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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의 엄마와 딸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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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초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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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0.1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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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과학문학공모전 중단편소설] 대상 '관내분실' <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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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임종철 디자이너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는 흔히 애증이 얽힌 사이로 표현된다. 예컨대 딸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투사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벗어나고 싶어 하며 엄마의 삶을 재현하고 싶지 않은 딸.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앓는 딸과 딸에 대한 애정을 그릇된 방향으로 표현하는 엄마. 여성으로 사는 삶을 공유하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다른 세대를 살아야 하는 모녀 사이에는 다른 관계에는 없는 묘한 감정이 있다. 대개는 그렇다. 한때는, 지민도 엄마와 자신의 관계가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그랬던 시기는 일찍 끝나버렸다. 그게 언제부터였는지 지민은 정확히 짚어낼 수 없다.

언젠가 엄마가 어린 시절 양극성 장애를 앓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그런 병력을 알면서도 엄마와 결혼한 건, 그녀의 정신질환이 단지 어렸을 때의 일시적인 문제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병은 지민을 출산한 이후에 재발했다. 많은 산모들이 출산 직후에 산후우울증을 겪는다고 한다. 대개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혹은 간단한 처방과 상담을 통해 해결된다. 그러나 엄마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완전히 돌이킬 수 없게 된 건 어느 시점부터였을까. 엄마의 병이 점차 심각해진 이후였을까. 어쩌면 그전부터 삐걱거렸던 것 같기도 하다. 지민은 엄마의 집착이 싫었고, 자신을 소유물처럼 통제하는 것이 지긋지긋했다.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모른다. 엄마의 병과 가족들과의 관계, 무엇이 선행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은하와 지민은 어느 날부터 서로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지민과 엄마는 처음부터 보통의 엄마와 딸일 수는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민을 낳지 않았다면 엄마는 자신의 삶을 멀쩡하게 살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죄책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민은 그런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되었다는 생각이 상충했다.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사이가 좋았다고는 못하지. 누나 잘못은 없었지만.”
유민은 중얼거리듯이 내뱉고 다시 시선을 단말기 위로 처박았다. 부인할 생각은 없었다. 지민은 컵에 꽂혀 있던 빨대의 끝을 손톱으로 구겼다.

“그래도 그냥… 이미 죽은 사람인데.”
구겨진 빨대에 접힌 흔적이 남았다.

“더 원망해서 나올 것도 없잖아.”
“누나는 그래? 난 지금도 엄마가 누나 다음에 날 왜 낳았는지 궁금한데.”
유민이 말했다.

“누나를 낳고 나서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았잖아. 딸 하나 책임지지도 못하고 인생이 망가졌으면. 아, 나는 애를 키워서는 안 될 사람인가보다. 그러고 딱 마음 접어야 하는 거 아니야? 하나 더 낳으면 뭐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으려나.”
유민은 빈정거렸다.

“마인드에게 물어보면 말해주려나? 만약 그게 진짜 엄마라면, 입 다물고 한 마디도 안 하겠지. 누나가 왜 뜬금없이 엄마를 찾는지 모르겠어. 분실된 게 중요한가? 없으면 없는 거지 뭐.”
짧게 표정이 변했던 유민은, 다시 태연한 얼굴로 돌아왔다.

“일단 내가 한 짓은 아니야. 마인드고 뭐고 만날 생각도 없고 관심도 없었어. 아빠한테 연락해봐. 근데 그 사람… 연락받긴 해?”
지민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그렇지. 유민이 픽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패드로 시선을 향했다.

말이 없는 유민 앞에서, 지민은 얼음이 다 녹아 묽어진 홍차를 마셨다. 그러면서 지민은 살아있던 때의 엄마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녀를 생각하는 것도 거의 삼 년 만이었다. 유민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엄마를 좋게 추억할 만한 기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대개의 기억은 방에서 혼자 울고 있거나 멍하니 상념에 잠겨 있던 엄마의 뒷모습에 관한 것이다.

어떤 기억만은 유독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 날 문을 열었을 때, 지민의 시선은 넘어진 식탁 보조 테이블 옆을 향했다. 전등이 침대 위로 쓰러져 있었고, 알약들이 흩어져 있었다. 엄마가 또 집에서 환각을 본 걸까. 누군가가 자기를 공격한다고 믿은 걸까. 조울증은 점점 악화되어서 새로운 증상들을 보이고 있었다. 엄마의 시선이 교복을 입은 지민을 향했다. 엄마가 비명을 질렀다.

“송지민. 너도 이제 너네 아빠처럼 밖으로 나도는 거니?”

또 시작이다.

지민은 친구들과 놀다가 열 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들어왔을 뿐이다. 하지만 그걸 설명해보아야 그녀는 듣지 않는다. 정신적 학대. 지민은 엄마가 자신에게 가하는 것이 일종의 정신적 학대라고 생각했다. 지민의 잘못이 있었다면 단지 엄마의 전화를 받지 않았을 뿐이다. 전화를 받으면 그녀는 소리를 질러댔을 것이고, 지민은 속이 콱 막히는 그 기분을 다시 느껴야 했을 것이다.

“어떻게 그놈의 유전자는 어딜 가지 않니. 나는 엄마 노릇 제대로 하려고 정신이 돌아버려도, 너희들 밥 차려 주려고 이렇게 온 안간힘을 쓰는데, 내 새끼라는 녀석들은 어떻게 지 애비 하는 것처럼…”

하지만 평소처럼 넘기려던 지민도 그 순간에는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딸에게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는 게 아닌가. 요즘 아버지가 집에 잘 들어오지 않고, 다른 여자의 사진을 가끔 들여다보는 걸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귀가를 늦게 한 것과 아빠의 불륜을 비교할 수 있을까. 지민은 역겨운 심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엄마. 왜 집에서 이렇게 버티고 있어? 제발 입원해. 입원 안 하겠다고 고집부렸던 건 엄마잖아. 이게 무슨 엄마 노릇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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