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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임원 은퇴 후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사람들

[이코 인터뷰]시니어 네트워크, '엔슬(ENSL) 협동조합'

머니투데이 조성은 인턴기자, 강상규 소장 |입력 : 2017.02.20 11:34|조회 : 25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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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효 엔슬 협동조합 이사장(왼쪽부터), 임수택 엔슬 파트너스 대표, 안창주 엔슬 협동조합 이사/사진=임성균 기자
배영효 엔슬 협동조합 이사장(왼쪽부터), 임수택 엔슬 파트너스 대표, 안창주 엔슬 협동조합 이사/사진=임성균 기자
"건강한 창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시니어들이 한데 뭉쳤습니다."

엔슬(ENSL) 협동조합은 45명 구성원 전부가 '직장인의 별'인 대기업 임원 출신 은퇴자들로 이루어진 매우 독특한 시니어 네트워크다. 삼성전자 부사장, 신한은행 부행장, SK 부사장, GS칼텍스 전무, LG화학 상무, 코스콤 전무, 기아자동차 상무, 핸디소프트 부사장, 동양선물 대표이사, 대한전선 본부장, 인삼공사 부사장, 동양창업투자 대표이사, 한국시세이도 대표이사, 삼보컴퓨터 사장 이외에 삼성전자와 LG전자 R&D센터장(상무) 출신 등 화려한 경력을 소유한 은퇴자들의 모임이다.

전직 대기업 임원 출신들이 엔슬에 모인 이유는 은퇴 후 즐겁게 일하면서 보람도 느끼고 삶의 의미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고민하다 찾은 답이 '스타트업(신생벤처기업) 지원'이었다. 창업 불모지인 한국에서 스타트업이야말로 이들이 가진 4가지 자산인 '시간, 자금, 네트워크, 경험'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이라 판단했다.

배영효 엔슬 이사장은 엔슬에 합류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사명감'이라는 말로 갈음했다. 배 이사장은 "대기업 임원 때처럼 필드의 최전선에서 뛰지는 않지만 후방에서 젊은 창업가를 지도하는 일 또한 나름대로 가치 있고 매력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엔슬은 경험이 풍부한 시니어와 열정이 넘치는 젊은 창업가가 만나면 좋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 '인턴'(The Intern)에서 대기업 임원 출신의 70세 시니어(로버트 드니로 역)가 30세 여성 CEO(앤 해서웨이 역)가 이끄는 스타트업의 인턴 사원으로 취직해 시니어의 다채로운 경험과 지혜로 회사가 위기를 극복하는데 큰 공로를 세운 것처럼 말이다.

지금 한국의 많은 청년들이 극심한 취업난에 궁여지책으로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하지만, 어렵게 창업해도 줄줄이 망하는 게 현실이다. 엔슬의 시니어들은 바로 이런 청년 창업가들에게 솔루션을 제시하며 한국판 '인턴'의 실현을 꿈꾼다.

◇'직장인의 별'들이 은퇴 후 엔슬에 모인 이유

"돈 벌 생각을 하고 왔다면 미안하지만 돌아가세요."

임수택 엔슬 파트너스 대표는 "생계형이나 노후대비를 위한 재테크 수단을 찾는 시니어들에게는 엔슬 합류를 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장 구체적이고 뚜렷한 수익이 나지 않을 뿐더러 애초에 수익창출을 기대하고 만들어진 모델이 아니기 때문이다.

엔슬은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에 한계를 느낀 전직 대기업 임원 출신 시니어들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모인 '미래를 위한 투자' 개념의 사업이다. 현재 조합원들도 "정부나 민간의 다른 누군가가 나설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먼저 해보자"는 마음으로 모인 이들이다.

임 대표는 "현재의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에서는 과거와 같은 경제성장도 일자리 창출도 기대할 수 없다"며 이것이 전직 대기업 임원 출신으로 산업의 최전방에서 진두지휘했던 엔슬의 조합원들이 내린 결론이었다고 밝혔다.

성공한 스타트업이 하나 둘씩 늘어나면 일자리도 그만큼 확보되고, 그렇게 자리잡은 신생벤처기업들이 정착해 하나의 새로운 시장 즉 건강한 창업 생태계를 형성할 것이라는 믿음이 은퇴한 중역 시니어들을 엔슬로 모이게 했다. 이들은 열악한 창업환경에 대한 책임감을 통감하고 경제성장을 이끄는 건강한 창업 생태계를 만드는 꿈을 꾸고 있다.

2015년 3월 6명으로 시작한 엔슬은 현재 조합원 수가 45명으로 늘었다. 엔슬은 그동안 스타트업에 자문을 제공해주는 멘토링에 중점을 둬 왔지만 지난해부턴 엔젤투자로 그 저변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엔젤투자 목적을 위해 지난해 5월 엔슬 파트너스를 별도로 설립했고, 2곳의 스타트업에 소액투자도 단행했다.

◇10만 명 시니어들이 스타트업 투자에 나선다면

"한국에서는 '창업하면 망한다', '창업=빚더미'라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이러한 창업 공포증은 얼어붙은 벤처업계의 한파를 더욱 부추기고 있습니다."

배 이사장은 현재 한국의 벤처시장은 성공한 극소수만이 독식하는 기형적인 구조라고 평가했다. 벤처붐이 일던 2000년대 초 수많은 창업가들이 벤처시장에 뛰어들었지만, 거품이 빠진 후 격심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든 걸 잃고 빚더미에 앉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자란 이들이 지금의 2030 세대들이고, 그 영향으로 청년들 중에는 애초부터 창업은 생각지도 않는 이들이 많다. 현재 한국사회에 특히 쳥년층에서 창업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막상 용기를 내 창업을 해도 얼마가지 않아 도산하거나, 수익을 내지 못 하고 매년 지급받는 정부보조금으로 연명하는 스타트업들이 수두룩한 것이 현실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자리 창출은 꿈도 못 꾼다.

이런 상황에서 안창주 엔슬 이사는 "은퇴한 시니어 10만 명만 스타트업에 500만원씩 투자한다면 그 효과는 엄청날 것"이라며 열악한 한국 창업 생태계에서의 시니어의 역할을 강조했다. '창업시장에서 시니어가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선도해 나가겠다는 것'이 엔슬의 비전이다.

임 대표는 "엔슬의 건강한 창업 생태계 조성 계획이 실현되면 2030 세대와 5060 세대 즉 모든 세대가 더불어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됩니다. 창업 생태계를 통해 일자리가 창출됨으로써 사회진출이 간절한 아들 딸들과 은퇴자들 모두에게 '인생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라고 세대 간의 공생을 강조하며 건강한 창업 생태계 조성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밝혔다.

◇시니어의 경험과 청년들의 열정이 만나는 곳

"엔슬이 가진 풍부한 경험과 지혜, 네트워크와 청년들의 열정이 만나면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 시장은 젊음의 패기, 열정만 가지고 뛰어들기에는 너무 리스크가 크다. 사회적 안전망이 없어 한 번의 실패가 돌이킬 수 없는 인생 실패로 이어지는 한국의 열악한 창업환경 탓이다.

하지만 안 이사는 "시니어의 경험과 청년들의 열정이 만나면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며 엔슬이 가진 풍부한 경험과 지혜, 네트워크가 스타트업의 성공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수십 년 간의 비즈니스 경험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고 덧붙였다.

현재 엔슬은 스타트업 창업의 실패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는 데 초점을 두고 멘토링을 제공하고 있다. 시니어 멘토들은 시장에 처음 진입해서 막막한 창업가에게 비즈니스 구상에서 기획까지 전반적인 멘토링과 더불어 오랜 시간 직장생활을 하며 다진 넓은 네트워크를 총 동원해 사람을 연결해주는 매칭서비스까지 제공한다.

"경험은 결코 늙지 않는다"(Experience never gets old)는 영화 '인턴'의 카피를 엔슬의 시니어들은 한국 창업 생태계에서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백팩 메고 스니커즈·스페리 신는 엔슬의 시니어들

"2030세대 젊은 창업가들과 만나려면 우리(시니어)가 젊어져야 합니다. 멘토가 되기 이전에 먼저 멘티를 아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물론 엔슬의 시니어들에게도 남다른 고충이 따랐다. 사회 중역으로서 어디서든 대우받고, 또 그런 극진한 대접에 익숙하던 이들이 은퇴 후 청년창업가들을 만나 소통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자신을 낮춰야만 했다. 청년 창업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청년들의 눈높이에서 그들과 마음으로 소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캐주얼로의 드레스 코드 변화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30여년 간 정장에 구두만을 고집하다 캐주얼한 복장을 하려니 처음에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캐주얼룩이 더 편하다고 임 대표와 안 이사는 한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복장에 변화를 주니 청년창업가들도 편하게 다가와 마음을 열고 비즈니스 관련 상담을 해오고, 무엇보다 꿈 많고 열정 넘치던 청년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계면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또한 임 대표는 "전직 대기업 임원 출신들이 엔슬에 오면서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이 바로 겉모습"이라며 다들 최신 유행에 민감해졌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대기업 임원에서 후배 창업자들을 돕는 멘토로 변신한 엔슬의 시니어들이 백팩과 스니커즈·스페리 차림으로 현장을 누비는 모습이 한없이 멋있게 보였다.

임수택 엔슬 파트너스 대표(왼쪽부터), 배영효 엔슬 협동조합 이사장, 안창주 엔슬 협동조합 이사/사진=임성균 기자
임수택 엔슬 파트너스 대표(왼쪽부터), 배영효 엔슬 협동조합 이사장, 안창주 엔슬 협동조합 이사/사진=임성균 기자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7년 2월 20일 (11:31)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조성은
조성은 luxuryshine7@mt.co.kr

제일 잘 익은 복숭아는 제일 높은 가지에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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