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부터 러시아 귀화까지…안현수 10년간 마음고생?

러시아 쇼트트랙 대표팀 안현수(빅토르 안)가 15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남자 1000m 결승 경기에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후 감격에 젖어 얼음판 위에 엎드려 있다/ 사진=뉴스1

러시아로 귀화한 전 한국 쇼트트랙 국가대표 안현수(29·러시아명 빅토르 안)가 러시아에 역사상 첫 쇼트트랙 금메달을 안긴 가운데 그가 귀화를 선택한 이유로 알려진 빙상연맹의 파벌 논란이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안현수는 15일(현지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경기에서 1분25초325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반면 한국 남자 대표팀의 신다운은 실격 처리되며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


이에 안현수가 러시아로 귀화한 계기가 된 빙상연맹의 파벌 논란에 새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 씨는 2006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쇼트트랙선수권대회를 마친 뒤 열린 선수단 환영식에서 "선수들과 코치가 짜고 안현수가 1등 하는 것을 막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 안현수도 자신의 미니홈피를 통해 "파벌싸움이 너무 커져서 선수들이 큰 피해를 보는 것 같아요. 지금은 너무 힘드네요. 부끄러운 일들도 많고 아무리 참고 견뎌보려고 해도 지금은 다 관두고 싶은 생각밖에 안 드네요"라는 글을 남겼다.


안현수가 본격적으로 파벌싸움에 휘말린 것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국가대표팀에 합류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주니어 선수였던 안현수는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니어 대표로 선발되며 다른 쇼트트랙 선수들로부터 적지 않은 견제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안현수는 2005년 1월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한 군면제를 위해 금메달을 양보하라는 대표팀 선배의 요구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안현수는 멍이 든 얼굴로 경기장에 나타나기도 했다. 안현수를 폭행한 대표팀 선수는 그 일로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당했으나 이후 다시 국가대표로 복귀했다.

쇼트트랙계의 파벌 싸움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에도 불거졌다. 안기원 씨는 안현수의 팬카페에 "밴쿠버 동계올림픽 2관왕 이정수가 2010 세계쇼트트랙선수권대회 개인전 출전을 포기한 것은 대한빙상연맹의 부조리 때문"이라며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코치진과 빙상연맹이 출전을 다른 선수에게 양보하게 했다"고 폭로했다.

한편 한국 쇼트트랙계의 파벌 문제는 단순히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현 쇼트트랙 남자대표팀 사령탑인 윤재명 감독은 2005년 선수들과 코치의 반대에 부딪혀 대표팀 감독을 맡지 못했다. 당시 안현수와 최은경 등 대표팀 선수들과 전재수 당시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 등의 반대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몇 개월 뒤 쇼트트랙 남자대표팀 사령탑으로 지목된 김기훈 코치도 선수들의 반대에 부딪혀 감독을 맡지 못했다. 이때에는 안현수와 최은경 등을 제외한 이호석과 서호진 등 다른 대표팀 선수들이 "김기훈 코치는 특정 선수를 편애하기 때문에 그 선수가 메달을 따도록 다른 선수들의 희생을 강요해 왔다"며 선수촌 입촌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독과 코치가 수차례 바뀌는 혼란 속에서 송재근 코치가 남자 대표팀을 맡게 되자 안현수는 당시 박세우 여자 대표팀 코치와 함께 훈련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명규 한국체육대 교수(1991∼2002년 국가대표팀 코치·감독)와 그의 수제자인 김기훈과 안현수 대 '비(非) 한체대 출신' 들의 파벌이 있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밖에도 당시 '전명규 라인 vs 비(非) 전명규 라인', '안현수파 vs 비(非) 안현수파' 등 각종 파벌 프레임들이 있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일부 쇼트트랙 선수들 사이에서는 "누구와 친하게 지내야 금메달을 딸 수 있다더라"라는 말까지 나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최광복 감독도 파벌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최광복 감독은 2004년 상대 파벌에 속한 여자 쇼트트랙 선수를 구타했다는 의혹을 받아 당시 김소희 코치(현 MBC 쇼트트랙 해설위원)와 함께 코치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5000m 계주 금메달리스트인 이준호 전 쇼트트랙 감독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빙상연맹은 한체대파와 비(非) 한체대파가 대립각을 세우며 견제하던 때보다 못하다"며 "연맹에 찍소리도 못하는 사람들만 살아남을 정도로 파벌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한편 러시아는 안현수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고 실제로 이를 지켰다. 안현수는 러시아어 개인 교사와 개인 코칭 스태프 등을 지원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은퇴 후 모스크바 대학 교수직과 지도자 자리도 제안받은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