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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집 사람 사지를 하나하나…" 끔찍한 상상, 왜?

[취재여담] 멀쩡한 사람도 살인자 만드는 '이것'

머니투데이 신현식 기자 |입력 : 2014.11.09 06:30|조회 : 69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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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의 한 아파트 전경. 기사의 특정 사실과는 관련없음./사진=머니투데이 DB
서울 시내의 한 아파트 전경. 기사의 특정 사실과는 관련없음./사진=머니투데이 DB

"죽어야 하나 죽여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윗집 사람들 사지를 하나하나 절단하는 상상을 합니다."
"피해자들은 즉각 해결되는 방법만 원합니다"

극단적인 그들의 말이 처음엔 거북스러웠습니다. "우리가 예민하다구요?"하고 묻는 그들이 예민하게 느껴졌습니다. 짜증섞인 목소리, 가시돋친 눈빛도 거슬렸습니다.

하지만 한 피해자의 사례를 듣다 보니 공감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대구의 한 아파트에 산다는 이모씨(34·여)의 말입니다.

"저희 집은 특이하게 아랫집 소음으로 고통을 받는 경우예요. 아랫집 일곱 식구중에 사내애가 다섯이에요. 이 집은 보통 새벽 2시까지 떠들어요. 새벽 여섯시쯤만 되면 먼저 일어난 애들이 쿵쾅쿵쾅 해요. 처음엔 새벽에 시끄러워 잠이 깨도 곧 다시 잠들었어요. 그런데 다시 잠드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어요. 결국 나중엔 하루에 많이 자면 3시간 자고 적게 자는 날은 한시간 반 겨우 자요."

저는 잠을 충분히 못 자면 다음날 하루종일 비몽사몽합니다. 그러다보니 이 피해자가 느낄 고통과 짜증이 짐작이 갔던 것이죠. 한 번 공감하고 나니 다른 피해자들의 사례도 좀 더 와닿았습니다.

윗집에서 볼링공으로 주기적으로 바닥을 찍는 경우와 바닥에 바퀴가 달린 탁자를 끌고 다니면서 소음을 내는 경우, 잠들었을 시간에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내 잠을 깨우는 경우 등 악의적인 소음 발생도 많았습니다.

층간소음 규제 강화 촉구 기자회견 모인 피해자들은 사는 지역도 연령대도 피해 유형도 다양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심각한 것은 '고의적 소음'이라는 데는 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고의적 소음은 생활 속에서 어쩔수 없이 발생하는 층간소음이 아닌 아랫집에 고통을 주기 위해 일부러 내는 소음을 말합니다. 보통 소음으로 분쟁이 발생해 이웃간에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있고 나면 앙심을 품고 큰 소릴 내는 것이죠. 층간소음 갈등이 살인, 방화로 이어지는 경우는 대부분 이 고의적 소음이 원인입니다.


피해자들은 건축관련 규제 정비로는 고의적 소음은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바닥 두께가 좀 더 두꺼워진대도 볼링공으로 바닥 찧는 충격을 흡수할 순 없을 겁니다.

문제는 고의적 소음을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히 없다는 것입니다. 관련 규정이 없다보니 과태료 부과나 형사처벌이 어렵습니다. 일반 민사 소송이나 형사 소송을 하려면 소음을 증명해야 하는데 이 증명도 쉽지 않습니다.

고의적 소음을 내는 사람들은 아랫집에서 소음 측정장비를 들여놓으면 소음을 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비싼 측정장비와 전문가를 데려다 놓아도 그날은 소음을 내지 않고 넘어가면 측정도 안됩니다. 윗집 사람이 횡포를 부릴 때까지 몇날 며칠을 기다리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피해자들은 무방비상태로 정신에 가해지는 폭력에 노출돼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스트레스는 나날이 심해지고, 평범했던 사람이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했습니다. 층간소음을 겪어본 적 없는 사람들은 이들을 신경과민 환자로 치부하기도 합니다. 행정기관과 사법기관의 냉담함은 이들에게 또 하나의 고통입니다.

국민의 약 71%가 공동주택에 살고 있습니다. 아파트 입주민의 88%가 층간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살인, 방화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층간소음의 가장 심각한 형태인 고의적 소음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입니다.

신현식
신현식 hsshin@mt.co.kr

조선 태종실록 4년 2월8일. 임금이 사냥하다가 말에서 떨어졌으나 상하지는 않았다. 좌우를 둘러보며 “사관(史官)이 알게 하지 말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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