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지휘관, 가혹행위 보고하면 돌아오는 말이…"

KBS가 4일 육군 28사단 윤 일병 사망사건과 관련한 현장검증 사진 44장을 입수해 공개했다. 현장검증은 사건 발생 닷새 뒤인 4월 11일 진행됐다.

# "국방부 장관이 취임했는데 예하 부대 사건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게 대한민국 군이냐."


지난 4월6일 경기 연천 육군 28사단에 복무하던 윤 일병이 숨졌다. 육군 공보실은 다음날 윤 일병이 선임병들에게 맞은 뒤 음식물에 기도가 막혀 숨졌다는 등 단순폭행 사건이라고 언론에 발표했다. 군 선임들이 윤 일병에게 한 달간 매일 폭행과 욕설, 인격모독을 하고 치약을 먹이는 한편 간부가 폭행을 방조한 사실은 3달여 동안 은폐됐다.

군은 이 사건 후 4월 한 달간 전군 실태 조사를 통해 구타·가혹 행위 3919건을 적발했으나 구체적인 내용 역시 발표하지 않았다. 군 관계자는 "당시 군 내부에서 아는 사람들은 다 알았다"며 "나중에 가혹행위가 드러나면 어떻게 될지 걱정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한민국 국방부 장관은 4일 국회에서 '해당 사실을 보고 받았냐'는 의원들의 질책에 "그런 보고는 전혀 없었다"며 "언론보도를 통해 인지했다"고 대답했다.

◇ 가혹행위 보고 못하는 軍, 왜?= 최근 군대내 가혹행위와 의문사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일선 부대의 가혹행위가 보고 계통을 통해 상급부대로 전해지지 않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상급자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피라미드식 인사 시스템이 현장 지휘관들이 적극적으로 가혹행위를 보고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5일 군 관계자에 따르면 장병들을 직접 관리하는 대위급 초급 지휘관이 부대 내 가혹행위를 보고하면 부대 관리를 못한다는 낙인이 찍히고 자칫 커질 경우 징계를 받기 때문에 보고하기 자체를 꺼려한다고 전해졌다. 중령급 상급 지휘관들은 부대 내 가혹행위가 진급에 불이익이 된다는 이유로 이를 초급 지휘관 탓으로 돌리기 때문.


군 법률 전문가는 "군 지휘관들이 진급과 보신에만 신경을 쓰기 때문에 병영부조리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초급 지휘관이 가혹행위를 보고하면 칭찬은커녕 '너가 부대 관리를 잘못한 것 아니냐'하며 질책을 받기 때문에 초급 지휘관들은 보고하길 꺼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진급 못하면 은퇴, 사고나도 '쉬쉬'= 피라미드식 인사가 군 간부들의 '보신주의'를 부추긴다는 분석이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장기 근무 신청자 중 대위 중 소령 진급자는 70%, 또 중령 가운데 30%가량이 대령으로 진급한다. 군 간부는 진급하지 못하면 각각 계급 정년에 따라 은퇴해야 한다. 공무원 정년은 60세지만 군인은 진급하지 못하면 옷을 벗어야 한다는 것.

군 관계자는 "업체들이 전쟁을 대비해 1명씩 선발하는 비상계획관을 제외하면 전역자들이 마땅히 갈 곳이 없다"며 "30년 가량 군 복무한 사람이 사회에 나오면 무슨 일을 하겠나. 이러니 상급 지휘관들은 진급에 예민할 수밖에 없고 초급 지휘관들은 상급자 눈치만 보면서 부대 내 사고를 수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형사처벌 땐 군인연금 50% 삭감= 더욱이 부대 내 가혹행위가 불거져 형사 처벌을 받을 경우 군인 연금 중 절반에 달하는 본인납입액은 수령하지 못한다. 5일 한국납세자연맹에 따르면 군 고위 간부의 퇴역연금 월평균 수령액은 대령은 330만원, 중령은 265만원, 소령은 191만원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29.4년을 복무하는 대령의 경우 퇴직 후 월 약 165만원으로 노후를 꾸려야 한다는 것.

군 법률 전문가는 "해임과 파면 당해 군인으로서 명예를 잃고 사인이 커져 집행유예 이상 형사처벌로 이어지면 소액으로 남은 여생을 살아야 한다"며 "이러니 상급 지휘관은 군 가혹행위를 드러내지 않거나 초급 지휘관 혹은 장병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고 말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군 내부 고발을 문서로 규정해 양성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군 내부 문제를 제기한 군 간부가 불이익을 받는 상황을 고려, 내부 고발에 대한 평가를 상급 지휘관의 재량에만 맡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 내부 고발을 문서로 규정하고 더 나아가 인사 고가에도 긍정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군 관계자는 "국방부 검찰단, 조사본부, 감사관실 등 국방부 통제를 받는 기관들이 내부 고발을 조사하는데 제대로 될리가 있나"며 "군은 외부에서 접근이 힘든 폐쇄된 조직인만큼 조직 발전을 위해 내부 고발을 양성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홍명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간사는 "몇몇 기업은 회사 내 단점을 밝히면 조직 발전에 기여했다고 인정해주고 인사 고가에도 반영한다"며 "건전한 내부 고발을 인정해주고 이를 규정으로 명시해 또다른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