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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전수전 10년'서른에 공기업 고졸합격,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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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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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5.14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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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혁신경제] 한국전기안전공사 정해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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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수씨는 "돌고 돌아 전기안전공사에 들어왔지만 대학 졸업한 입사 동기들과 나이도 대우도 똑같다. 나같은 사람도 있으니, 고졸 취업준비생들이 '안되는 건 없다'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구혜정 기자
"매일매일 죽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수면제를 먹은 적도 있고요. 절망적이었고, 막막했습니다. 한번 떨어진 시험에 또 떨어질까 너무 두렵고 절박했죠. 이게 안 되면 앞으로 어떻게 사나, 그랬었죠. 근데 또 떨어지더라고요."

한국전기안전공사의 고졸사원 정해수씨. 올해로 만 서른이지만, 사회에 발을 내딛은 지는 1년도 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때부터 방황했던 기간은 10년. 재수 끝에 들어간 대학을 그만두고 나와 9급 공무원 시험에 매달렸지만 실패를 맛봤다. 대기업 중소기업 가리지 않고 입사 원서를 넣었지만 또 실패. 좌절의 끝에서 그를 구한 건 공기업 고졸채용이었다.

"먼 길을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고졸의 벽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무서운 줄 몰랐다"

정씨는 고교시절 공부를 곧잘했다. 서울 광문고 1학년 때는 반에서 5등 안에 들 정도로 상위권을 유지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전학 간 강원도 춘천고등학교에서는 전교 1등도 몇 차례 했다. 재수를 해서 성균관대 전자전기학과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인생은 평탄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문제는 대학 수업이었다. 기대했던 공부와는 너무 달랐고, 좀처럼 적응을 하지 못했다. "왜 내가 이럴까 고민했죠. 과 선택도 제가 했는데, 생각했던 공부와 전혀 달랐어요. 이론 수업에서는 외계어들이 막 나오더라고요. 군에 갔다 와도 변한 게 없고 학점은 곤두박질 쳤습니다. 과에서도 아웃사이더처럼 살았어요."

뜯어말리는 부모님과 지도교수를 뒤로하고 대학을 그만뒀다. "왜 안 맞는 공부를 해야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등록금도 만만치 않았죠. 그땐 '공부를 제대로 하면 뭐든 되겠지'라는 허황된 자신감이 있었어요. 세상 무서운 줄도 모르고. 그런데 나와보니까 만만치 않더라고요.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니까 절박해지고, 나이 서른이 됐죠."

◇높았던 학력의 벽..중소기업 50군데서 다 떨어져

정씨는 스물여덟 때부터 서울 동작구 대방역 근처 국가 공무원 학원에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PC방, 음식점 홀서빙, 피자가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을 이어나갔다. "대학을 그만두고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뭐라도 행동으로 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게 공무원 준비였습니다. 공부했는데 안되더라고요. 나이는 먹어가는데…."

2년 연속 낙방하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중소기업에도 원서를 넣기 시작했지만 고졸인 그에게 취업의 문은 너무 좁았다. "정말 어디든 들어가야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절박한 심정으로 여기저기 두드렸어요. 어림잡아 50군데는 됐던 것 같아요. 그런데 고졸이라서 그랬는지, 서류에서 줄기차게 떨어지더라고요."

인터넷 취업카페만 쳐다보는 생활이 계속됐다. "백수의 생활은 정말 무료해요. 하루가 정말 무료하고 시간이 정말 안가요. 알바를 해도 그래요. 마음은 계속 억눌려있어요. 눈치만 늘어서 눈치 괴물이 되고요. 집도 편하지가 않아요. 나가고는 싶은데, 친구들은 일하고 있으니 혼자 갈 데도 없었죠. 돈도 없었고요."

ⓒ사진=구혜정 기자
ⓒ사진=구혜정 기자
◇전기안전공사가 열어준 취업의 문
공사의 취업 정보도 인터넷 카페에서 알게 됐다. 정씨가 원서를 넣을 당시에는 스스로 몰랐지만, 공사에는 고졸채용 쿼터가 있었다. 실제 정부는 지난해부터 공기업이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전체 채용 인원의 20%를 고졸 출신으로 선발하도록 적극적으로 권고하고 있다.

"면접에 가본 게 처음이었습니다. 어리둥절했죠. 그래서인지 별로 안 떨리더라고요. 마침 프레젠테이션 면접에서는 사전에 공사 홈페이지를 보고 준비한 문제가 나왔습니다."

그는 지난해 전기안전공사의 고졸 채용 부문에서 20대 1 경쟁률을 뚫고 인턴이 되는 데 성공했다. 정식 사원이 된 것은 7개월 후인 지난해 11월이다.

"붙었다는데 '이게 뭐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진짜 된 건가. 사기 아닌가. 내가 됐을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뭐가 잘못됐나보다.' 맨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가족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니 실감이 나더라고요. '아 이제 난 됐구나. 드디어 발붙일 땅이 생겼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정씨는 현재 전기안전공사의 사업관리부에 소속돼 고객만족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 전국 사업소 직원의 고객만족 매뉴얼을 제작하고, 고객만족도조사를 체크하는 일이다. 민원업무도 같이 처리한다. 3개월 전에는 사회공헌부에서 대졸 동기들과 똑같은 일을 했다.

"이젠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동기들은 다 똑같고, 누가 서울대를 나왔든 무엇을 했든 고졸인 저도 나름의 실력으로 같은 자리에 있다는 생각이요."

정씨는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전기안전공사에 자리를 잡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대학을 나온 동기들과 나이대가 비슷하다. 실제로 동기 중에는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동갑내기 사원이 있다. "같이 술 한잔하면 그 친구가 저한테 그래요. 본인은 정해진 틀을 따라 똑바로 왔는데, 너는 멀리 돌아오지 않았느냐. 그런데 신기하게도 여기서 이렇게 만났다고요."

정씨는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고, 거기에 빠지면 그 사람은 정말 거기서 끝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고졸을 정말 자기가 선택했다면, 선택해서 힘든 것이라면 이겨내야 한다. 고졸 채용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확대되는 건 다행인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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