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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은 '우재 아빠', 팽목항 지키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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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팽목항(전남)=방윤영 기자
  • 2019.04.15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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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5주기-아직도]고영환씨, '세월호 기억공간' 조성 위해 팽목항 홀로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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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홀로 지키고 있는 '우재아빠' 고영환씨 /사진=방윤영 기자
5년. 누군가는 잊을 법한 세월이다. 하지만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는 지나가는 세월호 참사의 기억을 잡아두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우재(단원고 희생 학생) 아빠' 고영환씨(51)다. 그는 홀로 팽목항에 남아 있다.

팽목항에서 만난 추모객 손봉자씨(64)는 "나 같았으면 이미 죽고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씨가 자식 잃은 고통을 참아낸 건지, 견뎌낸 건지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그는 아직까지 그곳에 있었다.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우재 아빠'로만 살았다. 세월호 참사를 알리는 행사를 준비하거나 간담회에 다니고, 목각 리본을 만드는 일이 그의 일상이다. 팽목항을 찾는 추모객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주민 일손을 돕거나 함께 소주 한 잔 기울이기도 한다. 잠시나마 세월호 기억을 잊을 수 있는 일상이다.

팽목항 한켠에 자리한 컨테이너박스는 집이 됐다. 컨테이너 박스 3칸을 이어 만든 식당이다. 꽤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던 10일 고씨는 빗물받이통을 놓고 작은 전기난로 하나에 몸을 데우고 있었다.

"이제는 유가족에서 국민 한 사람으로 남아 있는 거예요. 팽목항에 뭔가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서요. 원하는 건 단 하나, 세월호 참사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하는 기록관을 만드는 겁니다."

고씨는 팽목항에 남은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참사 당시 정부의 대처, 가족들에게 밥과 죽을 해준 진도 시민분들 등 팽목항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기록하자는 생각이다.

지난해 9월 팽목항 분향소에 있던 아이들 영정사진을 안산으로 옮긴 뒤 모두들 떠났지만 고씨는 기록관 건립을 위해 홀로 남았다. 하지만 진도군은 진도 국제항 개발 사업 진행으로 고씨의 '팽목항 살이'를 곤란해 한다.

10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있는 '4·16팽목기억관'. '4·16세월호참사 희생자 팽목항 분향소'였던 이곳은 지난해 9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이 경기 안산으로 옮겨진 뒤 기억관으로 바뀌었다. /사진=방윤영 기자
10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있는 '4·16팽목기억관'. '4·16세월호참사 희생자 팽목항 분향소'였던 이곳은 지난해 9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이 경기 안산으로 옮겨진 뒤 기억관으로 바뀌었다. /사진=방윤영 기자

"부모들은 진도에 오는 것 자체가 싫고 팽목항에 무엇 하나 남기기도 싫을 것이다. 수학여행 떠나는 모습 보지도 못하고 죽은 다음에야 여기(팽목항)에서 (자녀를) 받았다. 기다림과 고통, 슬픔 모두 여기에서 겪었다. 그래서 이곳을 버리는 건 아닌 것 같았다."

혼자였던 그에게도 동료가 생겼다. 지난해 12월 팽목항 기억공간 조성 국민비상대책위원회가 생기면서다. 광주에서 활동하는 민중미술 작가 김화순씨가 위원장을 맡았다. 진도군청과 전남도지사, 지역구 의원들을 만나며 세월호 기억공간 조성 필요성을 알리고 있다.

고씨는 다시 희망을 품는다. 기억공간이 지어질 방안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그는 "왜 유독 우리 아이들만 죽은 이유를 몰라야 하나 답답하다"며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세월호 5주기, 6주기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10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달린 노란 리본이 빛바래졌지만 '세월호 인양' 문구는 뚜렷히 남아 있다. /사진=방윤영 기자
10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달린 노란 리본이 빛바래졌지만 '세월호 인양' 문구는 뚜렷히 남아 있다. /사진=방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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