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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배제하는 과학계 유리천장, 해결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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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건휘 인턴기자
  • 2019.01.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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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더 20인 인터뷰]'언더그라운드의 수잔 손탁', 이진주 걸스로봇 대표

[편집자주] 20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대한민국은 100년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됐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한 덕분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역사적 변곡점마다 젊은 리더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이 나라의 운명을 바꿨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새로운 100년을 시작한다. 그 어느 때보다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올해 창사 20주년을 맞는 머니투데이가 우리 사회 각 분야 ‘영 리더’(Young Leader) 20인을 선정, 이들이 얘기하는 미래 대한민국 얘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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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주 대표는 계급갈등과 부동산 등의 모든 문제가 '교육'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한국의 교육은 일, 젠더의식, 과학, 정치 모든 면에서 세상이 변하는 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별곶'을 통해 아이들을 교육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사진=김휘선 기자
한국의 이공계 여성들 사이에서 이진주 '걸스로봇' 대표(42)는 특이한 이력과 당찬 행보로 주목받는 화제의 인물이다. 이 대표는 과학자를 꿈꾸는 이과생이었지만 서울대 국어교육과에 진학, 수석으로 졸업했다. 같은 대학 언론정보학과에서 석사까지 취득했다. 이후 중앙일보에 입사해 기자 생활을 하던 중 돌연 사직서를 제출했다.

몇 년간 육아에 전념하던 이 대표는 2015년 소셜벤처 '걸스로봇'으로 사회에 돌아왔다. '누구나 공학자가 될 수 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걸스로봇'은 더 많은 여성이 이공계 분야에 진출해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대표는 '걸스로봇'을 통해 남성이 지배하는 이공계에서 여성들이 더 이상 '유리천장'에 부딪히지 않게끔 만들고자 노력한다. 그는 걸스로봇을 3년간 운영하며 궤도에 올려놓았고, 최근 제주도에 과학문화공간 '별곶'을 열며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 연말 서울 여의도의 공동 업무공간 위워크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이 대표는 '영리더'에 선정됐다는 말에 "마지막 남은 젊음을 일깨워 주어 기쁘다"라고 말했다. 이어 자신을 "과학과 데이터로 젠더문제를 합리적으로 풀 수 있게끔 제안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이력이 굉장히 특이한데, 성장 배경을 듣고 싶다.
▶다소 식상하지만 부모님 이야기부터 하겠다. 아버지는 보수적인 학자 내지는 종교인 스타일의 엔지니어였고, 어머니는 자유분방했으나 집안에 머물러야 했던 세 아이의 엄마이자 주부였다. 내 모든 지성과 냉정은 아버지로부터, 내 모든 감성과 열정은 어머니로부터 나왔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세계가 만나 나를 이루었으니, 나는 출발부터 중간자요 경계인이었던 셈이다.

학창 시절에는 어디가든 팬클럽을 몰고 다니는 소년 같은 학생회장이었지만, 갈등의 중심인 깍쟁이기도 했다. 공부는 항상 잘했지만, 왜 잘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사당동과 방배동, 그리고 반포의 경계인으로서 가난이나 가정폭력 때문에 집 나간 친구들이 나를 찾아오기도 했고, 속물문화에 몸서리치면서도 젖어들어가기도 했다. 그런 시절을 거쳐 지금의 내가 된 것 같다.

-SNS에 본인을 '언더 그라운드의 수잔 손탁'이라고 소개한 게 인상적인데.
▶재밌는 질문이다(웃음), 그걸 물어볼 줄은 몰랐다. 사실 앞서 말한 '경계인'이라는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 수잔 손탁은 글을 통해 사회를 바꾼 소설가이자 활동가였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이처럼 '오버 그라운드'의 발언권을 가지려면 교수가 되거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이 돼야 한다. 나는 거기 속하지 못한 '주변인'이다. 이제 와서 그런 걸 갖기는 새삼스럽다. 아무리 우아한 척해도 언더그라운드에서 소리 지르는 운동가 정도가 내 정체성일 것 같다. 여기에서 '젠더'와 '계급'을 말하며 사회를 바꿔볼까 싶다.

-과학에는 언제부터 흥미를 가졌나.
▶어릴 적부터 과학을 좋아했고 과학 기술자가 되고 싶었다. 중3 때는 과학고 진학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과학고 가면 이상한 여자가 된다. 그냥 예쁘게 키워서 시집 잘 보내는 게 최고다"라는 담임 선생의 말을 들은 엄마의 권유에 포기했다. 고등학생 때는 과학영재원에 다니며 다시금 꿈을 불태웠지만, 대학에 진학할 때쯤 IMF가 터졌다. 결국 안정적인 직업을 원하는 부모님의 권유로 사범대에 진학했고 과학을 잊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왕년의 과학영재이자, 과학기술자가 되는데 실패한 '이무기'였다.

-'걸스로봇'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사실 맥락 없이 시작했다. 과학전문기자도 아니었고, 심지어 소셜벤처를 목표로 시작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잊고 있던 '과학'에 대한 꿈이 다시 떠올랐다. 이걸 안하면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어떤 형식으로든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목표의식이 분명했다.

-죽을 것 같았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기자를 그만두고 쉬던 중이었다. 제주도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동굴의 시간’을 보내며 모든 연을 끊고 우울하게 보내던 차였다. 그런데 누구보다 잘 살 줄 알았던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똑똑한 모범생으로 변호사까지 됐던 여자 아이가 일과 육아를 병행하다 죽은 거다. 한 엘리트 여성의 허무한 죽음에서 잊고 있던 '꿈'이 떠올랐다. 그걸 꼭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결정적인 계기가 하나 더 있다. 2015년 로봇 ‘휴보’가 세계재난로봇대회(DRC)에서 우승을 했는데 텔레비전을 보니 고등학교 시절 과학영재원에 같이 다니던 박일우 광운대 로봇학부 교수가 개발자 중 한 명이었다. 같은 공간에서 공부한 친구가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을 만드는 동안 난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며 머물러 있었다. 충격이었다. 그때부터 로봇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덕질을 시작했고, 결국 '걸스로봇'을 만들게 됐다.

이진주 대표는 본인을 "어디가든 팬클럽을 몰고 다니는 소년 같은 학생회장이기도 했고, 갈등의 중심이었던 깍쟁이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공부는 항상 잘했지만, 왜 잘해야 하는지는 몰랐다고. 그는 자신의 성장과정은 중간자이자 경계인이었으며, 그 시절들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했다./사진=김휘선 기자
이진주 대표는 본인을 "어디가든 팬클럽을 몰고 다니는 소년 같은 학생회장이기도 했고, 갈등의 중심이었던 깍쟁이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공부는 항상 잘했지만, 왜 잘해야 하는지는 몰랐다고. 그는 자신의 성장과정은 중간자이자 경계인이었으며, 그 시절들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했다./사진=김휘선 기자

-'걸스로봇'은 어떤 회사인가.
▶보통 과학이라고 하면 실험실에서 흰 가운 입고, 피펫이라든가 약품병을 들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지 않나. 걸스로봇의 일은 그런 게 아니다. 훨씬 넓은 범위의 과학을 다룬다. 연구실 바깥의 과학문화, 과학교육, 과학의 대중화, 여성 과학자, 그리고 퀴어 얘기까지 한다. 회사 안에서 이런 다양한 주제를 오가면서 논의를 진행한다. 그래서 대중들에게는 ‘운동단체'의 성격으로 더 잘 알려졌다. "빡센 페미단체 아냐?" 이런 느낌이랄까. 그동안 돈을 벌기 위한 활동을 해본 적도 없다. 지난 몇년 간의 운동을 통해 적어도 이공계 바닥에서는 '걸스로봇이 과학을 바탕으로 여성운동을 하는 단체다' 정도로는 알려진 것 같다.

-구체적인 활동은 어떤 게 있나.
▶걸스로봇을 통해 대학에서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matics) 과목을 전공하는 여학생들의 네트워크 활동을 지원했다. 현재 1000명 가까운 인력이 네트워크에 들어와 있다. 여성 공학인을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걸스로봇 인재양성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국민대 기계시스템공학부에 재학 중이던 이세리 학생을 1기 펠로우로 발탁했다. 이세리 펠로우는 이후 세계 최대 휴머노이드 학회 '휴머노이드 2016'에 파견되는 등 성과를 거뒀다.

이진주 대표가 나눠준 '여성 과학자' 굿즈. 그는 여성은 과학자가 될 수 없다는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사진=김건휘 인턴기자
이진주 대표가 나눠준 '여성 과학자' 굿즈. 그는 여성은 과학자가 될 수 없다는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사진=김건휘 인턴기자
-여성이 과학을 외면한다는 주장에 대한 생각은.
▶10년 전 하버드의 래리 서머스 총장이 여성 교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왜 여성 교수들이 적다고 생각하나? 여성의 뇌는 이공계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 후 결국 사임했다. 이건 단순히 결과만을 놓고 말한 거다. 여성들이 과학을 외면한다면 왜 그런지 고민해야 한다. 여성이 남자보다 멍청해서, 고생을 더 싫어해서 과학을 거부하는 게 아니다. 현재 구조에서 과학을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출산하고 육아하면서 소외되는 사람들을 수십년 동안 봐왔는데 그걸 답습하고 싶진 않을 거다. 이공계 여성이 적다는 결과를 두고 여성의 '본질'을 논해서는 안 된다.

-언젠가 '정치'를 통해 직접 바꿔볼 생각이 있나.
▶지금 하고 있는 게 정치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을 움직이고 아젠다를 설정하는 등 현실정치에 이미 개입하고 있다. 지난 대선 때는 심상정 후보 지지선언을 하고 성소수자들을 위한 활동을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의 정치인가.
▶자기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명확히 알고, 그곳부터 바꾸겠다는 선언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나의 실패를 사회적 문제로 확장시켜 풀고 싶다. 걸스로봇을 몇년 해보니 밀레니얼 세대의 여성-남성간 감정의 골이 전쟁 수준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단순히 남성들한테 '페미니즘 몰라서 그래', '무식하니까 공부하고 와라'고 말할 문제가 아니다. 다만 드라마 'SKY 캐슬' 식의 해법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애들 의사라도 해야지 먹고 산다' '강한 사람만 살아남는다'는 이런 방식으로는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이를 내 방식대로 풀기 위해 '별곶'이라는 교육사업도 시작했다. 성별 구분 없이 아이들을 가르친다.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이 앞으로 시민사회를 이끌어나가길 기대한다. 일종의 베이스캠프다.

인터뷰를 마치며 이 대표는 창립 20주년을 맞은 머니투데이가 '뾰족한 언론'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진주 걸스로봇 대표는 비전을 통해 자신이 속한 사회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리더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나이, 성별, 성정체성, 성적 지향, 종교, 교육수준, 빈부 등과 상관없이 사람으로 태어난 누구나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비전이라고 밝혔다. /사진=김휘선 기자
이진주 걸스로봇 대표는 비전을 통해 자신이 속한 사회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리더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나이, 성별, 성정체성, 성적 지향, 종교, 교육수준, 빈부 등과 상관없이 사람으로 태어난 누구나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비전이라고 밝혔다. /사진=김휘선 기자

이 대표는 모든 게 뾰족하길 주문하는 시대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위선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언론이 계층과 부의 문제를 솔직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머니투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금 이 순간 가장 '엣지' 있는 관점을 '경제적'으로 풀어주길 부탁했다.

"기존 '레거시 미디어'들은 너무 나이가 들어 습관을 바꾸기 어렵지만, '스무살' 머니투데이는 바꿀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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