반적 목적의 예비비 규정은 없다.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쓰랴"는 속담처럼 아무리 시급해도 우회통로가 아닌 절차적 정당성과 국민적 합의를 먼저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예비비를 포함한 모든 예산은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기 때문에 위임받은 정부와 국회는 국민의 의사에 합치되는 방향으로 사용해야 하며 공개에 인색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