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보리 사장, 희토류 때문에 잠 설치는 사연

박기영 짐월드 대표이사

"희토류가 이렇게까지 발목을 잡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희토류로 놀이교구를 만든 마지막 사람으로 기록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짐보리를 운영하는 박기영 ㈜짐월드 대표이사(49)는 영유아 교육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한다. 1987년 미국 MBA 유학 시절 혈혈단신으로 27개 쟁쟁한 현지 기업들을 물리치고 짐보리 한국 총판권을 따냈다. 국내에서도 1992년 회사 설립 이래 대기업 등 수없이 많은 이들의 도전을 물리치고 19년째 놀이교육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다.


박 대표는 한국에서 프랜차이즈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인물이기도 하다.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영유아 놀이음악 교육 프로그램을 전국에 보급하겠다는 신념으로 프랜차이즈 가족을 엄격하게 고르고 또 골랐다. 덕분에 3만명 회원을 확보하는데 16년이 걸렸다. 하지만 수익보다 브랜드 가치를 우선시한 전략은 시간이 지날수록 진가를 발휘해 젊은 엄마들의 짐보리에 대한 신뢰는 남다르다.

박 대표는 그러나 엄밀히 말해 사업가이지 교육가는 아니다. 유아교육의 발전 못지않게 기업의 성장도 책임져야 하는 CEO다. 박 대표는 프랜차이즈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짐보리의 브랜드 파워를 바탕으로 한 유통사업을 고민했다. 그러던 중 2008년 2월 미국 뉴욕 토이 페어에서 '맥포머스'를 발견하고 무릎을 쳤다.

맥포머스는 삼각형, 사각형 같은 2차원 평면 구성물들을 바닥에 놓고 붙이다 보면 자석의 힘으로 순식간에 3차원 구조물이 완성되는 놀이교구다. 어른들 입에서도 '우와~'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신기하고 재밌다. 아이들의 수학 감각을 키워주는 것은 물론, 창의력과 두뇌발달에도 그만인 제품이다.

짐보리의 자석 놀이교구 맥포머스(출처=짐보리숍)

박 대표는 미국 본사의 래리 헌츠 사장과 곧바로 한국총판 계약을 체결했다. 2개월 파일롯 테스트를 거쳐 2008년 10월부터 GS홈쇼핑을 통해 본격 판매에 나섰다. 반응은 뜨거웠다.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유아용품은 일반적으로 100억원 정도 매출을 달성하면 한계라는 게 업계의 정설이었지만 맥포머스의 인기는 꺾일 줄을 몰랐다.

박 대표는 여세를 몰아 제품 연구개발(R&D)에도 본격 나섰다. 이 과정에서 미국 본사와는 단순한 총판 관계가 아닌 파트너십 관계로 자연스럽게 발전했다. 엔지니어 출신의 래리 사장도 마케팅 능력이 뛰어난 박 사장의 도움에 힘입어 해외 판로를 적극 개척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1월 래리 사장으로부터 솔깃한 제안이 들어왔다. 아예 본사를 인수할 의향이 없느냐는 것.

박 대표는 더 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물었다. 잘 나가는 회사를 왜 팔려 하냐고. 래리 사장은 희토류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어서 사업 전망이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맥포머스 자석은 일반 자석보다 자성이 10배 정도 강해야 하기 때문에 희토류의 일종인 네오디뮴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중국의 희토류 수출억제 정책 때문에 2009년 톤당 1만5300달러 정도이던 네오디뮴 가격이 지난해 4만7255달러로 3배 넘게 뛰었다. 래리 사장은 앞으로 사업이 어렵다고 봤다. 하지만 박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현재의 매출액과 장래의 매출액을 고려했을 때 희토류 리스크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제품의 진화를 통해 충분히 가격인상 요인을 상쇄시킬 수 있다고 본 거죠. 그리고 희토류 가격이 끝도 없이 계속 오르지는 않을 거라고 다소 긍정적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박 대표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올 1월 네오디뮴 가격은 9만3000달러로 전년평균 대비 2배 가까이 뛰었고 이달 들어서는 21만9500달러까지 폭등했다. 불과 4개월만에 2배 넘게 가격이 뛴 것이다. 2009년 대비로는 14배나 뛰었다. 박 대표는 미국 본사 인수 후 수출선을 8개국에서 32개국으로 늘렸지만 현재 제품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제품을 보다 가볍게 만드는 등 R&D를 통해 가격인상 부분을 상쇄시키려고 노력했는데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자고 나면 네오디뮴 가격이 오르니까요. 어쩔 수 없이 해외 파트너들에게 45% 가격인상을 통보했습니다. 국내도 버틸 때까지 버텨보겠지만 20% 정도 인상은 불가피할 것 같습니다."

박 대표는 네오디뮴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현재 백방으로 뛰고 있다. 하지만 희토류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알려진 베트남이나 키르기스스탄의 소식은 희망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다. 1년 내 생산이 쉽지 않을 뿐더러 희토류 수요가 워낙 많고 다양해 네오디뮴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 최소 300억원의 수출이 가능했는데 희토류 가격이 떨어지지 않으면 좌절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출 기회가 사라지지 않게 정부 차원의 대책이 좀 마련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