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현의 제일모직 '빈폴', 에버랜드에 넘긴 이유?

국내 패션 1위 기업인 제일모직이 패션 사업을 삼성에버랜드에 양도하기로 하면서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통 영역인 패션 부문의 실적 부진이 이어지면서 성장세를 타고 있는 소재 사업에 역량을 모으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패션사업, '실적 부진' 브랜드 철수 잇따라


제일모직 (0원 %)은 23일 이사회를 열고 패션사업을 삼성에버랜드에 1조500억원을 받고 양도키로 결의했다. 주주총회 등을 거친 후 오는 12월 1일자로 패션사업의 자산과 인력 등이 모두 삼성에버랜드로 이관될 예정이다.

제일모직이 회사의 대표 사업을 넘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만성적인 매출 부진이 꼽힌다. 1954년 설립된 제일모직은 직물사업을 거쳐 1980년대 패션사업을 시작, 명실상부 패션 대표기업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하지만 패션 분야는 의류 산업의 저성장 기조와 함께 최근 몇 년째 이익이 뒷걸음질 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분기에는 패션부문이 적자전환하며 '어닝쇼크' 굴욕을 겪기도 했다. 2분기 제일모직 패션부문은 영업손실 55억원을 기록,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다.


매출 부진으로 고전하면서 최근에는 14년 전통의 힙합 패션브랜드 '후부'를 접은 데 이어 여성브랜드 '데레쿠니' 사업도 철수했다. 이서현 부사장의 야심작으로 꼽히는 '에잇세컨즈'는 출범 1년 반을 넘겼지만 아직 이렇다 할 대표 제품을 출시하지 못했고, 대표 브랜드 '빈폴'을 앞세워 공략에 나선 중국 시장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반면 소재 사업은 성장세다. 제일모직은 1990년대 화학(케미컬) 사업에 뛰어든 이후 2004년에 이미 매출 비중 1위 자리를 화학에 넘겼다. 화학 및 전자재료 등 소재사업은 지난해 회사 전체 매출액의 70%를 차지하는 주력사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제일모직은 패션 부문의 양도대금으로 OLED 분야는 물론 기존 라인 증설 등 시설투자와 R&D(연구개발) 투자를 대폭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박종우 제일모직 소재사업총괄사장은 "이번 패션사업 양도 결정은 제일모직이 글로벌 소재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핵심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며 "공격적이고 선도적인 투자를 통해 차세대 소재의 연구개발과 생산기술의 시너지를 획기적으로 높여 선도업체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에버랜드, 패션 품고 의식주 종합회사로 도약

삼성에버랜드는 제일모직 패션사업을 인수하면서 의식주 관련 종합회사로 거듭나게 됐다. 기존 건설과 조경 등 '주(住)' 기반 사업, 푸드와 식재료 유통 등 '식(食)' 기반 사업에 패션까지 더해지면서 의식주 관련 사업을 모두 아우르게 된 것.

삼성에버랜드는 기존 테마파크와 골프장 운영 등에서 축적한 노하우를 결합해 패스트 패션과 아웃도어, 스포츠 분야 등에서 새로운 시너지를 창출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제일모직이 보유한 글로벌 디자인 역량을 기존 사업에 접목, 질적 성장의 동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윤주화 제일모직 패션사업총괄사장은 "패션은 무엇보다 소프트 경쟁력이 중요한 사업"이라며 "리조트와 레저사업 등을 통해 소프트 경쟁력을 확보한 삼성에버랜드가 패션사업을 맡게 돼 앞으로 더욱 큰 시너지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봉영 삼성에버랜드 사장은 "이번 인수를 통해 패션 사업을 중장기 성장의 한 축으로 적극 육성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모멘텀으로 활용할 계획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