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노예' 노숙인 김씨, 내뿜은 담배연기에 담긴 사연…

'염전 노예'로 일하던 섬에서 경찰에 구출돼 섬을 빠져나오는 김모씨(40)의 모습./사진=서울 구로경찰서

육지로 향하는 배 위에서 김모씨(40)는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지난 1년 반 동안 겪었던 악몽 같은 생활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2012년 7월4일. 노숙인 생활을 하던 김씨는 광주에 가면 일자리도 주고 담배도 준다던 직업소개업자 이모씨(63)의 말만 믿고 무작정 영등포역에서 새마을호를 탔다.


악몽은 그렇게 시작됐다. 광주행으로 알고 탔던 기차의 종착역은 목포였다. 그곳에서 다시 일자리가 있다던 섬까지 2시간여 배를 타고 들어갔다.

김씨가 일하게 된 곳은 홍모씨(48) 소유의 염전. 섬 안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염전이었다. 그곳에는 이미 지적장애인 채모씨(48)가 4년여간 일하고 있었다.

담배와 잘 곳을 준다던 약속은 딱 그 말이 전부였다. 소금이 많이 나는 여름철에는 새벽 3시부터 일어나 밤 10시까지 20여시간을 염전일에 매달렸다. 그 외 계절에는 홍씨의 논밭에서 머슴처럼 일했다.


잠은 자재창고 안의 작은 방에서 잤다. 그나마 있던 전기보일러는 최근 고장이 나 이번 겨울 내내 아예 냉방에서 잠을 청해야했다. 1년6개월동안 월급이라고는 한푼도 손에 쥐지 못했다.

너무 힘들었다. 김씨는 2012년 8월 채씨와 함께 섬 탈출을 3차례 시도했다. 하지만 홍씨에게 발각돼 실패했다. 홍씨는 붙잡혀온 이들에게 "한번만 더 도망치면 칼침을 놓겠다"고 협박했다.

염전 노예로 시달린 김모씨(40)가 어머니에게 "구출을 도와달라" 부친 편지의 모습. 밤 중에 몰래 작성해 완성 시킨 편지다./사진=서울 구로경찰서

희망이 보이지 않던 찰나 김씨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편지쓰기도 쉽지는 않았다. 주방 서랍에 있던 볼펜을 몰래 가져와 밤중에 한 글자 한 글자 편지를 써내려갔다. "구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품속에 간직했던 편지는 지난달 13일 어머니에게 부쳐졌다. 이발을 하고 온다며 읍내로 나온 김씨는 잠시 홍씨의 눈을 피해 우체국으로 가 편지를 부쳤다. 편지를 받은 어머니 배씨(66·여)는 서울 구로경찰서에 이를 신고했다.

경찰은 이미 가출 신고를 접수하고 김씨를 찾고 있었다. 서제공 실종수사팀장(경위) 등 경찰은 "소금 구매업자로 위장해라"는 김씨의 편지 내용에 따라 지난달 24일 섬을 방문했다.

서 팀장은 숙소로 지내던 자재창고 앞에서 추운 날씨에도 낡은 양말에 얇은 옷만을 입은 김씨를 마주했다. 1년 반에 걸친 악몽은 그렇게 끝이 났다.

지난달 24일 구출돼 서울 구로경찰서에서 어머니 배모씨(66·여)와 상봉한 김씨의 모습./사진=서울 구로경찰서

이날 경찰의 도움을 받아 구출된 김씨는 2000년 이후 14년만에 어머니와 상봉했다. 어머니는 자식을 잃었다는 슬픔에 한참 더 늙어있었다. 김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다시 볼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서울 구로경찰서는 무허가 직업소개업자의 꾐에 속아 목포의 한 섬에 위치한 염전으로 팔려가 1년6개월~5년2개월 동안 소금 만드는 일 등에 강제 동원된 노숙자 김씨와 지적장애인 채씨를 구출했다고 6일 밝혔다.

경찰은 노역을 시킨 염전 주인 홍씨와 직업소개업자 고모씨(70)를 영리목적 약취·유인 등 혐의로 형사 입건해 신병 처리를 검토 중이다. 홍씨는 폭행 등의 혐의는 인정하나 임금을 지금이라도 지불하겠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은 김씨를 유인했던 직업소개업자 이씨 등 2명에 대해 추적하는 등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