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일해서 좋겠다고?" 경단녀의 한숨

"하루 4시간 근무가 부럽다고요? 저는 고민이 많아요."

김지원씨(가명·35세)는 요즘 어렵게 구한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그만둬야할 지 고민하느라 밤잠을 설친다. 주변에선 하루 4시간 근무하고, 육아까지 병행할 수 있으니 '꿀보직'이라며 부러워하지만 김씨의 속은 매일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이른바 '경단녀(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를 위한 정책이 확대되면서 금융권에서도 시간선택제 채용을 늘리고 있다. 경력단절여성의 사회 재진입을 돕고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로 고용문화를 개선한다는 취지지만 아직까지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어렵게 재취업하고도 눈물로 퇴사를 결심하는 경단녀도 속속 나오고 있다.

◇"4시간 일하러 3시간 출퇴근?" 경단녀의 한숨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6월 초 약 200여명의 경단녀를 영업점에 배치했으나 이중 10여명이 퇴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한은행의 경우, 계약직이 아닌 정규직임에도 불구하고 인력 이탈이 발생한 것이다.


기업은행도 지난해 시간제 준정규직 109명을 채용했으나 지난 7월 기준, 7명이 퇴사했다. 우리은행은 창구전담 시간제 계약직 170명을 채용하고 이달 1일자로 영업점에 배치했으나 연수 중 개인사정으로 3명이 그만뒀다.

시간선택제 근무는 근로자가 상황에 맞게 하루 4~6시간 근로시간을 선택해서 일하되 기본적인 근로조건과 복리후생 등은 전일제 근로자와 차별이 없는 보장받는 일자리다. 육아와 병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력이 끊긴 여성들이 사회생활에 연착륙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다. 경단녀들이 시간선택제 근무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건 다름 아닌 '시간' 문제다. 김씨는 "시간제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육아인데 인사이동 등 지점 회식자리를 은근히 강요받는다"며 "불참하면 같은 지점 식구인데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는 눈총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간선택제 근로자인 이지원씨(가명·33세)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씨는 "처음 간담회에서는 경단녀들의 입장을 고려해서 시간을 지키기 어려운 마감 업무 등을 시키지 않겠다고 했지만 막상 현실은 달랐다"며 "연수할 때부터 갑작스러운 합숙 등으로 일정을 맞추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교육만 받고 퇴사한 신미진씨(가명·33세)의 경우는 출퇴근 시간이 총 3시간가량 소요되는 원거리 점포에 배치돼 출근도 하기 전에 입사를 포기했다.

신씨는 "4시간 근무하는데 3시간에 걸쳐 출퇴근을 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파트타임 급여가 연 1800만원이라고 하지만 각종 복지혜택에 따른 부분을 산술적으로 합산한 부분도 많더라"고 털어놨다.

◇"일자리 줄었는데 일은 안 줄었다?" 기업의 딜레마

경단녀를 고용하는 기업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학력이나 경력이 화려한 고급 인력을 고용해 놓고도 업무 연속성 등을 감안해 중요 업무는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A은행 관계자는 "아무리 교육을 시킨다고 해도 파트타임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전일제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일자리는 줄어들지만 일은 줄어들지 않으니 경단녀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B카드 관계자는 "경단녀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기 때문에 채용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며 "시간선택제 근무 확대로 개인과 직장 모두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