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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된 제주 성읍마을, 주민 사는 곳은 단 한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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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도=김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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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2.1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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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주택을 찾아서]<8>제주도 성읍민속마을 '고상은가옥'

[편집자주] 국토교통부가 2015년부터 100년 주택인 '장수명 아파트' 인증제 도입에 나선다. 유럽에선 100년 주택 찾기가 어렵지 않지만 고속성장을 하며 재개발·재건축을 해온 국내에서는 100년 넘은 집을 찾기가 쉽지 않다. 주택이 100년 이상을 버텨내려면 유지·관리비도 만만치 않다. 100년을 버텨온 주택을 찾아 역사와 유지·관리 노하우, 어려움 등을 알아본다.

- 성읍마을 전통가옥 5채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
- 국가 관리받는 일부 가옥 외부인 잘못 복원 지적
= 고상은가옥만 주민 거주 살림집으로 내부 바뀌어


남문에서 내려다본 제주성읍마을 / 사진=김유경기자
남문에서 내려다본 제주성읍마을 / 사진=김유경기자
돌, 바람, 여자가 많아 '삼다도'로 불리는 제주도. 이중에서도 돌이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이유는 눈에 가장 많이 띄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산과 바닷가, 논밭 등 제주도는 구멍이 숭숭 뚫린 검은 현무암 천지다.

제주도가 화산섬이니 용암이 굳어진 현무암이 많은 것은 너무 당연한 결과다.

최근 혁신도시 등 개발지역에서 쏟아져나오는 현무암은 주로 조경을 위한 재료로 쓰이지만 옛날 민가에선 통상 벽과 담의 주재료로 쓰였다. 제주도의 전통가옥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은 역시 성읍민속마을이다.

해안마을 표선리에서 8㎞쯤 올라간 곳에 자리잡은 성읍민속마을에는 △고상은가옥(건립연도 1879년) △한봉일가옥(19세기 중엽) △이영숙가옥(19세기말) △고평오가옥(1829년) △조일훈가옥(1901년) 5채의 초가가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모두 100년 넘은 집들이다.

제주성읍마을 고상은가옥(정가운데) / 사진=김유경기자
제주성읍마을 고상은가옥(정가운데) / 사진=김유경기자
이 가운데 현재 주민이 실제로 거주하는 집은 고상은가옥이 유일하다. 물론 이 마을에는 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다. 100년 이상된 가옥에서 주민이 살고 있는 경우로는 유일하다는 것. 성읍1리사무소에 따르면 이 마을에는 남성 711명, 여성 656명 등 총 1367명이 거주한다. 557가구로 1가구당 2.5명꼴이다.

고상은가옥은 성읍마을 남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문화관광 해설사의 집' 바로 뒤에 있다. 멀리서 보기에도 섀시창틀에 유리문 설치 등 주택 일부가 변형돼 있었다.

이 마을 '무형문화재전수관'의 관계자는 "초가의 경우 나무 등이 쉽게 썩어 옛날 그대로 보존하기 어렵다"며 "특히 고상은가옥은 현재 주민이 살고 있는 집이어서 문화재라도 내부를 거주하기 편하게 고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상은가옥에 들어서자 반겨준 것은 누렁이였다. 처음 보는 타지 사람인데도 짖지 않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줬다.

제주성읍마을 초가의 대문(정낭)/ 사진=김유경기자
제주성읍마을 초가의 대문(정낭)/ 사진=김유경기자
이 가옥에는 제주도 옛날 대문의 기둥인 정주먹이 없었다. 제주도는 정주먹을 2개 떨어지게 세워놓고 구멍을 3개 뚫어 굵은 나뭇가지를 걸쳐놓는 대문(정낭)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고상은가옥은 원래 대장간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애초 정낭이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송신자 문화해설사는 "대장간은 영업집이어서 정낭을 설치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대장간이라도 소나 말 등의 가축을 키웠다면 설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도에서 정낭을 설치한 근본 취지는 가축의 출입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게 송 해설사의 설명이다. 그는 "제주도에선 하루에 한 번 가축에게 물을 먹이고 운동을 시키기 위해 풀어놓는데 이때 가축들이 날뛰며 다른 집으로 들어가기도 해서 집을 나설 때 다른 집 가축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나무를 3개 걸쳐놨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주먹은 돌로 된 것만 남아 있어 돌로 세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무로도 만들었다고 송 해설사는 덧붙였다. 고상은가옥에 현재 정주먹이 남아있지 않은 이유가 쉽게 썩는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제주성읍마을 고상은가옥 / 사진=김유경기자
제주성읍마을 고상은가옥 / 사진=김유경기자
 고상은가옥은 돌로 쌓아 견고해 보이는 벽과 담을 제외하면 대부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형됐다. 이 가옥은 고상은씨의 증조부가 고종 16년(1879년)에 건립했으며 원래 대장간으로 쓰였다.

'一'자형 우진각지붕의 초가로 안채(안거리)와 헛간채(목거리)가 'ㄱ'자 모양으로 배치됐으며 올래(좁은 골목으로, 집안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와 우영(텃밭) 등의 외부공간은 거의 두지 않았다. 안채는 작은 방이 있는 3칸이고 헛간채에는 부엌(정지간)이 있는데 이는 20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이다.

송 해설사는 "제주도 집의 특징은 별동으로 배치돼 'ㄱ'자형 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며 "바람 때문에 사이사이 바람구멍인 공간을 뒀다"고 말했다. 따라서 'ㄱ'자형으로 이어진 고상은가옥은 불법으로 근현대에 변형된 형태라고 지적했다.

제주성읍마을 고상은가옥 입구 / 사진=김유경기자
제주성읍마을 고상은가옥 입구 / 사진=김유경기자
오른쪽 칸 방문을 열고 방문객을 맞아준 고상은씨(76)는 한눈에 보기에도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는 "지금 몸이 불편하다"며 "아내와 아들도 외출 중이어서 이야기해줄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고씨는 "몸이 괜찮았을 땐 콩이나 곡식 등 밭농사가 생업이었다"며 "지금은 몸이 불편해서 아무것도 못한다"고 했다. 평생을 살아온 집에 대한 추억도 없다고 했다. 보다 편한 집으로 이사할 수 있다면 하고 싶다는 속내도 내비쳤다. 그는 "이사를 하고 싶은 생각은 있었지만 (생각은) 하나마나다"라고 힘없이 말했다.

이 마을에서 개인 소유의 집은 자유롭게 매매할 수 있다. 다만 거래가 거의 없기 때문에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고상은가옥은 예외다. 고상은씨가 집을 팔기 원한다면 매입 1순위는 국가다.

제주성읍마을 고평오가옥 / 사진=김유경기자
제주성읍마을 고평오가옥 / 사진=김유경기자
근처 고평오가옥이 1979년 1월 문화재로 지정된 후 고평오씨가 정부에 매각, 현재 문화재청이 관리하는 것이 한 사례다. 건축물대장을 보면 1981년 1월 제주특별자치도(옛 남제주군)로 소유권이 이전됐다.

고평오씨의 증조부가 1829년(순조 29년)에 건립한 초가로 안채(안거리)와 바깥채(밖거리) 헛간채(목거리) 대문간을 갖춘 집인데, 바깥채는 관원들이 하숙하던 곳이다.

서쪽 헛간채는 70년대 중반에 헐렸고 안채와 바깥채는 보수됐다. 문제는 육지사람이 자료를 보면서 복원한 거라 제주도 전통가옥의 특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송 해설사는 "제주도의 기단(집터를 반듯하게 다듬은 후 터보다 한 층 높게 쌓은 단)은 높지 않은데 고평오가옥의 안채 기단은 높게 복원해놨다"며 "제주도는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이라 집을 지을 때 바람에 견디게 짓는 것이 관건인데 육지사람이 이를 몰라 잘못 복원했다"고 지적했다.

제주도 전통초가의 특징은 지붕에서도 나타난다. 우선 이엉이기에 쓰는 재료가 볏집이 아니다. 제주도는 화산터라 논농사가 안돼 볏집이 없다. 특히 고온다습한 제주에서는 볏집이 빨리 썩기 때문에 지붕재료로도 맞지 않다.

제주 초가는 한라산 기슭 초원지대에서 자라는 억새의 일종인 새(띠)라는 식물로 지붕을 만들고 지붕이 날리지 않게 그물 모양으로 엮어놓는다.

내부의 특징은 난방과 취사를 겸하는 육지와 달리 제주도 민가는 난방과 부엌이 분리된다는 것이다. 소똥이나 말똥을 말린 것으로 난방을 하고 부엌에서는 취사만 한다고 송 해설사는 설명했다.

고상은가옥은 객사에서 남문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도로에 위치한다. 이 가옥의 이웃인 객사 남쪽 네거리에는 '노더리방죽'이란 못이 있고, 이 가옥 바로 남쪽 맞은편에는 관료들이 이용했다는 '남문통'(관청못·원님물)이라는 우물이 있다.

제주도 어느 마을에서든 대장간이 마을 중심부에 자리잡았던 사실과 이 가옥의 위치가 상통하는 부분이다.

제주성읍마을 노더리방죽 / 사진=김유경기자
제주성읍마을 노더리방죽 / 사진=김유경기자

제주성읍마을 원님물 / 사진=김유경기자
제주성읍마을 원님물 / 사진=김유경기자

노더리방죽은 예전에 창포를 심어 여자들이 머리를 감을 때 사용한 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노더리방죽 맞은편에서 가게를 하는 주민은 "어렸을 적에는 방죽에서 목욕도 하고 머리도 감았다"며 "이곳에서는 한때 중요한 물이었다"고 말했다.

'원님물'은 빗물이 스며들어 천천히 솟아난 우물로 위급한 상황이 발생해 성 밖에 있는 물을 쓰지 못할 때를 대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평소에는 사또만 마실 수 있다고 해서 '원님물'로 불린다. 1996년 복원됐으며 지금은 식수로 사용할 수 없다.
제주성읍마을 남문 / 사진=김유경기자
제주성읍마을 남문 / 사진=김유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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