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 없는 놈 키워놨더니 회사를 옮겨?" 괘씸하지만…

최근 출장 중에 만난 박종만(가명, 47세) 사장(소프트웨어 분야 A중소기업)은 얼마 전 사표를 내고 대기업인 B전자로 이직한 김석우(가명, 34세) 과장만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박 사장은 성실했던 김 과장이 맘에 들었고, 연봉도 많이 올려줬다. 하고 싶은 연구를 맘껏 하라고 배려도 해줬다. 그런 김 과장은 회사의 이른바 '에이스'가 됐다. 그런데 얼마 전 B전자 경력공채에 합격했다고 박 사장에게 사표를 들고 왔다.


박 사장은 배신감을 느꼈다. "B전자 공채 등 대기업에 수차례 떨어진 실력 없는 사람을 키워놓으니까 이제 떠난다고 하니 말문이 막혔다"고 했다. 특히 이 회사의 핵심 기술을 하루아침에 B전자에 뺏긴다고 생각하니 더욱 부아가 치밀었다.

박 사장은 "김 과장이 이름 있는 회사에 가야 결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스스로 지원했다고 하던데 그건 핑계에 불과하다. 신입 땐 받아주지 않던 B전자가 이제 쓸 만하니깐 데려간 것 같다"며 "대기업들이 이렇게 중소기업에서 키운 인력을 데려가면 우리는 정말 힘들다"고 토로했다.

지난 29일 동반성장위원회가 박 사장의 문제제기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을 내놨다. 중소기업 인력을 무분별하게 빼내는 대기업엔 금전적 부담을 포함한 각종 페널티를 준다는 것.


기자는 관점을 달리해 "중소기업에서 일하던 사람이 개인 사정상 대기업에 지원해 스스로 옮겨간 것 까지 제제할 거냐?"고 동반위에 물었다. 동반위 고위관계자는 "이유야 어떻든 중소기업 인력을 데려간다면 그에 응당한 대가를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며 "대기업이 경력공채를 통해 중소기업 인력을 채용하지 않고, 최대한 자체적으로 인재를 양성하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할 것이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중소기업 인재는 중소기업에서만 클 수 있게 한다는 얘기다.

이번엔 동반성장 정책을 주관하는 또 하나의 축, 지식경제부에 물었다. 지경부는 생각이 달랐다. "개인의 직업선택 자유를 어떻게 막을 수 있겠냐"는 것. 지경부는 "중소기업청과 함께 대기업이 의도적으로 빼가는 것인지, 직원 스스로의 선택인지 이를 명확히 구분할 것이다"고 했다. '기술인력 유출 신고센터'라는 곳을 통해 피해사례를 접수, 120명의 전문가가 각종 자료 등을 통해 이를 걸러낸다는 것이다. 지경부의 이 같은 판단은 인력유출의 기준이 애매하다는데서 비롯됐다. 직장을 옮기는 건 근로자의 자유인데 그것까지 정부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경부는 무엇보다 중소기업들이 직원을 뺏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게 중요하고 했다. 처우를 개선하고 비전을 제시하면서, 직원들이 대기업보다 자기 회사에 만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기업에서 아무리 스카웃제의가 와도 "아직 중소기업이지만 내 회사와 함께 성장 하겠다"는 신념으로 당당히 거절할 수 있도록 탄탄한 회사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신한은행 사례를 들었다. 1982년 창립한 신한은행은 당시 조상제한서(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은행)라는 쟁쟁한 은행들 틈바구니에서 달랑 점포 3개(직원 280명)로 영업을 시작한 중소기업이었다. 그러나 신한은행은 직원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최고의 대우를 해줬고, 독특한 조직문화로 끊임없이 비전을 제시하면서 성장을 거듭했다. 30년이 흐른 지금 신한은행은 국내 은행 중 가장 돈 잘 버는 '1등 은행'이 됐다는 것이다.

윤요한 지경부 산업인력팀장은 "중소기업 인력유출 문제는 대기업도 문제지만 중소기업들도 충분히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며 "아무리 오퍼가 와도 떠나지 않도록 직원들에게 대우를 잘해주고, 비전을 제시하며 로열티를 키워주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