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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해 붙인 '당헌·당규'…"이틀이면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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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진우 김예나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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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2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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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대한민국4.0'을 열자][3회-下]

[편집자주] 대한민국이 맹목과 궤변, 막말 등으로 가득한 '타락한 진영의식'에 갇혀있다. 타락한 진영은 시위와 농성, 폭력 등을 일으키며 생산적 정치를 가로막는다.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타락한 진영을 없애고 '건강한 진영의식'을 회복해 대화와 협상, 타협 등이 가능한 정치를 만들어야한다. 그래야 '대한민국4.0'을 시작할 수 있다.
지난 17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6회국회(임시회) 제11차 본회의에서 11조7000억원 규모의 '2020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이 재석의원 225명, 찬성 222명, 반대 1명, 기권 2명으로 가결됐다.
지난 17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6회국회(임시회) 제11차 본회의에서 11조7000억원 규모의 '2020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이 재석의원 225명, 찬성 222명, 반대 1명, 기권 2명으로 가결됐다.


쪼개고 붙여 며칠만에 부실설계... '건강한 진영의식' 흔들린다


#지난 1월12일 민주평화당의 박지원 의원 등 비당권파 의원 9명이 탈당했다. 평화당을 박차고 나온 이들은 대안신당을 만들었다. 제3세력과 통합을 염두에 둔 작업이었다.

의석이 4석으로 줄어든 평화당은 소상공인 세력과 연합을 추진하는 등 ‘선 자강 후 통합’에 무게를 뒀다. 비슷한 시기 바른미래당도 계파 갈등 끝에 쪼개져 손학규 전 대표 등 일부만 남았다.

평화당과 대안신당, 바른미래당 등 3당은 2월11일 조건없이 통합하겠다고 선언했다. 서로 싫다고 헤어졌던 평화당과 대안신당은 한달 만에 다시 손을 잡았다. 2주 후 이들 정당은 민생당의 이름을 달고 새롭게 출발했다.
복사해 붙인 '당헌·당규'…"이틀이면 만들어요"

◇며칠만에 뚝딱 당헌·당규 “어디서 봤더라?”

민생당 출범까지 걸린 시간은 한 달 반이다. 당의 이념과 가치 등이 담긴 당헌을 만드는 데는 10일도 필요하지 않았다. 민생당의 당헌은 총칙 등 총 15개 항목으로, 50여페이지에 3만5000자로 돼 있다.

당헌은 수만 혹은 수십만의 당원의 생각을 모아 그 당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당의 헌법’인데 단 며칠 만에 만들어질 수 있을까. 민생당 의원들 면면을 보면 답이 나온다. 민생당 의원 19명 모두 2016년 2월 안철수 현 국민의당 대표가 만든 옛 국민의당 출신이다.

국민의당이 쪼개져 민주통합당과 바른미래당으로 나눠졌다가 원상복귀된 셈이다. 그러다보니 4년전에 만든 옛 국민의당의 당헌과 당규, 강령 등을 ‘차용’했다. 실제 민생당 당헌·당규를 보면 당시 국민의당 내용과 유사하다. 사람이 바뀌지 않은 탓에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게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민생당 핵심 관계자는 “국민의당 시절 당헌·당규를 잘 만들어 놓았는데, 현재 적용해야할 새로운 내용들을 추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대정신과 가치, 미래 비전 등에 대한 고민이 없이 베낀 종이조각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현 국민의당 당헌·당규도 2016년 옛 국민의당 당헌·당규가 기본 틀이다. 지난 1월말 안 전 대표가 바른미래당을 탈당했을때부터 준비해서 한달후 국민의당 창당할 때 발표했다. 결국 민생당과 국민의당이 거의 비슷한 당헌·당규를 갖고 있는 셈이다.
복사해 붙인 '당헌·당규'…"이틀이면 만들어요"

◇“자매정당 비례위성정당, 당헌·당규도 자매품”

자유한국당, 새로운보수당, 전진당, 보수 시민사회단체 등이 합친 미래통합당도 마찬가지다. 보수 진영의 통합은 2017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로 새누리당이 분열한 지 3년 여 만이다.

통합당 당헌·당규의 내용은 모태인 자유한국당과 거의 비슷하다. 통합당 관계자는 “우리당 당헌·당규는 자유한국당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통합당의 비례대표용 자매정당인 미래한국당 당헌·당규는 통합당 내용을 축소한 형태다. 두 당의 당헌·당규 내용을 비교해보면 별 차이가 없다. 당원과 당기구 등 여러 항목에서 내용이 겹친다.

통합당이 각 항목에 대해 디테일한 설명을 덧붙인 것만 다르다. 두 당 모두 당헌·당규 작업에 그리 시간이 많이 소요되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의 당헌·당규를 요약한 여러 버전을 당의 핵심 가지이자 규범으로 내걸고 있는 셈이다.

범여권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 열린민주당도 급하게 창당하면서 초고속으로 당헌·당규를 만들었다. 이들 정당의 당헌·당규의 내용을 보면 각각 27페이지와 31페이지로 돼 있고 비슷한 내용이 많다. 다만 강령 등을 통해 각 당이 지향하는 바를 드러내는 등 차별화했다.
복사해 붙인 '당헌·당규'…"이틀이면 만들어요"

◇'당헌·당규'의 정치학

대한민국 정당은 선거를 앞두고 쪼개지거나 합쳐진다.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선거만 다가오면 생각을 달리한다. 함께 할 땐 하나의 당헌·당규를 만든다. 헤어지면 거기서 파생된 당헌·당규를 갖는다.

이러다보니 각 당엔 당헌·당규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선수’들이 있다. 4년마다 있는 총선때 여러 당들이 출현하고 이합집산하는데, 이때 이들이 실력을 발휘한다. 만들어지는 당의 성격에 따라 약간의 윤색과 각색만 이뤄질 뿐이다.

국회 관계자는 “각 당의 당헌과 당규를 자세히 살펴보면 겹치는 부문이 많은데, 이틀이면 만들 수 있다는 정치인도 있다”며 “추상적이면 긍정적 단어가 모두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각 당이 치열한 고민없이 ‘복붙’(복사해서 붙이는) 당헌·당규를 만든 탓에 정당의 가치와 품격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정당은 당헌·당규에 진영의 가치를 반영해야한다. 합리와 상식이 토대다.

건강한 ‘진영 논리’ ‘진영 의식’의 출발점이자 결과물이다. 하지만 충분한 숙의 과정이 없다 보니 당헌·당규는 정당, 당원과 괴리된다. 당헌·당규 준수보다 강성 목소리가 진영을 지배한다. 합리적 대화·논쟁이 축적되지 않고 일부의 의견이 정치적 목표를 위해 반영되며 당헌·당규를 왜곡시키기도 한다.

권칠승 민주당 의원은 “20년전 새천년민주당 시절 당헌·당규 개정 작업을 하면서 대선을 위한 국민참여경선 항목을 넣는 것 하나에 100일 연속 당무위원회를 열었다”며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일종의 합의서가 당헌·당규인데, 숙의와 축적의 시간을 통해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복사해 붙인 '당헌·당규'…"이틀이면 만들어요"




민주화·안보·경제·협력...'시대정신'따라 지향점 변화


정당은 작은 ‘사회’이자 ‘결사체’다. 국가의 헌법, 사회의 규범보다 더 강한 장치를 갖고 있다. 정당이 ‘한몸’으로 움직이려면 따라야할 가치와 어떤 사안에 대해 판단하는 기준, 미래 비전에 대한 합의점 등이 필요하다.

당헌은 정당의 ‘헌법’이다. 당을 대표하는 가치와 이념을 넓게 제시한다. 뒤따라오는 당규는 ‘법률’에 해당한다. 당헌에 관한 구체적 세부 규정을 제시해 현실에 적용할 수 있게 한다.

법적인 구속력은 없지만 위반한 이들에겐 당내 비판이나 징계가 따른다. 당원 입장에서 받는 페널티는 꽤 강하다.

당헌·당규는 우리나라 정당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제헌 이후 최초 집권여당인 자유당은 1949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내세운 ‘일민주의’를 당시 강령에 해당하는 ‘당시(黨是)’로 정했다.

일민주의는 ‘하나의 국민’으로 대동단결하자는 뜻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자유당은 일민주의를 정체성 삼아 북한을 인정하지 않는 동시에 국민을 통합하려 했다.

1962년 제3공화국 당시 최초로 정당법이 명문화되며 당헌·당규도 자리잡았다. 당헌 공개는 정당 설립의 필수 조건이 됐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정당법은 한 차례 옷을 갈아 입었다. 이후 구체적인 당의 운영 사항을 당헌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조항이 생겼다.

투명한 창당 과정을 보장하고 조직 운영을 건강하게 하기 위한 취지였다. 당원의 입당·제명 절차와 간부 선임, 재정 운용 등에 대한 내용이 필수 요소가 됐다.
복사해 붙인 '당헌·당규'…"이틀이면 만들어요"

역대 정당들은 당헌·당규에 그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을 담았다. 1987년 정치권의 시대정신은 ‘민주화’였다.

당시 YS와 DJ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통일민주당은 강령에서 “일체의 독재를 단호히 거부하고 국민주권과 의회민주주의를 수호하며 평화적 정권교체를 실현한다”고 했다.

보수정당은 안보와 경제 성장의 메시지를 주로 담았다. 역대 ‘최장수’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은 강령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안보강국’ 등의 지향점을 강조했다.

2012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당을 꾸리며 대북정책 관련 일부 표현을 삭제하고 ‘경제 민주화’를 추가했다. 당시 강령의 변화는 대북정책에 유연하고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보수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20대 국회 주요 정당의 당헌·당규는 ‘협력’과 ‘통합’을 이루겠다는 다짐이 눈에 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의미가 없다고 본다. 여야 모두 협치와 통합의 노력 대신 진영 싸움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이강윤 정치평론가는 “(당헌당규의 협력정치가 지켜지지 않는)그 부분이 정치개혁이 필요해지는 지점”이라며 “시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기대나 시민적 성숙도에 비해, 정치 현실이 아직 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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