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섰다 '1억 빚' 40대주부, 빨리 갚으려고..

눈을 감고 벼랑 끝에 서 있다고 상상해보자.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다. 지금 당신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아프지 않게 떨어지고 싶은가, 아니면 계속 이대로 버티고 싶은가, 뒷걸음질 쳐서 벼랑을 벗어나고 싶은가….

과도한 빚에 내몰린 사람들의 심정은 흡사 벼랑 끝에 서 있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1000조' 가계부채 시대, 빚과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과연 당신은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숱한 고난이 기다리더라도 벼랑에서 벗어날 용기를 낼 수 있는가.

"용기를 가지면 이 세상에 탈출 못할 빚은 없다. 단 고통 없이 편하게 해결할 수 있는 빚도 없다." 부채 상담을 통해 저소득·저신용자들의 재기를 돕는 '희망 만드는 사람들'(이하 희만사)이 빚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띄우는 간곡한 메시지다.

보건복지부의 '부채클리닉재무컨설팅 서비스'를 수행한 포도재무설계의 자회사로, 지난 2009년부터 부채전문 상담을 진행해온 희만사를 통해 빚의 실체와 빚의 터널에서 헤쳐 나오는 전략을 알아봤다.


사진_류승희 기자

◆ 빚이라는 '전염병'의 실체

40대 주부 이수영씨(가명)가 빚의 늪에 빠진 건 벌써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친한 친구의 부탁을 들어준 게 화근이었다. 발등에 불로 떨어진 1억원의 채무. 이씨는 오빠에게 5000만원을 빌리고 나머지는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그러나 이게 시련의 끝이 아니었다. 돈 관리 능력이 부족한 이씨는 생활비 부족분을 신용카드 3개로 돌리며 빚을 불려나갔다. 워크아웃으로 빚을 상환해가는 와중에 또 다른 빚을 키워가고 있었던 것. 더욱이 건강악화로 병원 신세를 진 뒤 병원비로 인해 가정경제에 충격은 가중됐다. 다음번 카드 결제 예정금액이 1700만원으로 불어나자 이씨는 '백기'를 들었다.

서경준 희만사 부장은 "친구의 빚이 이씨의 부채로, 다시 이씨 오빠의 빚으로 번져가듯 부채는 전염성이 매우 강해 주변까지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속성을 지녔다"며 "정확한 대안 없이 임기응변식으로 빚을 막으려다 보면 더 큰 위험을 초래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빚이라는 전염병을 치료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인식의 전환이다. 흔히 빚의 압박을 받게 되면 대부분의 채무자들은 또 다른 빚을 내 기존의 빚을 막으려 한다. 대출금리보다도 빌릴 수 있느냐, 없느냐가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상황. 그러다 더 이상 빌릴 곳이 없어질 즈음에는 "한계에 이르렀다"며 손을 든다.

이와 관련해 희만사의 대출 전문 상담사들은 "섣불리 빚을 다른 빚으로 끄려고 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김정태 상담위원은 "당장 돈을 못 구하면 생명이 위독할 정도의 상황이 아니라면 빚을 내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서둘러 채무조정제도를 이용하는 것이 낫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100만원도 없는 사람이 이자까지 더해 150만원의 빚을 빌려오면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서민금융제도나 채무조정제도도 응급처방은 될 수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되기는 어렵다. 이미 워크아웃을 신청한 이씨가 또 다른 빚을 쌓아가듯 각종 지원책은 '반짝' 고통을 완화해줄 미봉책에 그칠 뿐이다.

윤태환 과장은 "워크아웃이나 개인회생 등을 신청한 상당수 채무자들이 또다시 일수 등 사채를 쓰거나 지인에게 돈을 빌려 더 나락에 떨어지는 사례가 부지기수"라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부채 탈출의 근원적인 해결책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부채 전문가들은 부채 발생 및 증가의 원인을 찾아 이를 개선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해결방안이라고 제시했다.

이씨의 경우 보증에 대해 무지한 것이 부채 발생의 원인이었다면, 돈 관리 능력이 부족해 초과 지출을 습관화한 것이 부채를 증가시키는 주요인이 됐다. 따라서 서민금융제도 등을 통해 긴급한 부채 상환의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돈 관리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부채 탈출의 관건이다. 이에 부부 모두 가계부를 작성토록 하고, 매월 함께 예산과 지출을 점검하는 교육이 처방됐다. 또한 소득에 맞게 소비를 줄이는 등 고통을 감내하는 훈련을 수행해야 한다.

서경준 부장은 "대부분의 채무자들은 다중채무를 갖고 있어 스스로 빚을 해결하기가 어렵다"며 "전문적인 상담을 통해 부채 원인을 짚고 이에 따른 상환 계획을 세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희만사가 처방하는 가계부채병(病) 치료법
　
병에 걸리면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증상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계부채라는 병의 특징은 자각증세가 없거나 있어도 심각하지 않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혹은 알고서도 치료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가계부채병을 고치는 순서를 알아보자.

1. 제대로 알기
가계부채가 삶을 위협하기 전에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제대로 아는 일이다. 부채의 원인, 규모, 소득과 지출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2. 현금흐름 점검
월급으로 버틸 수 있는지 없는지, 들어오는 것보다 나가는 것이 더 많지 않은지 점검한다. 아낄 구석도 찾아낸다.

3. 상환 가능성 측정
이자를 내면서 버틸 수 있는지를 보지 말고 대출원금을 줄여나갈 수 있는지 측정한다.

4. 내게 맞는 서민금융지원제도 찾기
서민금융지원제도는 병의 증상을 완화하는데 유용하게 쓰인다. 하지만 치료제는 아니다. 조건이 복잡하므로 최종 순간까지 끈기 있게 찾아야 한다.

5. 진짜 의사 만나기
돌팔이는 병을 키운다. 가계부채 관련 인터넷 카페 등은 대부분 대출중개를 할 뿐이다. 소염제는 주는데 치료제는 못 준다. 확실한 부채 해소를 위한 진단과 상담을 받아야 한다.

6. 결심하고 독하게 실행하기
대충이 아니라 반드시 완치하겠다고 결심하라. 중병일수록 환자의 마음 상태가 완치 여부를 좌우한다. 가계부채의 해법은 쓴 약과 같고 외과수술과도 같다. 해법이 주어지면 독하게 실행하라. 안 그러면 빚이 당신을 독하게 물어뜯게 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5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