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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탄생지에서 ESG주도국으로…영국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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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런던(영국)=한정수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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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17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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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새로운 10년 ESG]7-<1>팔 걷고 나선 英정부 "ESG는 되돌릴 수 없는 흐름"

[편집자주] ESG(환경, 사회적책임, 지배구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ESG 친화기업에 투자하는 글로벌 자금은 30조 달러를 넘어섰고, 지원법을 도입하는 국가도 생겨났습니다. ESG는 성장정체에 직면한 한국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단이자 목적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2020 새로운 10년 ESG’ 연중기획 기획을 통해 한국형 자본주의의 새 길을 모색합니다.
영국은 근대 자본주의 탄생지다.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에서 시작된 생산성 혁신은 가내 수공업을 공장제 기계공업으로 전환시켰고, 이로써 가능해진 대량생산은 국내외 교역의 꽃을 피우는 결과로 이어졌다.

여기서 형성된 산업자본과 상업·금융자본은 세계 각국으로 전파돼 현재의 경제 시스템으로 발전하는 기틀이 됐다. 이론적으로는 경제학자 애덤스미스의 국부론이 영국식 자본주의를 뒷받침했다.

“기업과 개인의 경제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국가의 간섭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그의 이론은 아직도 세계 자본주의의 기본 전제다.

영국 산업혁명 당시의 모습 /사진=getty images
영국 산업혁명 당시의 모습 /사진=getty images


그러나 영국의 자본주의는 최근 ESG(환경, 사회적책임, 재무구조)에 맞춰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기업에 우호적인 사회환경을 유지하고 있으나 ESG와 관련해서는 적극적으로 ‘보이는 손’을 쓴다.

기업의 성장속도를 다소 늦추더라도 근로자와 소비자, 나아가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방향이라면 정부가 직접 나서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초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정착시킨 영국은 전 세계 ESG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0년 연금법을 개정해 주요 투자자들이 적용하는 ESG 요소를 공시하도록 의무화했고 이로 인해 탄생한 것이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인데 이는 유럽과 미국, 일본은 물론 한국으로도 확산, 현재는 주요 연기금이 도입하는 제도가 됐다.

현재도 ESG 규제는 계속해서 강화되는 중인데 스튜어드십 코드 이후에는 ‘ESG 요소 의무화 권고’, ‘2020 UK 스튜어드십 코드’ 발표 등이 이어졌다.

운용자산 170억달러(약 20조원)규모의 영국계 세컨더리펀드 전문운용사인 콜러캐피탈의 ESG·지속가능성팀을 이끌고 있는 애덤 블랙은 “영국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기업들이 사회 전반의 안전,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은 이미 오래 전부터 관심의 대상이었다”며 “최근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늘어나면서 유럽, 특히 영국이 ESG의 선두주자라는 인상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ESG는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와 관련한 많은 이슈들을 모두 포괄해서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로 (사회 전반에 씌우는) 우산과 같은 개념으로 봐야 한다”며 “ESG라는 용어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도 기업과 자산운용사 등 다양한 시장 참여자들이 이미 ESG에 대한 생각과 관심을 크게 보여왔다”고 설명했다.

개념과 용어가 정립되면서 확산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현대 자본주의 트렌드가 ESG에 맞춰 변화한 것은 꽤 오래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새로운 스튜어드십코드 도입…"투자할 때 ESG 요소 더 고려하라"는 영국


영국 런던에서 만난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유독 영국에서 ESG가 발달한 이유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공통적으로 규제적인 측면을 언급했다. 정부 및 규제기관들이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자 시장 참여자들이 자연스럽게 ESG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런던증권거래소(London Stock Exchange·LSE)그룹의 자회사인 FTSE(Financial Times Stock Exchange)러셀의 지속가능 투자팀 선임 매니저인 퐁 유 찬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국가들에 비해 영국에서 먼저 ESG가 큰 관심을 받고 발달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주로 규제적인 측면 때문(mostly regulatory driven)”이라고 답했다.

이어 “정부가 개별 투자 주체들이 투자를 할 때 ESG 요소를 고려하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해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 참여자들의 자율에 맡기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영국 정부가 발빠르게 ESG 관련 제도들을 정비해 오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들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주요 기관 투자자가 기업 이사회에 적극 참여해 주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위탁받은 자금의 주인인 근로자 등에게 이를 투명하게 보고하도록 하는 행동지침을 뜻한다.

자본주의 탄생지에서 ESG주도국으로…영국의 선택


스튜어드십 코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기관 투자자 등 주요 주주들의 무관심 탓에 금융회사의 그릇된 경영을 견제하지 못했다는 판단 아래 도입됐다. 주목할만한 점은 ESG와 같은 비재무적 가치와 관련해서도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해야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2010년 영국이 가장 먼저 도입한 이후 수많은 기관 투자자들이 참여했다. 한국 국민연금도 2018년 이를 도입했다.

여기에 더해 영국 재무보고위원회(FRC)는 지난해 10월 개정 스튜어드십 코드인 ‘2020 UK 스튜어드십 코드’를 발표하고 올해 초부터 적용에 들어갔다. FRC는 새로운 스튜어드십 코드원칙에 ESG 요소를 더 적극적으로 고려하라고 명시했다.

새 코드 서명자들이 그들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투자를 할 때 환경, 사회, 지배구조, 기후 변화 이슈 등을 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적용 대상을 확대한 것도 특징이다. 지난 코드는 주로 영국 상장 주식에 투자한 기관 투자자들이 적용 대상이었다. 올해부터는 연기금을 비롯해 보험회사와 각종 금융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들에까지 확대해 적용한다.

새 코드 서명자들은 투자 회사 경영에 어떻게 개입을 했고 어떤 성과를 얻었는지도 상세히 보고해야 한다. 사실상 ESG 요소를 고려한 투자를 의무화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경제신문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같은 영국의 새로운 스튜어드십 코드에 대해 “다양한 시장 참여자들이 장기적인 투자를 통해 보편적인 가치를 지키거나 강화시키도록 강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영국 금융투자업계가 운용하는 총 자산은 7조7000억파운드(약 1경 1조1752억7000억원)에 달한다.

스튜어드십 코드 이외에 ESG 관련 이슈들을 제도화하려는 노력은 더 있다. 2014년부터 영국 법개정위원회(Law Commission) 피신탁자들이 투자를 할 때 기후 변화와 같은 ESG 요소를 고려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법제화 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영국 정부는 2050년까지 재생 에너지 개발을 장려해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0으로 줄이겠다고 선언한 바 있으며 지난해 7월에는 지속가능하고 균형적인 발전을 위한 경제 정책을 지원하는 녹색 금융 전략을 발표하기도 했다.

런던증권거래소 /사진=AFP
런던증권거래소 /사진=AFP


이 밖에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확대된 금융안정위원회가 2018년 8월 발표한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TCFD·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 권고안과 관련해서도 2022년부터 영국 내 모든 기관들이 이를 이행하도록 의무화할 예정이다.


"영국에서 유독 ESG 발달? 개인주의·구조적 흐름 등 다양한 이유 있어"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ESG가 먼저 관심을 받은 데에는 사회·문화적인 배경이 작용했다는 의견도 있다. 운용자산 200억파운드(약 30조6000억원)에 달하는 영국 투자회사 러퍼(Ruffer)의 책임투자 부문 이사 프란치스카 얀-매델은 “서양 개인주의의 특징을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사업을 하면서 개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발생했을 때 유럽에서는 적극적으로 시정을 요구하는 문화가 오래전부터 자리 잡았다. 개선이 안되면 법적분쟁을 불사해 기업에 막대한 배상책임을 물리기도 한다.

프란치스카 이사는 “산업혁명 이후 영국은 노동조합 운동이 가장 먼저 시작됐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유럽의 인권문제가 크게 대두했다”며 “다양한 역사적 배경들이 적극적인 ESG활동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영국의 언론들도 적극적으로 ESG를 보도한다고 귀띔했다. 경제신문 파이낸셜타임스는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ESG 투자와 관련한 기사만 게시하는 섹션을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 가디언은 최근 석유기업에서 광고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언론사 경영에서도 ESG 요소를 고려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한국이 ESG에 대한 경각심을 느끼지 못하면 자칫 글로벌 시장에서 도태되는 결과가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예로써 유럽에서 ESG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 제품을 판매하지 못하게 규제할 수도 있다”며 “뒤늦게 대응하는 건 사후 약방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 극심한 스모그 현상이 지속되자 시 당국이 지난달 14일(현지시간) 모든 경유 차량 운행을 제한하는 규제를 실시하기도 했다. 비록 일시적인 조치였으나 시사하는 바가 크다. ESG가 선택이 아닌 생존의 필수조건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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