횟집간 박재완 장관, 풋고추보고 놀란 사연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저녁 약속 때문에 횟집을 찾았을 때 일이다. 박 장관은 상에 오른 풋고추를 보고 식당 주인을 불렀다. "풋고추는 먹지 않으니 가져가라. 앞으로도 원하는 손님들에게만 내 주시라"고 당부했다. 최근 풋고추 가격은 지난해의 두 배에 달하고 있다.

물가를 총괄하고 있는 박 장관이 얼마나 물가에 민감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임종룡 국무총리실장은 지난해 재정부 차관으로 물가를 담당하던 시절, 삼겹살을 먹지 않았다. 삼겹살이 구제역 때문에 공급이 달려 '金겹살'로 불리던 때다. 임 실장은 당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가격이 오른 계란 후라이도 안 먹었다. 그는 "나부터 소비를 줄여야 할 게 아니냐"고 말했다.


공무원이 언제 국민에게 칭찬을 들었으랴만 지금 가장 '욕먹는 공무원'이 바로 물가 담당자들이다. 국민들에게 욕먹고 대통령에게는 시쳇말로 시도 때도 없이 깨진다. 하지만 그들의 물가 안정을 위한 노력은 가히 눈물겹다. 지난해 물가를 담당했던 모 과장은 스트레스 때문에 구안와사(안면 근육마비)가 찾아오기도 했다.

청와대 지시로 각 부처별로 물가안정책임제, 일명 물가 실명제가 시작되면서 스트레스는 더욱 심해졌다. 물가 실명제를 넘어 목표 할당제를 할 거라는 말도 들린다.

1년 넘게 물가 대책을 계속해 더 이상 새롭게 꺼낼 카드도 별로 없다. 지난해 1월13일 물가안정 종합대책을 발표한 이후 관계 장차관 회의만 50회 넘게 열었다. 다룬 안건만 200여 건에 달한다. 나올만한 대책은 다 나왔다는 얘기다. 이 대통령이 최근에 "일본은 왜 그렇게 물가가 안정돼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지만 이미 지난해 한번 다 검토해 봤던 사안일 정도다.


물가 대책 초반이던 지난해에는 민간 기업들에게 말발이라도 먹혔다. 물론 욕은 먹었지만 정부가 대충 눈치 주면 알아서 움직여 줬다. 하지만 물가 불안이 1년 넘게 지속되면서 민간에 읍소(?)하기도 쉽지 않다. 지난해 정유업계, 통신업계를 대표적 독과점 산업으로 지목하고 대놓고 압박하던 '과천의 큰소리'를 올해는 찾아보기 어렵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주관하는 식품업계 협의회에 참석했던 한 물가 담당자는 "협의회장이 '정부 물가정책에 1년간 협조하면서 여기 참석자들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민간업계 임원들이 철저히 수익성으로 평가받다 보니 많이 짤렸다는 얘기를 에둘러 전달한 것이다. 물가정책 협조를 위해 재계 단체장을 찾아 갔던 정부 고위 관계자는 "공공요금부터 잡아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물가안정을 이끄는 두 수레바퀴 중 나머지 한쪽, 한국은행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온다. 한은이 물가에 가장 효과가 큰 금리 인상을 못하면서 물가 대책의 하중이 온 통 나머지 한쪽 바퀴에 쏠렸기 때문이다. '한쪽 바퀴가 고정된 수레는 아무리 밀어도 제자리만 맴돌 뿐'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