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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인문대생 한계 넘어 '日 최고 IT기업' 입사한 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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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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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4.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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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은 내가 만든다, 진로개척자] ⑧ 김영빈 日스타트업 풀러 디자이너

[편집자주]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에 들어가고, 죽어라 스펙을 쌓고, 대기업에 취업을 해야 성공이라고 부른다. 이른바 '코리안 웨이'다. 하지마 이를 과감히 거부하고 오로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좇아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써나가는 남다른 성공 방정식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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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조선대학교 일본학과에 입학한 김영빈씨(31)는 취업 고민을 하지 않았다. 성실히 학점을 관리했고 군 제대 후 경쟁이 치열한 교직과목까지 이수하면서 남은 대학생활만 잘 마무리하면 교사의 꿈은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었다.

평범했던 김씨의 삶은 일본 어학연수를 떠나면서 흔들렸다. 같은 반 연수생들이 전공자인 자신보다 일어를 더 잘한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엔지니어, 미용, 경영 등 다양한 전공을 가진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일본어를 공부하는지 궁금했고, 그들과 대화하면서 가슴속에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진짜 내 삶을 찾고 싶다.’

이대로 평범하고 안정적인 교사의 길을 갈 것인가, 가슴 떨리는 '내 일'을 찾아 도전할 것인가. 우연찮게 디자인 전공자들을 자주 만나게 되면서 스페셜리스트로서 디자이너의 세계를 동경하게 됐다. 그즈음 컴퓨터공학 전공을 디자인으로 바꿔 일본 타마미술대학(Tama Art University) 대학원에 진학한 지인으로부터 인생의 전환점이 될 정보를 얻게 된다.

“디자인계에 새롭게 뜨고 있는 분야가 있으니 한번 도전해보라고 했어요. ‘디자인 경영’이라는 단어를 수첩에 적으며 얼마나 가슴 떨렸는지 모릅니다. 진짜 원하는 삶을 찾고 싶었지만 뭔지 몰라 답답했는데 가슴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어요.”

◇일본학과 재학중 미술대학 복수전공…레드닷어워드 수상 쾌거

모교인 조선대 미술대학에 디자인매니지먼트 과정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1년 계획했던 어학연수를 9개월 만에 접고 귀국했다. 미대 복수전공을 하기 위해서는 실기시험과 면접을 거쳐야 했다. 스케치 한 번 해 본 적이 없고 포토샵도 모르는 인문대생의 겁없는 도전에 담당 교수는 "금세 포기할 일을 왜 하느냐, 들어와도 F학점 줄 것"이라며 매섭게 다그쳤다.

복수전공 허용 여부를 놓고 당시 미대에서는 교수 전체회의가 열렸고 난상토론 끝에 김씨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인문대생으로서 미대에 온 최초 사례가 됐다. 운이 따라준 것일까. 디자인 공부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세계 3대 국제 디자인공모전인 ‘레드닷 어워드’를 수상하는 쾌거까지 이뤄냈다.

지방 인문대생 한계 넘어 '日 최고 IT기업' 입사한 이 남자

졸업 후 진로를 놓고 김씨는 지도교수였던 이진렬 교수에게 일본에서 디자인 경영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이 교수는 지바대 객원교수로 재직중이던 홍정표 전북대 교수(예술대 산업디자인학과)에게 도움을 요청해 면접기회를 갖게 해줬다.

당시 지바대 디자인매니지먼트 연구실은 삼성디자인멤버십, 카이스트, 서울대, 홍익대 출신들로 꽉 차 있었다. 지방대 출신에 그것도 디자인을 복수 전공한 인문대생에게는 말 그대로 ‘넘사벽’이었다. 면접을 봤지만 단칼에 불합격.

그러나 ‘플랜B’로 포트폴리오를 준비해둔 김씨에게 기적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이 교수의 제안으로 지바대 공과대학 디자인학부 학장 와타나베 교수가 세미나를 위해 조선대를 방문했고, 김씨는 그날 저녁 와타나베교수를 직접 만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고 연구생 자격을 허락받은 것이다.

하지만 미대 복수전공 합격, 레드닷어워드 수상, 그리고 지바대 연구생까지 연거푸 찾아온 3번의 행운에 기뻐했던 김씨에게 상상조차하기 힘든 불운이 찾아온다. 2011년 4월 지바대 입학을 위해 3월 17일 비행기를 예약해두고 친구들과 송별회중 TV를 통해 거대한 쓰나미가 일본땅을 덮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바로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기회는 위기 속에 있는 법. 가족 친구 모두가 일본행을 반대했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출발일을 일주일 미뤄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사실 김씨의 행운은 그저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치밀하게 준비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한 끝에 이뤄낸 성과였다. 연구생으로는 드물게 석사과정까지 합격했고 대학원 2년 동안 장학금까지 받았다.

일본 스타트업 풀러 입사를 권유한 창업자들과 함께./사진제공=김영빈
일본 스타트업 풀러 입사를 권유한 창업자들과 함께./사진제공=김영빈

◇일본 IT기업 취업 후 스타트업에서 새출발…"이곳에서 내 꿈을 이뤄보자"

졸업 후 국내 대기업 취업을 생각하던 김씨는 또 한번 진로의 갈림길에 놓인다. ‘일본에서 공부하고 배웠으니 일본에서 제대로 뜻을 펼쳐보는 것이 어떠냐’는 지인의 권유 때문이었다.

이왕이면 상승세를 타는 산업군에서 일해보고 싶었던 김씨는 일본 IT기업 중 빠르게 성장중인 ‘사이버에이전트’ 입사를 목표로 삼았다. 3번의 면접을 본 후 2013년말 입사, 1년 7개월간 핵심부서인 광고사업본부에서 디지털 마케팅, 네이티브광고 등 그야말로 가장 ‘핫한’ 업무를 담당했다.

나이키, 트위터, 캐논,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과 일하며 글로벌 감각을 키울 수 있었고,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로 인한 한계도 실감했다. 언젠가는 자신의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고민하던 중 지바대 연구생 동기로부터 자신이 코파운더로 있는 스타트업 풀러(FULLER)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게 됐다.

‘승부수’를 던져야 할 순간이 또 한 번 찾아온 것이다. 내 사업을 하겠다는 장기적인 목표는 있었지만 일본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건 선택지에 없었던 일이다. 5000만원이 넘었던 연봉이 반토막 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 회사에 가서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어요. CEO가 내 꿈을 풀러에서 이뤄보라고 했을 때 이미 제 마음은 기울었었던 것 같아요.”

연봉협상도 않고 계약서도 쓰지 않은 상태로 풀러의 17번째 멤버로 입사했다. 16명 멤버들 전원과 미팅을 진행하면서 이전까지 자신이 손해보고 입사했다는 생각이 받아줘서 감사한 쪽으로 바뀌었다. 멤버들 각각의 이력이 화려했고 자신의 일에 대한 오너십이 엿보였다. 소니에서 연봉 1억을 받다 이직한 26세의 직원도 있었다.

“본인이 한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된다면 어려운 취업난 속에서도 거꾸로 취업 제안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한국 안에서의 경쟁에 매몰되지 말고 세계로 눈을 돌리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실력을 쌓을 수 있는 환경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현재의 상황을 깨기 위해서는 스스로 깨어있어야 하고,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시부야 풀러 CEO(가운데)와 멤버들. 시부야는 2016년 美포브스 선정 '아시아에서 영향력있는 30인'에 오르기도 했다./사진제공=김영빈
시부야 풀러 CEO(가운데)와 멤버들. 시부야는 2016년 美포브스 선정 '아시아에서 영향력있는 30인'에 오르기도 했다./사진제공=김영빈



  • 김은혜

    취업, 채용부터 청년문제 전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특히 남들이 가지 않은 대안진로를 개척한 이들과 인지도는 낮지만 일하기 좋은 알짜 중견기업을 널리 알리고자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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