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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된 계단… '문화'로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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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진엽 김성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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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6.22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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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계단의 재발견]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다

서울 지하철 7호선 건대입구역 3번출구.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으로 돼 있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는 출퇴근 시간 외에는 가동되지 않는다. 에너지절감 차원이다. 건대입구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쓰지도 않을 것을 왜 설치했지"라는 불만과 함께 어쩔 수 없이 계단으로 오르내린다.
 
건대입구역에서 한 정거장 이동하면 어린이대공원역이 있다. 이 역에서 어린이대공원으로 나가는 출구 쪽은 에스컬레이터 없이 계단만 있다. 역 안에서 이 계단을 바라보면 계단이 아닌 하나의 풍경이 보인다. 물이 흐르고 나무가 우거진 자연을 느낄 수 있다. 밝은 표정으로 계단을 바라보는 연인들, 신기해 하는 어린이들, 그리고 계단 앞에서 사진을 찍는 가족 등 어린이대공원역의 이 계단은 계단이 아니라 공원의 풍경을 연출한다.
 
계단과 에스컬레이터가 함께 있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이용할까. 상당수 사람은 에스컬레이터를 선택한다. 힘들고 귀찮기 때문이다. 계단을 이용하면 운동이 되고 건강에 좋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오르기가 귀찮고 힘들다는 것은 계단이용의 가장 큰 장애요인이다. 때문에 계단 이용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 출퇴근 외에는 가동되지 않는 에스컬레이터가 계단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7호선 건대입구역(왼쪽)과 공원풍경이 연출되는 어린이대공원역 계단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 출퇴근 외에는 가동되지 않는 에스컬레이터가 계단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7호선 건대입구역(왼쪽)과 공원풍경이 연출되는 어린이대공원역 계단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팔꿈치로 쿡 찌른다'는 뜻의 영어단어 '넛지'(Nudge). 최근 여러 분야에서 자주 언급되는 '넛지효과'는 '어떤 결과를 강제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은근하게 유도하는 행위'를 뜻한다. 반감을 줄이고 자연스러운 결과를 도출한다는 장점이 있다.
 
위의 두 지하철역에서 보면 건대입구역은 에너지절감을 위해 에스컬레이터 운행시간을 제한했다. 물론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계단을 이용하지만 반감이 크다. 반면 어린이대공원역은 에스컬레이터가 없음에도 한폭의 그림 같은 계단으로 인해 사람들은 큰 불만없이 오르내린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지하철역 오덴플랜. 이 역은 계단 이용을 장려하기 위해 1가지 조치를 취한다. 계단을 피아노건반 모양으로 바꾸고 밟으면 소리가 나도록 했다. 사람들은 신기해서, 또 재미 때문에 이 계단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계단을 바꾼 후 계단 이용률이 66%로 올라간 것으로 분석됐다.

↑ 세계적 관광명소가 된 바티칸박물관의 나선형 계단(왼쪽)과 스웨덴 오데플랜역의 피아노 계단
↑ 세계적 관광명소가 된 바티칸박물관의 나선형 계단(왼쪽)과 스웨덴 오데플랜역의 피아노 계단
어린이대공원역의 '풍경화계단'과 오덴플랜의 '피아노계단'은 넛지효과를 보여주는 대표사례다. 특히 '피아노계단'은 에스컬레이터 제한 등의 강제적 수단없이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계단으로 유도했다. 이 계단들이 사람들에게 준 인센티브는 '재미'다. 철학자들이 말하는 '재미이론'을 현실에 적용한 것이다.
 
이처럼 계단에 재미를 부여하면서 이용률 상승과 함께 또다른 부수효과를 거두게 됐다. '피아노계단'은 현재 관광명소가 돼서 이 계단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자연스럽게 관광수입도 늘어났다.
 
세계 각국에는 이처럼 관광명소, 문화재가 된 계단이 많다.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더피광장의 레드카펫계단,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언덕의 계단, 바티칸박물관의 나선형계단 등은 계단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품이 됐다. 현대 사회에서는 '디자인'이 도시 경쟁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지하철역, 공원 등 공공장소에 있는 계단을 바꾼다면 '친환경 명품도시'를 위한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다.

◇사람 몰리는 '도시의 얼굴'이 된 계단들

스웨덴 스톡홀름에 가면 오덴플랜이라는 지하철역이 있다. 이 역이 유명해진 것은 바로 독특한 계단 때문이다. 오덴플랜역 계단은 한층 한층 밟을 때마다 피아노 소리가 난다. 계단마다 소리가 나도록 센서를 부착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처음에 계단에서 소리가 나자 당황한 모습이었지만 이내 피아노 소리를 내는 계단을 밟는 재미에 너도나도 계단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두세 사람이 오르내리며 화음을 만들기도 하고 간단한 곡을 연주하려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독특한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스톡홀름의 피아노계단은 이제 세계적인 명물이 됐다.
 
↑ 프랑스 파리의 아베스역 계단을 따라 나선형으로 올라가면 마치 미술관을 관람하는 것처럼 온갖 명화들이 계단벽을 따라 이어져 있다.
↑ 프랑스 파리의 아베스역 계단을 따라 나선형으로 올라가면 마치 미술관을 관람하는 것처럼 온갖 명화들이 계단벽을 따라 이어져 있다.
프랑스에도 놓치면 아쉬운 지하철역 계단이 있다. 수도 파리시에 있는 아베스역 계단이 바로 그곳이다. 아베스역의 지상은 언덕이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지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대형 엘리베이터가 운행중이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를 타면 아베스역의 명물인 나선형계단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나선형계단을 따라 7개 큰 벽화가 이어져 있다. 미술관을 걷는 듯한 느낌이다.

이색적인 계단이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곳은 또 있다. 뉴욕의 중심지, 타임스퀘어 더피광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매표소가 눈에 들어온다. 당일 공연하는 뮤지컬이나 연극 표를 반값에 파는 단순한 매표소에 불과하다. 그러나 매표소 뒤편으로 가면 진풍경이 펼쳐진다. 레드카펫을 깔아놓은 것 같은 계단에 사람들이 모여앉아 이야기를 하거나 공연을 하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최고 공연을 즐기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을 위해 레드카펫에서 공연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려고 이렇게 만들었단다.
 
영화 '로마의 휴일'의 배경이 된 이탈리아 로마의 스페인광장 계단도 세계적 명소다. 이 계단은 항상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만남의 장소로 많이 이용되지만 로마의 필수 관광코스여서 항상 관광객이 북적거린다. 프랑스 파리 몽마르뜨언덕의 계단도 예술가들의 작품 전시장으로 유명하고 로마 바티칸박물관의 나선형계단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이런 이색적인 계단은 결코 사람들의 외면을 받지 않는다.

◇'계단은 광고판'…글로벌기업 홍보수단으로 떠올라

독일의 수도 베를린 중심부 알렉산더광장 지하철역에는 최근 놀이터에서나 볼 수 있는 미끄럼틀이 등장했다. 자동차회사 폭스바겐이 지하철역 계단 옆에 미끄럼틀을 설치해 이벤트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 광고판으로 이용되고 있는 계단. 왼쪽은 코카콜라 광고를 하고 있는 계단이고, 오른쪽은 폭스바겐이 베를린 중심부 알렉산더 광장역에 설치한 미끄럼틀 계단.
↑ 광고판으로 이용되고 있는 계단. 왼쪽은 코카콜라 광고를 하고 있는 계단이고, 오른쪽은 폭스바겐이 베를린 중심부 알렉산더 광장역에 설치한 미끄럼틀 계단.
환경보호, 건강 등의 이유로 계단이 주목받으면서 기업들도 지하철역 계단을 재밌게 꾸미는데 동참하고 있다. 주로 홍보수단이지만 단순히 광고물을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독특한 아이디어로 시민들에게는 재미를, 자신들은 광고효과를 얻고 있다. 주로 계단 위에 그림 등을 입히는 기법, 즉 래핑기법을 이용한 광고가 많지만 위의 사례처럼 특이한 경우도 있다. 알렉산더광장역의 미끄럼틀계단을 인터넷 동영상으로 본 해외 네티즌들은 "우리 동네에도 설치해달라" "재밌겠다" "좋은 아이디어다" 등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래핑기법을 이용한 계단광고를 보면 기발한 아이디어가 더 많다. 스웨덴의 한 지하철역에는 맥도날드와 코카콜라가 단순하면서도 눈길을 끄는 광고이벤트를 펼친다.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세로부분에 콜라와 햄버거마크를 붙여놓은 것. 얼핏보면 그냥 제품광고 같지만 자세히 보면 웃음을 자아낸다. 에스컬레이터에는 다이어트코크 마크를, 계단에는 일반 코크와 햄버거 마크를 붙여놨다.
 
↑ 미국 타임스퀘어 광장 매표소 뒷편에는 레드카펫을 연상시키는 계단이 설치돼 있다. 만남의 장소가 되고 있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누고, 공연을 한다.
↑ 미국 타임스퀘어 광장 매표소 뒷편에는 레드카펫을 연상시키는 계단이 설치돼 있다. 만남의 장소가 되고 있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누고, 공연을 한다.
칼로리가 높은 일반 코크를 마시는 사람은 비만 방지를 위해 계단을, 다이어트코크를 먹는 사람은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라는 메시지를 표현한 것이다. 그냥 웃고 지나칠 법한 이 광고 하나에도 사람들의 계단 이용률은 상승했다.  한 남자의 등판을 그려 시민들의 호기심과 밟아보고 싶은 심리를 자극한 계단도 있다. 말레이시아의 한 마사지업체는 주요 도시 계단에 마사지를 받는 자세로 엎드린 남성의 사진을 붙여놓았다. 무의식 중에도 사람들은 사진이 있는 계단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이밖에 계단을 옷장 서랍장으로 표현한 가구업체, 계단에 주차선을 그려넣어 자사의 자동차는 계단에 주차해도 끄덕없다는 것을 광고한 자동차회사, 계단에 위험하게 달리는 자동차를 그려넣은 자동차 보험회사 등도 있다.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이용하는 계단. 세계 여러 기업은 이 계단을 활용해 광고를 하면서 지나다니는 시민들에게 즐거운 볼거리를 제공해 계단 이용률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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