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마음으로 근로자 구한 도산법 전문가

[법조계 고수를 찾아서]법무법인 대륙아주 김진한 변호사

머니투데이 류철호 기자, 배준희 |입력 : 2010.07.14 08:41
이기사주소 : http://news.mt.co.kr/mtview.php?no=2010071119261680260&type=1


-파산관재인 'CEO' 마인드로 무장해야
-도산법 '노블리스 오블리주' 실천할 수 있는 매력적인 분야
-사회적 약자 보호에 앞장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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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대륙아주 김진한 변호사 ⓒ 유동일 기자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자금 압박으로 기업들이 신음하던 1997년 1월. 재계 순위 14위였던 한보그룹이 맥없이 쓰러졌다. '한보사태'로 불리는 이 기업 도산 사건을 신호탄으로 우리나라는 경기 침체의 깊은 수렁에 빠졌고 수많은 기업들이 줄줄이 퇴출됐다. 정부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기업과 금융권 간 부도유예협약을 유도하고 협조금융제도 등을 시행했지만 기업의 줄도산을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1996년 52건에 불과하던 회사정리사건은 이듬해 132건, 1998년에는 148건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하지만 회사정리절차로는 기존 경영진이 경영권을 유지할 수 없는 구조였기 때문에 기업들이 화의절차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도산법 분야가 법률시장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올랐다.

국내 최고의 '도산법' 전문가로 통하는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김진한(54) 경영대표변호사가 도산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기업들은 줄줄이 쓰러져 나가는데 파산관재업무를 처리할 도산법률전문가가 전무했어요. 우연히 법원의 권유로 한 기업의 파산관재 업무를 맡게 된 것이 도산 분야에 발을 들인 계기가 됐습니다."

법원 파산부가 인정하는 파산관재인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김 변호사는 도산법 전문가가 부실기업들의 운명을 결정짓고 회사를 팔아 채권자들의 권리를 찾아주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도산 법률가는 사회적 갈등을 조절하는 중재인이 돼야 합니다. 부실기업을 좀 더 비싼 값에 팔아 채권자들을 만족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정신의 실천입니다."라고 김 변호사는 말했다.

◇"파산관재인 'CEO마인드' 가져야"

김 변호사는 사법시험 32회(사법연수원 22기)에 합격한 뒤 1992년 동료 변호사 2명과 함께 법무법인 '아주'의 전신인 '아주종합법률사무소'를 개소했다. 그는 이후 1999년 국내 굴지의 IT업체였던 세진컴퓨터의 자회사인 서비스뱅크㈜의 파산관재 업무를 시작으로 도산 분야에 첫 발을 들였다. 법원은 물론 변호사업계에서도 도산법 전문가를 찾아보기 힘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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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동일 기자
김 변호사는 "외환위기 당시는 파산법과 화의법 등 도산 관련 법률이 거의 사문화한 상태였다"며 "국제통화기금(IMF)이 구제금융 지원 조건으로 도산 관련법 정비를 요구해 1999년 2월 서울중앙지법에 파산전담재판부가 설치되는 등 관련 분야에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으로 첫 수임 사건을 성공적으로 끝마쳤고 이 일을 계기로 총 규모가 2조원대에 이르던 우성건설 도산사건 등 굵직한 기업 파산 사건들을 맡게 됐다. 이후 그의 손을 거쳐 간 기업들만 해도 수십여 곳에 달하지만 김 변호사는 한 때 국내 레저업계를 호령했던 대영㈜의 파산 사건을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꼽는다.

당시 대영은 콘도와 스키장 등 모든 자산에 이미 시가를 상회하는 수준의 담보권이 설정돼 말 그대로 껍데기만 남은 상황이었다. 모두들 희망이 없다며 포기하려 했지만 김 변호사는 관광산업의 특수성을 간파하고 남다른 돌파구를 택했다. 스키시즌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잘만 버티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 결단을 내린 김 변호사의 추진력은 남달랐다. 자신이 직접 연대보증을 서 돈을 빌려 직원들의 급여와 운영비를 충당해가며 때를 기다렸다.

결국 그 해 스키시즌에 호황을 누리면서 큰 수익을 낸 대영은 20억원에 매각됐다. 비록 몇 해 지나지 않아 경영난으로 문을 닫기는 했지만 대영의 임직원들은 그의 기지와 뚝심 있는 추진력 덕분에 몇 년 동안 실업자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김 변호사는 "파산 회사의 환가 가치가 없으면 영업을 폐지하는 것이 통상적인 파산절차지만 당시에는 모두가 포기한 기업을 살려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며 "도산법 전문가가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가 바로 CEO 마인드"라고 말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 실천에 앞장서야

파산관재인의 가장 기본적인 업무는 파산한 회사를 매각해 채권자들의 피해를 줄이는 일이지만 김 변호사는 뛰어난 파산관재인이라면 기본을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파산 업무를 하다보면 비용을 절감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공업용 포장용기 제조업체였던 주화산업 파산사건도 김 변호사의 이 같은 신념이 잘 드러난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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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동일 기자
주화산업은 파산 당시 거의 모든 자산에 담보권이 설정돼 환가 가치가 없었다. 그러나 김 변호사는 함께 업무를 처리하던 남동환 변호사와 함께 근로자들의 뜻을 존중해 회사정리절차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대로 공장이 문을 닫을 경우 수많은 근로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근로자 대표와 공장 임대차 계약을 체결해 임대료 수입을 올리면서 공장을 계속 가동시켰고 인수자가 나타나자 근로자들의 고용을 승계하는 조건으로 소유권을 넘겼다. 그는 "파산을 택하면 업무처리가 훨씬 수월하지만 파산관재인의 역할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며 "파산관재인이 헌신적으로 일을 처리하다보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최초 민간배드뱅크의 사외이사로 선임

김 변호사는 지난해 10월 출범한 국내 최초의 민간배드뱅크인 연합자산관리(유암코)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연합자산관리는 올 상반기 국내 6개 시중은행으로부터 3290억원 규모의 30개 법정관리기업 채권을 인수해 구조조정을 전담할 예정이다. 앞으로 대륙아주가 관련 업무를 주도적으로 처리하게 된다.

대륙아주는 현재 외국변호사까지 100명 규모의 로펌이다. 김 변호사를 주축으로 한 도산전문팀은 15명이다. 그는 2006년 초 파산관재인으로 활동한 경험을 정리한 '파산관재업무 실무집'을 출간할 정도로 관련 분야에서 독보적인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