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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고택이 박물관? 현존 100년 장수명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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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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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7.27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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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주택을 찾아서]<1>경북 영주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 '무송헌종택'

[편집자주] 국토해양부가 2015년부터 100년 주택인 '장수명 아파트' 인증제 도입에 나선다. 유럽에선 100년 주택 찾기가 어렵지 않지만 고속성장을 하며 재개발·재건축을 해온 국내에서는 100년 넘은 집을 찾기가 쉽지 않다. 주택이 100년 이상을 버텨내려면 유지·관리비도 만만치 않다. 100년을 버텨온 주택을 찾아 역사와 유지·관리 노하우, 어려움 등을 알아본다.
무섬마을 전경 / 사진 = 김유경 기자
무섬마을 전경 / 사진 = 김유경 기자
 "이 동네 고택 중에서는 가장 늦게 지어진 한옥입니다. 저도 주민들 중에 막내고요.(웃음) 종손이어서 어렸을 때부터 이 마을에 놀러오긴 했지만 터를 잡은 것은 5년전 입니다. 대구 아파트에서 살다가 종친이 이 고택을 기증해주셔서 낙향했죠."

 경북 영주시 무섬마을의 무송헌종택(1923년) 앞마당에서 만난 19대 종손 김광호 씨(67세)의 이야기다. 개량한복을 입고 앞마당 잔디를 손질하던 김 씨는 일손을 멈추고 선뜻 고택 안으로 청하며 이같이 말했다.

무섬마을 무송헌종택(1923년) / 사진 = 김유경 기자
무섬마을 무송헌종택(1923년) / 사진 = 김유경 기자
무송헌종택 19대 종손 김광호 씨 / 사진 = 김유경 기자
무송헌종택 19대 종손 김광호 씨 / 사진 = 김유경 기자
 대청마루에 앉으니 열어놓은 뒤 창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여간 시원한 게 아니다.

 "시원하죠? 겨울에는 외풍이 있어 좀 춥지만 여름에는 정말 시원합니다. 또 물이 마을의 삼면을 둘러 흐르고 있어 정말 아름다운 마을이죠."

 무섬마을은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마을을 휘감고 있어 안동 하회마을을 연상케 한다. 언뜻 보기에 민속촌처럼 꾸며놓은 마을 같지만 실제 집주인들이 살고 있는 전통마을이다. 현대식 건물도 눈에 띄지만 100년 이상된 기와집과 초가집들이 더 많고 신기할 정도로 잘 보존돼 있다.


 김광호 씨가 살고 있는 선성김씨 무송헌 김담(1416~1464)의 종택은 1923년에 지어져 90년 된 최연소 고택이다. 5년전 이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김 씨는 아내를 위해 부엌과 욕실 등을 현대식으로 개조했다고 밝혔다. 수리비용은 1억5000만원 정도 들었다. 다행히 이렇게 한번 크게 손을 보면 40~50년은 유지된다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그래도 살림을 해야 하는 주부에게는 여전히 불편한 점이 많다. 특히 난방이 문제다. 방마다 개별난방을 해야 하는 구조 때문에 손도 많이 가고, 난방비용도 만만치 않다. 김 씨는 욕실과 주방만 기름보일러를 설치하고 나머지 방은 저렴한 연탄을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섬마을은 해방 전만해도 100여가구가 넘는 큰 마을이었다. 그런데 80여년 전쯤 큰 홍수(갑술년 수해)가 나서 절반이 멸실되고, 지금 남은 주민은 26가구, 40명 정도라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100년 전후의 고택은 기와집 16채, 초가집 18채 등 34채인데 이중 실제 살고 있는 집은 만죽재, 김위진 가옥 등 기와집 9채와 초가집 6채 등 15채다. 빈집이 19채인 셈이다.


무섬마을 초가집 전경 / 사진 = 김유경 기자
무섬마을 초가집 전경 / 사진 = 김유경 기자
 김 씨는 "정성을 들여 몇 년에 걸쳐 지은 옛날 한옥이 오래 가는 편이지만 집은 한옥이든 양옥이든 사람이 살지 않으면 오래 못간다"며 빈집이 늘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고택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령층으로 소득이 없는 경우가 많다"면서 "고택 거주민들에게는 정부의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지방문화재로 선정된 고택은 만죽재와 해우당 등을 포함해 9채 뿐이며, 주민들의 평균 나이는 70세를 넘는다.

 이 마을 최고령 고택은 1666년(현종 7년)에 지어진 347년 된 만죽재다. 반남 박씨가 강 건너 머럼마을에서 처음 이곳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집이다. 지금도 후손이 살고 있다.

무섬마을 만죽재 / 사진 = 김유경 기자
무섬마을 만죽재 / 사진 = 김유경 기자
무섬마을 해우당 / 사진 = 김유경 기자
무섬마을 해우당 / 사진 = 김유경 기자
 박씨의 증손녀 사위인 선성(예안) 김씨가 이곳에 정착한 것은 조선 영조때다. 해우당은 선성 김씨가 1836년에 건립했고 고종 때 의금부도사를 지낸 해우당 김낙풍(1825~1900)이 1879년에 중수했다. 이 고택의 현판 글씨가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라 유명하다.

 이후 무섬마을은 지금까지 반남박씨와 선성김씨 두 집안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 됐으며, 만죽재, 해우당 등의 고택들은 인근 관광지인 선비촌에도 재현돼 있다.

 이 마을은 물섬마을이라 불리다가 'ㄹ'이 빠지고 무섬마을이 됐다.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마을 삼면을 감싸고 흐르며, 내성천에는 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백사장이 있는 곳에는 내성천을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가 있는데 이 마을의 명물이다.
외나무다리가 있는 무섬마을 내성천 전경 / 사진 = 김유경 기자
외나무다리가 있는 무섬마을 내성천 전경 / 사진 = 김유경 기자


◇무섬마을의 전통가옥은 'ㅁ'자형

 무섬마을의 전통 기와가옥은 'ㅁ'자형으로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전형적인 양반집 구조를 띤다. 대문을 들어서면 안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 등이 사방을 둘러싸듯 배치돼 있어 대문 밖에서는 집안의 생활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사랑채와 안채로 드나드는 문이 따로 있고 안채를 사랑채보다 높게 지어 햇볕이 잘 들고 통풍이 잘 되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안채와 달리 사랑채는 밖에서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무섬마을 전통가옥들은 그 집 주인의 신분을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사랑채의 기둥을 차별화했는데, 같은 양반이라도 벼슬한 사람이 거처하는 집의 사랑채에는 원기둥을, 벼슬을 못한 사람은 각진 기둥을 세웠다.

 집주인 신분에 따라 사랑채 모양을 달리한 무섬마을의 고가(古家)는 대부분 서남향이다. 북동쪽에서 서남쪽으로 흐르는 산맥의 정기를 고스란히 이어받기 위해 가옥을 배치했기 때문이다.

◇무섬마을의 유래와 전설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里)의 우리말 이름이다.

 소백산에서 발원한 서천(西川)과 태백산에서 발원한 내성천(乃城川)이 마을 뒤편에서 만나 350° 정도로 마을을 휘돌아나가는데, 그 모습이 마치 물 위에 떠있는 섬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 섬계 지역의 지형과 비슷하다고 하여 '섬계마을'이라고도 부른다.


◇무섬마을의 명물 외나무다리

 무섬마을에 총길이 180m, 폭 5.5m의 현대식 콘크리트 다리인 '수도교'가 놓인 것은 1983년이다. 수도교가 건설되기 전까지만 해도 외나무다리는 바깥으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책보를 메고 학교 가는 아이, 장가가는 새신랑, 꽃가마 타고 시집오는 새색시, 황천길로 가는 상여도 어김없이 이 외나무다리를 건너야했다.

 이렇게 외나무다리는 지난 350여 년간 무섬마을을 이어준 유일한 통로로 애환 어린 추억의 역사를 지녔다. 때문에 무섬마을은 매년 10월 9일~10일 양일간 외나무다리에서 축제를 펼친다.

 정부의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무섬외나무리다리 축제에는 마을대항 씨름대회와 농악한마당, 사또행차, 과객 맞이하기, 참석자 전원 다리 건너기 체험 등이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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