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日순사, 밤엔 독립군…'위장 친일파'는 실존했을까

[광복 70주년]의열단 활동한 일본 경찰 '황옥'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입력 : 2015.08.15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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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8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열린 '황옥경부폭탄사건' 재판에서 황옥(왼쪽)과 김시현이 나란히 앉아있다./ 사진=황용건씨 제공
3·1 만세운동 이후 4년이 지난 1923년 3월. 조선 경성 한복판에서 대·소형 폭탄 36개와 권총 5정이 발견됐다. 이 사건으로 의열단원 김시현, 유석현 등 18명이 구금됐다. 조선총독부, 동양척식회사, 매일신보사 등을 파괴하려던 '제2차 의열단 대암살·파괴 계획'이 친일 조선인 경찰 권상호의 밀고로 물거품이 된 것이다.

이 사건의 중심에 경기도경찰부 고등경찰과 경부 황옥(黃鈺)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황옥은 경찰 간부 신분을 이용해 폭탄을 밀반입한 혐의로 체포됐다. 경찰 간부가 독립투사였다는 사실에 일본은 발칵 뒤집혔다. 신문들은 사건을 '황옥경부폭탄사건'이라고 부르며 '의문의 인물', '가장 의심할 점' 등으로 황옥을 집중 조명했다.

하지만 황옥은 독립투사로 인정을 받거나 서훈을 받지는 못했다. 그가 일제를 상대로 첩보활동을 한 '위장 친일파'였는지, 의열단에 잠입한 '스파이'였는지가 아직 쟁점으로 남아있는 탓이다. 학계에서도 황옥이 '위장 친일'을 한 독립투사였을 가능성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지만 이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친일파 황옥?..."의열단 잡으려 노력했다" 법정 진술

황옥은 1920년 3월 경기도경찰부 직속 도경부로 특채됐다. 이후 1923년 3월 황옥경부폭탄사건으로 체포될 때까지 고등경찰과 경부로 근무하면서 독립투사들을 감시하고 정탐활동을 벌였다.

황옥은 체포된 후 재판에서 최후 변론으로 "경찰 관리로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노력했고 성공하면 경시까지 시켜줄 것이라 굳게 믿었다"고 말해 반민족 행위자라는 비난을 샀다. 당시 전 경찰부장 시로가미 유키치는 "의열단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황옥을 침투시켰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를 근거로 황옥을 쉽사리 친일파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본다. 황옥의 생애를 집중 연구한 학자 황용건씨(문경시청 소속)는 "황옥이 의열단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재판장에서) 거짓 진술을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독립투사 황옥?...약산 김원봉 "황옥은 열렬한 의열단원"

황옥이 친일 경찰이 아니라는 증언은 주요 독립투사들 사이에서 나왔다. 그가 열렬한 애국자로 인정받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의열단을 이끈 김원봉도 조선혁명간부학교 교육과정 중 생도들에게 "황옥은 경기도 고등과 경부이나 과거 의열단원으로 활동했다"며 "불행히 관헌에 체포된 애련한 자"라고 소개했다.

황옥은 1920년 8월 미의원단 입국환영식에서 총독 암살 계획을 세우던 김상옥에게 일본 경찰이 1000여명을 사전 검속한다는 정보를 알려 그를 피신시켰다. 또 1922년 12월 김지섭이 국내폭탄 반입을 위해 군자금을 모으다 발각되자 탈출에 도움을 줬다는 기록도 있다.

황용건씨의 저서 '문경 한두리의 재발견'에서 황옥의 큰 딸 인자씨는 "아버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아버지를 위대한 독립운동가로 인정했다"며 "아버지의 진정한 생각과 행동은 하늘과 땅, 그리고 당신 자신만이 알뿐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위장 친일파' 인정 가능할까...증인·사료 부족에 악용 우려도

황옥은 6·25 전쟁 당시 강제 납북됐다. 때문에 그에 대한 직접적인 증언을 해줄 사람이 현재 거의 없다. 황옥과 관련된 문서는 주변인의 기록과 재판·수사기록 뿐이며 직접 작성한 사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학계는 황옥을 비롯해 수많은 '위장 친일파'들이 독립군으로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첩보활동 특성상 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위장 친일파'를 인정할 경우 친일파 후손들이 이를 악용할 소지도 있다.

실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조사활동을 벌이는 동안 수많은 친일파 후손들이 자신들의 조상이 '위장 친일파'였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위장 친일파'는 악용될 가능성이 크고 그동안 힘들게 환수한 친일재산이 다시 송사에 휘말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독립투사들이 정보가 없다는 이유로 잊혀진다는 것은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이라며 "국가가 나서 일본에 상당수 남아 있는 사료를 요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