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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시평] 절실함, 기적을 만드는 힘

머니투데이 진양곤 (에이치엘비 회장) |입력 : 2014.08.27 07:41|조회 : 46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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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곤 에이치엘비 회장
진양곤 에이치엘비 회장
밥을 빨리 먹고 소리를 크게 질러 채용된 직원들. 그들은 3평(9.9㎡)짜리 창고에서 시작한 일본전산을 계열사 140개, 직원 13만명의 규모로 키워냈다. 12척으로는 개죽음 당할 것이라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수밖에. 오히려 300여척의 침략선이 박살났다. 테르모필레 협곡. 레오디나스왕과 300명의 정예군은 수십만 페르시아군과 싸우다 전멸했다. 하지만 그들은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다.

병법과 경영이론으로 설명이 쉽지 않은 이 같은 기적들에는 대체로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절실함'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일본전산이다. 합격하고 싶으면 밥을 빨리 먹으라 한다. 이곳이 아니어도 취직할 곳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꼭 이 회사에 취직하려는 사람의 반응은 많이 다를 것이다. 웩웩거리면서도 밥을 밀어넣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입사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다. 나가모리 사장은 이러한 절실함이 만들어내는 힘을 믿었을 게다.

절실함이 만든 기적들에 공감해보는 것은 위인전을 읽는 것보다 훨씬 유익하다. 내가 그가 되어보는 것이다. 이순신과 레오디나스가 되어보는 것이다. 현실이 혼돈스럽거나 길이 보이지 않을 때 필자는 절실함의 힘을 빌어보곤 한다. 여유는 나를 안전지대의 안락함 속에서 이유를 찾게 만들지만 절실함은 현실을 직시하면서 동시에 방법을 찾게 해주기에 나름 유익하다.
 
최근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의 절실함이다. 딸이 왜 죽어갔는지 알고싶다고, 그러니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해달라며 시작된 단식이 40일을 넘겼다. 그의 의도와 무관하게, 사회는 분열하고 대립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비판하려면 먼저 그가 되어보아야 한다. 나는 쉽게 그가 될 수 있었다. 나이도 비슷하고 필자 또한 유민이 또래의 딸이 있기 때문이다. 수학여행을 떠난 딸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내 몸보다 소중했던 딸인데 말이다. 황당했을 것이다. 아팠을 것이다. 억울하고 분했을 것이다. 해주지 못한 것, 모질게 한 것, 못난 부모 만나서 고생하게 만든 것. 이런 것들만 생각났을 것이다. 그러다 살 수 있었던 내 딸이 왜 죽어갔는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게다. 그래야만 하늘나라에서 딸을 떳떳이 만날 수 있겠다 싶었을 것이다. 단식하는 마음, 십자가를 들고 900㎞를 걷는 마음들이 그러했으리라. 평생 아들딸을 위해 살았으면서도, 더 잘해주지 못한 미안함뿐이었으리라.

너무 주관적이고 감정적인가? 잡혀간 새끼를 찾으며 울부짖다 피 토하고 죽은 원숭이의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고 한다. 단장(斷腸),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이성의 칼날과 객관성의 틀을 들이대는 게 적절한가?

영과후진(盈科後進). 물이 흐르다 웅덩이를 만나면 채우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 흐른다는 맹자의 말이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웅덩이들을 만났다. 하지만 우리는 채워지지도 않은 웅덩이를 넘어 물길을 내고 바삐 흘렀다. 성장을 위한 불가피함을 명분으로 하고 망각을 동력 삼아 생산성과 합리성이라는 바다로 마구 흘렀다. 멀리는 반민특위에서부터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붕괴와 4대강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행복하고 풍요롭게 해주리라 믿었던 생산성과 통합된 합리성이 부메랑이 되어 우리를 위협하는 지금에 와서도 우리는, 여전히 관념적이며 추상적인 미래를 위해 잊고 전진하자고 한다. 역사적 경험은 우리에게 말한다. 웅덩이를 채우는 것보다 제대로, 온전히 채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그리고 물길은 ‘인간’을 향해야 한다

아담 스미스는 분업의 효율성을 주장하면서 그로 인한 인간성의 상실을 우려했다. 하지만 그는 인간의 보편적 공감능력에 희망을 건다. 그렇다. 김영오씨,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인류애에 기초한 보편적 공감이어야 한다. 이념과 편견을 넘어, 정치공학을 떠나, 자신들의 절실함을 사회와 국가가 온전히 공감한다고 유가족이 확신케 하는 것, 그게 문제해결의 시작이어야 한다. 이는 '슬퍼요'라는 이모티콘 클릭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진심이 닿아야 한다. 진심은 행동을 요구한다.

지난 4월 우리 모두는 하나의 마음으로 울었고, 하나의 간절함으로 기도했다. 비록 기적은 없었으되 절실함을 공유한 것이다. 이제 한 아비가 죽음으로 호소하고 있다. 유가족에 대한 진심어린 위로가 되며 세월호 참사를 진정으로 극복하는 길은 그들의 절절한 목소리에 귀기울여 보는 것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절실함에 공감해보면 없던 길도 생긴다. 그리고 그 길은 결국 우리 아들딸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향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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