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판 구매직후 3배↑ '양현석 재테크'비법

지난 2009년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게임전시회 '팍스(PAX·Penny Arcade Expo)'. 관람객들의 가장 큰 관심은 블리자드에서 체험버전으로 내놓은 '디아블로3'였다. 전작의 흥행에 따른 기대감이 몰렸기 때문이다. 디아블로3 체험관 앞에는 수십명이 줄을 서는 진풍경까지 펼쳐졌다. 그로부터 3년 뒤, 디아블로3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은 국내에서도 그대로 재연됐다.


지난 14일 디아블로3의 한정판을 사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왕십리역 일대가 극심한 혼란을 일으켰다. 블리자드는 정식 발매를 앞두고 전야제 행사를 개최하며 디아블로3 한정판을 판매했다. 이 한정판을 사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렸다. 현장에서 밤을 보낸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디아블로3 한정판의 가격은 일반판에 비해 비싼 편이다. 일반판이 5만5000원데 비해 한정판은 9만9000원에 판매됐다. 한정판에는 해골모양의 USB와 아이템, 원화집 등이 추가됐다. 소장용의 의미가 강했다. 디아블로3의 경우 워낙 전작의 인기가 높아 골수팬이 많았다는 점에서 한정판에 대한 수요가 많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이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어렵게 구한 디아블로3 한정판을 되파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 마찬가지로 미처 물품을 구매하지 못한 사람들이 정상가보다 높은 가격에 디아블로3 한정판을 사려고 하는 움직임까지 생겼다. 디아블로3를 두고 새로운 시장이 생긴 것이다.

실제로 '얼리 어답터'들이 즐겨 찾는 클리앙의 '중고장터'와 네이버카페 '중고나라' 등에는 디아블로3에 대한 매매글이 수백건씩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다. 가격대는 천차만별이지만 대략 30만원선에서 가격이 형성되고 있다. 정가에 비해 3배 가량 높은 가격이다. 입소문으로만 회자됐던 한정판 재테크의 현장이다.


게임 한정판에 대한 인기는 주로 외국에서 먼저 시작됐다. 외국 게이머들은 게임을 소장한다는 개념이 강하다. 반면 국내에서는 게임을 온라인에서 내려 받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국내 게임사들도 해외 진출을 할 때는 게임CD와 원화집 등이 담긴 패키지 형태로 게임을 내놓는다.

↑디아블로3 한정판을 구매하기 위해 왕십리역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하지만 디아블로3 한정판에 대한 열풍이 불면서 국내에서도 게임 한정판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에 디아블로3 한정판을 구매한 김정식씨는 "예전에도 게임CD를 모으는 것이 취미였기 때문에 이번에 디아블로3 한정판을 구매했지만, 구매 이후 예전에 소장하고 있던 게임 한정판에 대한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태권V 피규어가 장난감?"…훌륭한 재테크로도 둔갑

한정판 재테크는 주로 취미에서 시작된다. 우표 수집처럼 한정판을 취미 생활로 수집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만의 '컬렉션'을 마련하고 한정판을 모은다. 하지만 한정판은 말 그대로 한정된 수량만 판매되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수요가 발생한다. 즉 한정판을 가진 사람들과 한정판을 가지고 싶은 사람들, 시장의 원리가 탄생한다.

바비인형도 그 중 하나다. 지난 2006년 영국에서는 다소 색다른 경매가 진행됐다. 경매에 나온 물품은 지난 1965년 출시된 '바비 인 미드나잇 레드'라는 이름의 바비인형. 이 인형은 희소성을 인정 받아 약 1600만원에 낙찰됐다. 아이들의 장난감 정도로 치부되던 인형이 훌륭한 재테크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실제로 지난 2009년 탄생 50주년을 맞아 출시된 다양한 종류의 바비인형 한정판들은 여전히 인기 있는 아이템으로 꼽힌다. 출시 1년이 지나고 가격이 10배 이상 뛴 인형들도 있다. 외국에 비해 국내에서는 다소 수요가 적은 편이지만 일부 수집가들은 중고사이트 등을 통해 이들 인형을 거래하고 있다.

↑지난 2008년 한 행사에서 공개된 로보트태권V 모형. 이 모형과 같은 피규어들이 시장에서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

마니아층이 두꺼운 피규어 시장도 활발하다. 얼마전 다양한 피규어들로 채워진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집무실이 한 방송에서 공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피규어는 주로 만화나 영화 등에 등장했던 캐릭터가 인기다. 소장용으로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를 되파는 사람들도 있다.

로보트 태권V도 그 중 하나다. 향수를 자극하는 이 피규어는 지난 2007년 40cm 크기로 처음 판매됐다. 발매 45시간만에 1976개 전량이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 김청기 감독의 친필 서명이 들어가 있는데다 한정판으로만 판매돼 인기가 높다. 수집가들을 자극하듯 시리얼 넘버까지 찍혀 있다.

이 제품은 현재 온라인 중고사이트 등에서 15만원~23만원 가량에서 판매되고 있다. 제품의 상태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고 있다. 정상가가 7만5000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며 판매 5년만에 2~3배 이상 가격이 뛴 셈이다. 지난 2009년에 발매된 20cm 크기의 로보트 태권V 피규어(4만9000원)도 현재 6만원 이상 가격에서 거래되고 있다.

피규어 수집이 취미인 한 코스닥 상장사 대표는 "피규어가 다른 수집품에 비해 가격이 다소 비싼 편이지만 나만의 컬렉션을 꾸밀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며 "한정판 등 희귀 피규어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없어서 못 사는 정도"라고 말했다. 그 역시 다양한 피규어를 자신의 집무실에 진열해 둔 상황이다.

만화책 역시 수요가 많은 품목이다. 옥션 중고장터에는 5월 현재 2만5000개의 만화책이 올라와 있다. 이 중에서 지난 1994년에 만들어진 '아기공룡 둘리' 1권~10권은 20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초판본의 경우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른다. 하지만 공급량이 많지 않아 거래는 뜸한 편이다.

반면 외국 만화 시장은 엄청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 1938년 발매된 슈퍼맨 만화 초판본은 지난해 영국의 한 경매에서 약 25억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이 만화책은 발매 당시 10센트에 판매됐다. 천문학적으로 가격이 오른 셈이다. 지난 1962년 발매된 스파이더맨 만화 초판본 역시 지난해 12억원에 낙찰됐다.

시선을 명품으로 돌리면 한정판의 가치는 급증한다. 수억원을 호가하는 명품 시계 한정판의 경우 구매 직후 프리미엄이 수천만씩 붙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이들 시계는 상속세가 별도로 부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자들 사이의 상속 아이템으로 꼽히기도 한다. 핸드백·오디오 등의 한정판도 황제 취미로서 여전히 인기다.

한 수집 전문가는 "한정판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입장에서 당연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며 "남들이 가지지 않은 것을 가졌다는 생각이 한정판에 대한 거래를 부추기는 요소"라고 말했다. 또 다른 수집가는 "한정판에 대한 수요가 많다는 점을 일부 회사들이 악용해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은 되짚어볼 만한 문제"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